박인휘 이화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레이건 대통령은 1980년 만 69세의 나이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선거인단 수에서 49대 489로 압승을 거뒀는데, 당시 기준으로 노령의 나이가 문제가 되었다. 이런 우려를 모를 리 없었던 레이건은 사석에서 기자들에게 본인의 인생에서 39세부터 49세까지가 가장 에너지 넘치는 시기였다고 언급했다. 49세를 지난 지가 불과 20년밖에 되지 않았으니 아직 건강에는 문제없다는 논리였다.

실제로 레이건은 영화인들의 노조격인 미국배우조합장을 두차례 역임했는데 첫 임기를 마친 39세에 정치가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되었고, 두번째 임기를 마친 49세에 공화당 당원이 되었다.

지난달 5월 20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바이든 대통령이 삼성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미국인 협력사 직원에서 "투표를 잊지 말라"는 말을 건넸다.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보인 잦은 말실수의 일례로 받아들인 기자도 있었고, 11월 중간선거에 대한 중압감이 너무 커서 상황은 맞지 않지만 투표를 언급했다는 기자도 있었다. 어느 쪽이건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실언'(失言) 논란을 다시 떠올리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는 '대통령' 대신 '총리'라는 호칭을 사용한 바 있고, 지난 4월 노스캐롤라이나주 방문 연설에서는 허공을 향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 국내외 언론에서는 취임 당시 78세인 바이든 대통령의 건강과 관련한 다양한 가십기사가 등장했지만 정확한 팩트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뉴욕타임즈, 민주당 젊은피 수혈 강조

재임에 성공한 레이건 대통령은 78세의 나이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재임 중 두개의 흥미로운 별명이 그를 쫓아다녔는데, 하나는 '6시 5분'이고 또 다른 하나는 '15분'이다. 레이건은 재임 당시는 물론 퇴임 이후에도 미국 대중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대통령이다. 그가 누리는 최고 인기의 한가운데에는 누가 뭐라 해도 '최고의 소통가'(a great communicator)라는 칭찬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잘 생긴 외모를 무기삼아 방송에 자주 등장해서는 "글쎄요"(well)하면서 말문을 열 때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 모습이 6시 5분을 가리키는 시계바늘 같다고 해서 '6시 5분'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15분'이라는 별명은 그의 나이와 관련이 있다. 당시 레이건의 참모들 사이에서는 백악관에서 회의를 할 때 주요한 사항은 반드시 회의 시작 '15분' 안에 설명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레이건은 보고가 15분을 넘어가면 꾸벅꾸벅 조는 경우가 많았고, 참모들의 보고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며칠 전인 6월 11일 뉴욕타임즈는 'No라고 말하는 민주당의 속삭임'(Democratic Whispers of 'No')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바이든 리더십에 대한 이런 저런 우려를 제기하며, 소위 미국 버전의 '젊은 피' 수혈을 강조했다. 기사 내용은 민주당 소속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바이든의 잦은 말실수와 매우 제한적인 언론 인터뷰 등을 문제삼았다.

물론 필자는 바이든 대통령이 절제된 언행을 관리할 줄 알고, 세계 주요 이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또한 다른 대부분의 미국 상원의원 출신들이 그렇듯이, 제스처 하나하나에 매우 고상한 분위기를 연출할 줄 알고, 특히 거의 매번 즐겨 입는 세련된 파랑색 수트는 그가 뼛속까지 민주당 출신의 지도자임을 매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고 했다.

뚜렷한 지도자상 못 보여준 바이든

일종의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 미국 멕시코 칠레 정도다. 그 중에서 한국보다 1인당 GDP가 높은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다. 프랑스가 있기는 하지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프랑스는 총리가 내각 통솔권을 포함해 일상적인 국정 업무를 책임진다.

미국 대통령의 권한은 우리처럼 무소불위(無所不爲)는 아니고, 연방으로 묶인 개별 주(州)의 고유 권한을 존중해야 하고, 동시에 미 의회의 철저한 견제 하에서 행정부는 법률안 제출권조차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국 대통령의 영향력은 미국이 확보한 글로벌 파워와 정확히 비례한다는 사실까지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토(NATO)의 이름으로 29개 유럽 국가들을 줄 세웠고, 어떤 형태로 출범할지조차 미지수이지만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구상 아래 태평양을 둘러싸고 있는 13개 국가를 결속시켰다.

영화 소재로도 자주 등장하는 '핵가방'(nuclear football)을 든 이가 에어포스 원에 오르는 미국 대통령의 뒤를 쫓아 오르는 모습이 언론에 자주 포착되곤 하는데, 미국의 무한한 군사력은 항상 대통령이 누르는 '버튼' 의지에 달려 있음을 과시한다.

미국 역사상 존재하는 대통령의 이미지는 일반적으로 세가지 범주로 구분된다.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 세계 위에 군림하는 가공할 힘의 미국, 그리고 온화하고 정의로운 미국이 그것이다.

실제 인물을 사례로 들자면 각각 토머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즈벨트, 에이브러햄 링컨을 들 수 있는데, 흥미롭게도 '큰바위 얼굴'로 유명한 사우스다코타주(州) 러시모어 산에는 이 세명의 대통령 얼굴이 나란히 조각되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세가지 유형의 지도자상(像) 중 어느 하나에도 해당하기 힘들어 보인다. 인플레이션, 코로나 바이러스 장기화, 총기 사태 등과 같은 악재들이 유난히 집중된 환경에 이유가 있지, 모든 문제를 바이든의 역량으로 탓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정치지도자에 대한 신뢰는 이슈 자체보다 이슈를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는 법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작금의 미국 문제를 얼마나 구조적인 심각함으로 접근하느냐에 그의 역량이 달려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주요 인사에 흑인을 발탁하는 노력은 평가할 만한 일이지만, 끝을 모르는 높은 물가인상은 시간이 갈수록 모든 이슈를 삼킬 블랙홀이 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

바이든의 외교적 노하우 활용의 지혜를

나이가 많고 적음이 대통령의 역량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동맹으로 묶인 한미관계에서 미국 대통령은 더욱 그러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의 새로운 정부 출범 이후 전례가 없는 빠른 시점에 서울을 방문해 한미정상회담을 추진했고, '포괄적 전략동맹'과 '경제안보'라는 이름으로 양국의 협력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떠났다.

앞으로의 성과가 미지수이기는 하지만, 나이에 깊이 배어든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적 노하우가 한반도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오히려 큰 지혜의 샘이 되기를 고대해본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지혜의 샘이 한국의 보수정권을 상대로 동맹관계의 전략적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통 큰 정치'로 이어지기를 더욱 고대해본다.

44세의 박정희 장군이 군사정변(政變)을 일으킨 지 6개월 후 케네디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미국을 찾았을 때, 백악관에서 두 지도자가 대면하는 장면을 우리는 종종 사진을 통해 만나곤 한다. 검은 선글라스에 오른손엔 담배를 쥔 박정희는 다리를 꼬고 앉아 케네디를 향해 웃음 띤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꼰 다리만큼 당시의 한미관계는 양국 간 힘의 비대칭성으로 왜곡되어 있었고, 덩치 큰 백악관 참모들 사이에서 박 대통령의 체구는 더 왜소해 보였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이제는 역사상 최고령 미국 대통령의 실언과 치매논란까지도 담담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미국 정치 지도자의 '젊은 피' 요구는 미국인의 논쟁으로 넘기고, 바이든 대통령의 노회한 지도력과 외교력이 만들어내는 에너지를 우리 것으로 만드는 우리만의 지혜를 고민할 때다.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