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사모펀드 분쟁 민원 1500건, 기타 펀드 586건 … 금감원, 소규모 펀드 판매사에 사적화해 권고했지만 배상 지지부진

대규모 환매중단으로 사모펀드 사태가 발생한지 3년이 지났지만 후폭풍은 가시지 않고 있다. 대형 사모펀드 투자자들의 투자손실 배상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해 소규모 펀드들의 환매중단이 잇따라 발생했다.

2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환매중단된 사모펀드는 잔액 기준 6조9000억원에 달했다. 일부 사모펀드에서 부분 환매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잔액이 감소해야 하지만 지난해 새롭게 환매중단된 사모펀드 규모가 5000억원이 넘으면서 순증 규모는 4000억원에 달했다.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계약취소 촉구│이달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금융정의연대 회원 등이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를 일으킨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의 계약 취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에서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사건에 대한 펀드 판매사의 배상을 결정하면서 계약취소를 요구하는 투자자들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다. . 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2020년말 기준 환매중단 규모를 보면 라임펀드가 1조4118억원으로 가장 많고, 독일 헤리티지 펀드 5209억원, 옵티머스 펀드 5107억원, 디스커버리 펀드 2562억원,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1849억원 순이다. 이들 펀드들은 환매중단 규모가 커서 소위 '5대 펀드'로 불린다. 5대 펀드의 환매 중단 규모는 2조8845억원이다.

사모펀드에 대한 투자자 보호 규제가 강화되면서 자본시장법이 아닌 다른 법률에서 규정하는 유사 펀드 판매가 증가하는 등 풍선효과도 발생하고 있다.

유사 펀드는 '신기술사업투자조합, 부동산투자회사, 선박투자회사, 소재·부품·장비 전문투자조합, 농식품투자조합' 등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며 부동산투자회사법, 선박투자회사법 등 개별법에 따라 등록·인가가 이뤄지고 있다. 금감원은 "공모가 아닌 사모로 자금을 조달하는 유사 펀드의 경우 자본시장법과 금융소비자보호법 적용이 배제되고 있어 개인투자자 판매 증가시 불완전판매 발생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5대 펀드' 분쟁조정 마무리, 소규모 펀드 해법 고민 = 사모펀드 환매 중단으로 금감원에 제기된 분쟁조정 민원은 2020년말 1787건에 달했다. 5대 사모펀드 사건이 1370건으로 전체의 77%를 차지했다. 기타펀드 분쟁조정은 417건으로 23%에 그쳤다.

1년 넘게 진행된 5대 사모펀드에 대한 금감원의 분쟁조정 이후 올해 5월말 기준 접수 민원은 1500건으로 다소 줄었지만 큰 폭의 감소는 아니다. 5대 사모펀드 관련 접수 민원은 914건으로 줄어든 반면 기타 사모펀드는 586건으로 오히려 늘었다.

금감원 금융소비자보호처(소보처)는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사건의 분쟁조정을 마무리했다. 펀드 판매사들은 금감원 분쟁조정에서 결정한 배상비율에 따라 투자자들을 상대로 자율조정을 진행 중이다.

소보처는 5대 사모펀드 중 마지막인 독일 헤리티지 펀드 사건의 분쟁조정을 오는 8월로 계획하고 있다. 그 이후에도 젠투, 판펀딩, 트랜스아시아무역금, 피델리스 등 수많은 사모펀드 사건들이 계류 중이다.

문제는 소규모 환매중단 사모펀드를 금감원이 모두 검사해서 조치를 취하기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데 있다. 검사를 통해 펀드 판매사의 문제를 정확히 확인하지 않으면 금감원이 투자손실에 대한 배상비율을 결정할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분쟁조정 업무를 맡고 있는 금감원 소보처에는 검사권한이 없어 현장조사만으로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금감원 소보처는 최근 펀드 판매사 금융소비자보호총괄책임자(CCO)들을 만나 환매중단된 사모펀드에 대해 판매사들이 적극적으로 자율 배상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사적 화해를 통한 원만한 분쟁해결을 권고한 것이다. 하지만 판매사들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어서 금감원도 소규모 사모펀드 분쟁해결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사모펀드 계약취소, 최대 80% 배상에도 분쟁 이어져 = 사모펀드 사태 이후 금감원이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를 열고 계약취소와 배상을 결정한 대표적인 사례는 9건(4개 펀드)이다.

신한금융투자가 판매한 라임 무역펀드와 NH투자증권이 판매한 옵티머스 펀드에 대해서는 계약취소 결정을 내리고 판매사가 투자자에게 원금을 전액반환하도록 했다.

라임 펀드 중 무역금융펀드를 제외한 다른 펀드의 경우 분조위에서 60~78%를 배상하라고 권고했다. 금감원에 분쟁조정을 제기한 투자자에 대해 배상비율을 결정한 것이고, 개별 투자자마다 피해 사례가 다르기 때문에 별도의 배상기준을 만들어서 펀드 판매사가 투자자들과 자율조정을 진행하도록 했다. 그동안 분조위에서 정한 배상기준을 보면 투자자들은 최대 80%까지 배상을 받을 수 있다.

최근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투자자들의 경우는 펀드 판매사가 적극적으로 배상에 나설 경우 80%를 초과한 배상이 가능하도록 분조위에서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투자자들은 계약취소를 주장하면서 원금 전액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분조위 조정안을 수용하지 않고, 집단 민사소송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며 강경대응 입장을 밝힌 상태다. 라임 펀드와 디스커버리 펀드 일부 투자자들도 여전히 계약취소를 주장하고 있다.

올해 4월 법원은 라임 펀드 투자자들이 대신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계약취소 소송에서 투자자의 손을 들어주면서 원금반환 판결을 내렸다. 금감원이 투자자 배상비율을 80%로 정했는데, 법원에서 계약 취소 판결을 내린 이례적인 사건이다. 항소심과 대법원까지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 최종 판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임진성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는 "법원에서 계약취소가 인정되기는 쉽지 않은 구조여서 금감원의 권고결정에 불만이 있는 투자자들도 쉽게 소송을 제기하지는 못하는 실정"이라며 "투자자들은 일단 판매사들과 자율조정에 응하고 이후 반환받지 못한 나머지 투자금에 대해 소송으로 다퉈보는 게 낫다"고 말했다.

분조위에서 투자원금 전액 반환 결정을 내린 옵티머스 펀드 사건 역시 계약취소 대상에서 제외된 전문투자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분조위는 계약취소 대상을 일반투자자로 국한했고, 전문투자자에 대해서는 판매사가 자율적으로 협상을 진행하도록 했다. 분조위는 "전문투자자의 경우 제도 취지 등을 고려할 때 투자자의 착오에 중과실이 있다고 볼 수 있는지 등에 관한 법원의 개별적 판단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분조위 권고에 대한 판매사의 수용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투자자를 대상에서 제외시킨 측면이 있다. 전문투자자들도 사기 피해자라는 입장인 만큼 법원 판결에 따라 계약취소 대상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는 등 법적 다툼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사모펀드 사태 3년 여진 계속" 연재기사]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이경기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