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금융소비자보호처, 검사권 없어 독자적 활동 제한 … 신속한 배상 어려워

분쟁조정 결정에 구속력 있는 수단 마련 … '재판과 동일 효력' 중재 도입 방안도

금융감독원은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헬스케어 등 소위 '5대 사모펀드' 중 독일 헤리티지 펀드를 제외한 4개를 대략 마무리했지만 일부 라임 펀드 사건은 여전히 분쟁조정에 계류 중이다.

투자대상이 국내 사모사채인 '플루토-FI D-1호'(모펀드)에 투자한 펀드(신한금융투자 판매), 라임 CI펀드(Credit Insured 펀드, 경남은행 판매), 라임 무역금융(유안타증권 판매) 등이 아직 남아있다. 무역금융 펀드에 대해서는 금감원이 계약취소 결정을 내렸지만 2018년 11월 이후 판매 상품에 국한돼 있고, 그 이전에 판매한 상품에 대해서는 배상 여부와 배상비율을 결정해야 한다.

경고장 부착된 검찰 현판│금융정의연대와 사모펀드 사기피해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은 이달 7일 오전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설치돼 있는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검찰청 앞에서 사모펀드 사기 피해 관련 검찰의 수사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했다. 검찰 현판 옆에 참석자들이 부착한 경고장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13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의 분쟁조정 사건으로 계류 중인 일부 라임 CI펀드와 무역금융 펀드의 경우 판매사에 대한 금융당국의 제재가 끝나지 않아 진행이 멈춘 상태다. 분쟁조정 업무를 맡고 있는 금감원 금융소비자보호처(소보처)는 독자적인 검사권이 없어, 검사와 제재 부서에서 결과가 나와야 분쟁조정을 진행할 수 있다. 그동안 계약취소와 배상 권고결정이 나온 사모펀드들은 모두 검사·제재가 끝난 이후에 분쟁조정이 이뤄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분쟁조정이 길어진 가장 큰 이유는 사실관계 확정을 통해 금융회사의 책임 여부를 가리고 배상비율을 정해야 하는데, 검사·제재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사실관계 확정이 어렵기 때문"이라며 "소보처에 검사권이 있으면 분쟁조정에 국한해 검사를 진행할 수 있고 더 빨리 사실관계를 확정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소보처에 검사권을 부여하는 문제는 분쟁조정의 신뢰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분쟁조정이 진행되면서 일각에서는 금감원이 검사와 제재를 내세워 금융회사를 압박하는 방식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성희활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분쟁조정이 독립성과 중립성을 갖고 진행돼야 장기적으로 신뢰가 쌓이고 투자자와 금융회사가 법원으로 가는 것보다 신속하게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며 "감독당국이 실질적으로 검사·제재를 분쟁조정과 연결해서 쓰면 피해자들은 당장 좋아할 수 있지만 분쟁조정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에서 분쟁조정기능 분리 = 금감원 소보처에 독자적인 검사권을 부여하는 것이 분쟁조정의 신속한 처리와 독립성 강화를 위해 가장 빠르게 시행할 수 있는 1단계 조치다. 장기적으로는 금융당국에서 분쟁조정기능을 분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금융회사에 대한 제재 결정이 분쟁조정결과와 차이가 나거나 상반되는 결과가 나올 경우 그에 따른 논란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상품을 불완전판매한 금융회사에 대한 금감원 제재 결과가 경징계에 그칠 경우, 아무래도 같은 조직 내에 있는 소보처가 배상비율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영국과 호주, 일본 등 해외 주요 감독기구의 경우 금융분쟁처리기구를 별도로 두고 있으며 금융감독당국이 관리·감독을 수행하는 구조다. 독일은 은행법상의 대출 등 일부 사안에 대해서만 금융감독기구가 금융분쟁을 처리하고 그 외 사안은 별도 기구에서 담당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별도의 조정중재원을 설립하는 방안이 담긴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개정법안을 대표 발의한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융분쟁을 신속하게 해결하므로써 금융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금융회사와 금융소비자, 이해당사자 등 분쟁 관계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공정성 독립성 중립성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분쟁해결을 현재의 조정 방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중재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개정안에 포함돼 있다. 현재 금융분쟁조정은 신청자와 금융회사 모두 동의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아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중재판정은 법원의 확정 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다. 양측은 중재판정 결정을 무조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소송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다만 중재는 양측의 자발적인 참여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어느 한쪽이라도 사안을 중재에 회부하는 데 동의하지 않으면 진행이 되지 않는다. 금융소비자 또는 금융회사 양측 모두 결과를 수용해야 하는 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고 참여 결정을 내리는 게 쉽지 않다.

이용준 국회 정무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금융소비자 입장에서는 중재판정에 기속되는 중재보다는 결과 수용 여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조정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아서 중재 이용이 저조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중재판정이 이뤄지면 각 당사자의 재판청구권이 제한되므로, 금융분쟁중재 도입을 위해서는 심의·의결 과정의 공정성 및 중재인의 전문성이 전제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은행연합회는 "중재는 단심제로 운영되는 특성상 신속하고 효율적인 분쟁해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중재제도 신설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페어펀드 도입하면 신속한 배상 가능 = 미국에서는 투자자 피해의 신속한 배상을 위해 페어펀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페어펀드는 투자자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제도로 연방증권법 위반행위에 대해 부과한 민사제재금을 국고에 귀속시키는 게 아니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피해자에게 배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면서 마련됐다. 국가기관이 위법행위자로부터 징수한 제재금을 통해 일반투자자의 피해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SEC가 페어펀드를 피해자들에게 분배하는 비율은 상당히 높다. 2014~2019년 중 분배계획 승인 후 24개월 이내에 80% 이상을 분배한 펀드 비율을 보면 80~96%로 높다. 2019년에는 93%의 분배율을 보였다. 페어펀드 분배기간은 2003년부터 2009년까지 평균 3.5년, 2010년에서 2015년까지 평균 3년을 기록했다. 빠른 펀드들은 1년 이내에 분배가 완료되는 경우도 있다. 다만 페어펀드가 제대로 기능을 하려면 주식시장의 불공정거래와 불완전판매 등 금융시장의 위법행위에 상응하는 과징금을 금융당국이 부과할 수 있는 제도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

피해자의 신속 배상을 위한 또 다른 제도적 장치는 분쟁조정에 '편면적 구속력'을 부여하는 방안이다.


편면적 구속력은 금감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가 제시한 조정안을 금융소비자가 수락하면 금융회사의 수용여부와 관계없이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을 갖는 것을 말한다. 재판상 화해는 법원의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기 때문에 추후 법적 분쟁이 진행되지 않는다. 분쟁조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영국과 호주, 독일 등에서 일정 금액 이내의 사건에 대해 편면적 구속력을 인정하고 있다. 영국은 35만파운드(한화 약 5억4000만원), 호주는 108만5000달러(호주달러, 한화 약 9억5000만원)까지 편면적 구속력이 적용된다. 일본은 법률상 소비자가 조정안을 수용하면 구속력이 발생한다고 돼 있지만 1개월 이내에 소송을 제기할 경우 예외가 인정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2000만원 이내의 소액분쟁사건에 대해 편면적 구속력을 도입하는 내용의 법률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편면적 구속력은 금융회사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의견이 있지만 금융의 공공적인 측면과 분쟁의 발단이 금융회사가 판매한 금융상품과 서비스라는 점에서 금융회사의 재판청구권을 일부 제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반론도 강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영하고 있는 동의의결제를 금융분쟁조정에 도입하자는 의견도 있다. 동의의결제는 사업자 스스로 제시한 '소비자 또는 거래 상대방의 피해 구제 방안'에 대해 공정위가 타당성을 판단해 위법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를 말한다.

성 교수는 "동의의결제가 도입되면 과징금이 국고로 확수되는 게 아니라 금융소비자의 피해회복을 위해 어떻게 쓰일지 맞춤형 설계가 가능하다"며 "신속한 피해구제를 위해 동의의결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모펀드 사태 3년 여진 계속" 연재기사]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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