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휘 이화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어느 사회나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이념적 '기준점'이 있다. 국민들 혹은 시민들은 그 기준을 준거로 좌우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국가 혹은 지역마다 기준점은 서로 달라서, 독일 같은 서유럽 국가들은 환경 이민자 에너지 유럽공동체 등이 좌우를 가르는 기준점이 되었고, 한국의 좌우 한가운데에는 여전히 북한문제나 한미동맹이 자리잡고 있다. 동성애, 한국형 복지정책, 국가와 시장의 대결 같은 보편성이 강한 이슈들이 등장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분단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의 경우 전통적으로 총기소유 의료보험 법인세 이민정책 등이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이다. 20세기 초 대공황을 겪었고 냉전을 주도한 요새국가(garrison state)를 이룩했기에, 미국에게도 좌우는 '경제와 이데올로기'에 치중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1960년대 말 거세게 몰아친 사회개혁 운동의 영향으로 미국의 보수 진보는 소위 '신우파'와 '신좌파'라는 이념 지형으로 분화되면서 위에서 언급한 기준들이 미국 사회에 안착했다. 특히 1973년의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은 신좌우파 대결의 상징으로 삼을 만하다. 당시 대법원 판결은 임신 24주 이내 낙태를 합법화했다. 흥미롭게도 거의 50년이 지난 올해 중간선거를 계기로 '낙태법'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민주당 반전 발판된 낙태법 판결

지난 6월 연방대법원은 낙태권의 합법적 근거인 '로 대 웨이드' 판례를 공식 폐기했다. 미국식 전통에 따라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수용할 것인가의 문제는 개별 주(州)의 결정사항이고 그러한 결정의 과정도 주마다 사뭇 다양하다. 선거 국면이 복잡해지면서 낙태법 문제에 쏠렸던 관심이 조금 식은 것은 사실이지만, '인권문제'로 전환된 낙태법은 훗날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의 하나로 평가될 것이다. 어쨌든 당초 상하원 모두 공화당의 당연한 우세를 점치던 각종 언론이 현재 무승부 혹은 공화당의 근소한 우세로 돌아섰는데 이러한 판세 변화의 핵심에는 낙태문제가 있다.

참고로 필자는 이달 첫째주 한주일 동안 수도 워싱턴 DC에서 머물렀는데 '메타플랫폼'의 최고책임자(COO)에서 최근 물러난 셰릴 샌드버그가 '낙태권 확보 운동'에 써달라며 '미국시민자유연맹'에 300만달러(약 43억원)를 기부한 사실이 각종 뉴스면의 헤드를 장식하고 있었다. 현재 미국 50개주(州) 중 공화당세가 강한 16개 주는 임신중절의 전면금지 혹은 부분금지 조치를 취했고, 또 다른 17개 주는 임신중절을 선택하기가 매우 어려운 제약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론조사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현재 미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현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낙태문제는 대체로 5~8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범죄'(80%대 응답률)와 '경제'(70%대 후반 응답률)가 1, 2위를 차지한다. 흥미롭게도 범죄와 경제 이슈는 다양한 맥락에서 이른바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와 연결되어 있어서, 미국식 진보와 보수 개념이 또 다시 분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트럼피즘' 생존 여부가 최대 쟁점

이번 중간선거를 앞두고 최대 쟁점은 결국 '트럼피즘의 생존' 여부다. 양비론적 설명이라서 만족스런 답은 아니지만, 현 시점에서 트럼피즘 생존 가능성은 정확히 50%다. 가능성의 50%는 두가지 포인트인데, 하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집권 민주당 내부의 그 누구도 트럼프를 상대할 정치적 존재감이 없다는 점이다. 공화당 지지층의 약 60%는 강력한 트럼프 지지 세력이고, 요즘도 상당한 규모의 정치자금이 트럼프 진영으로 유입되고 있다.

한국도 그렇지만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접전이 벌어지는 선거구에서 유명 정치인들에게 지원 유세를 부탁하는 구애가 이어지는데, 공화당의 경우 트럼피즘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탐 스콧 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 등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그런데 이런 온건한 공화당 인사들의 지원유세 랠리(rally)를 트럼피즘의 퇴조로 오독(誤讀)해서는 안될 일이다. 선거전이 치열할수록 중도층을 공략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런 맥락에서 온건한 이미지의 정치인들에게 일시적으로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인기가 시들해진 것은 아니다.

단적으로 이번 상하원 선거에 나선 공화당 후보 200여명 중 무려 92% 정도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를 받은 후보로 알려졌다. 대단한 위세다. 특정 정치세력의 영향력은 유권자들에게 매우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며 다가간다. 범 트럼프세력은 '우리 대통령은 미국의 이익을 잘 지키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정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은 선거를 앞두고 '바이든 식 아메리카 퍼스트'를 한껏 내세우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산 전기차 보조금 지급을 포함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최근 강경모드로 돌아선 '이민자 정책'이다.

불가능성의 50%는 '사법 리스크'와 '정치적 메시지'의 한계다. 트럼프가 2021년 1월 6일 의사당 난입 폭동의 '배후자'로 지목돼 조사를 받고 있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재뉴어리 식스'(January 6th)는 최소한의 교육을 받은 미국 식자층 사이에서 이제 일반용어가 되었을 정도다. 하원의 특별위원회와 법무부는 아직까지 트럼프 열성 지지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또한 FBI는 지난 8월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 내 트럼프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상당한 규모의 기밀 유출 물증을 확보했기에 '방첩법' 위반 가능성까지 제기된 상태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 기록적인 물가인상, 인플레이션과의 전쟁, 우크라이나전쟁 등 현재 미국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난제들이 쌓여있지만, 이런 혼미한 안개들이 걷히고 나면, 과연 언제까지 트럼프식 '편가르기 메시지'가 호소력을 가질지 의문이다.

9월을 지나면서 민주당의 절대열세 분위기가 근소열세(혹은 박빙) 분위기로 전환되었고, 선거결과를 예측하는 언론의 관점에도 변화가 감지되었다. 그러다가 다시 공화당이 앞서가면서 간격이 벌어지는 듯하자 바이든 대통령은 또 다시 '낙태법' 카드를 꺼내들었다. 선거를 한 달 남긴 시점인 10월 4일 백악관에서 열린 '낙태 접근법 보장을 위한 태스크포스' 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여성의 인권'과 '의료서비스 접근 제한' 문제를 강조했다.

하지만 동시에 바이든은 매우 신중한 모습이었다. 일정 부분 민주당의 득표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깊숙이 들어갈 경우 트럼피즘의 분화를 가져와 공화당 지지세력 결집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소속 정당 승리는 단 3차례 뿐

현재의 양당 체제가 굳어진 1862년 이후 지금까지 40차례 중간선거에서 대통령 소속 정당의 의석수가 늘어난 선거는 단 3차례에 불과했다. 뉴딜의 주인공 루스벨트 대통령, 천재적인 정치적 친화력을 보였던 클린턴 대통령, 그리고 9.11 여파로 정부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그 주인공이었다.

한국시간으로 11월 8일 2022년 미국 중간선거가 개최된다. 36개 주의 주지사, 35석의 상원의원, 그리고 435석 하원의원 전체를 걸고 집권 민주당과 야당 공화당이 미국 정치의 미래를 건 선거전을 벌인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얘기지만, 이번 선거처럼 예측이 어려운 선거는 없었던 것 같다. 대체로 상원의 무승부와 하원의 공화당 근소한 승리가 점쳐지는 가운데 미국 민주주의의 앞날에 세계의 관심이 더욱 모아지고 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