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직후 시민단체 동향 수집

이태원 참사 예방과 대응에는 느리고 무능했던 경찰이 시민단체와 여론 동향 파악에는 신속하게 나섰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과 SBS보도 등에 따르면 경찰청은 지난달 31일 진보·보수 성향 시민단체들과 여론 동향, 언론의 보도계획 등 정보를 수집해 내부 문건을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불과 이틀 만이다.

'정책 참고 자료'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특별취급"이라는 주의 표시와 함께 '대외공개, 수신처에서 타 기관으로 재전파, 복사 등을 할 수 없습니다'라고 씌여 있고, 정부의 대응 방안 등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실이나 국무조정실 등 상급기관에 보고하기 위한 용도로 추정된다.

문건에는 우선 이태원 사고 관련 주요 단체 동향이 담겼다. 문건에 따르면 경찰은 "일부 진보성향 단체들은 세월호 사고 당시 정부의 대응 미비점을 상기시키거나 지난 정부의 핼러윈 대비 조치와 올해를 비교하는 카페글·카톡 지라시 등을 공유하며 정부 성토 여론 형성에 주력"하고 있다고 파악하면서 이태원 참사가 촛불집회의 동력 및 정권 퇴진 운동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경찰은 문건에서 이번 사태가 세월호 참사 때와 비슷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경찰은 '세월호 사고와의 연계 조짐도 감지, 정부 대응 미비점 집중 부각 전망' 항목에서 "전국민중행동측은 박근혜정부 당시 세월호 책임자들을 단죄하지 않은 검찰과 그 연장선에서 들어선 정부가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며 "제2의 세월호 참사로 규정해 정부를 압박한다는 계획"이라고 했다.

정부 대응에 대한 의견도 담겼다. 문건은 "정부가 신속히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하고 구호금 지원을 발표했지만 통상 대형참사 유가족에게 지급되는 보상금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해 향후 보상 문제가 지속적 이슈화될 소지"가 있다며 "빠른 사고 수습을 위해 장례비·치료비·보상금 관련 갈등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 세월호 당시 여당 의원의 '교통사고' 발언 등이 이슈화되며 비난에 직면했던 사실을 들며 "단골 비난 소재인 고위공직자의 부적절한 언행·처신을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고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라 공공안녕을 위해 작성된 문건으로 사찰은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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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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