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추모집회에서 정부 무능·무책임 성토

"이게 나라냐."

6년전 광화문 광장에서 울려 퍼졌던 구호가 다시 등장했다. 지난 5일 서울지하철 시청역 7번 출구 앞 도로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시민 촛불집회'에서다. 이날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은 '국민들이 죽어간다 이게 나라냐', '퇴진이 추모다' 등의 피켓을 들고 이번 참사에서 드러난 윤석열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성토했다.

경기도 일산에서 온 70대 김 모씨는 "희생당한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눈물이 난다"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정부를 보면서 작심하고 집회에 참석하게 됐다"고 말했다.

경기도 수원에서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왔다는 이 모씨는 "참사 다음 날 눈을 떠보니 후진국이 돼 있었다"며 "서울 한복판 길거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압사를 당했다는 사실을 전혀 믿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구조활동도 뒷북이고 책임 안지고 꼬리 자르기 하려는 것도 8년 전 세월호와 똑같다"며 "박근혜 탄핵 때가 마지막인줄 알았는데 또다시 촛불을 들게 됐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서울 노원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러 왔다는 윤 모씨는 "이번 참사에 대한 정부 대응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며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책임자에 대해선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원도 속초에서 온 한 모씨는 "20대 두 딸이 참사가 있던 날 속초에 왔는데 서울에 있었으면 이태원에 갔을 것이라고 하더라"며 "두 딸이 현장에 없었던 것에 감사드릴 뿐"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과거 경찰로 근무했었다는 한씨는 "현장의 일선 경찰들은 지시에 따라 최선을 다했을 것"이라며 "윗사람, 상관이라는 분들은 쏙 빠지고 아랫사람들에게만 책임을 지우려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집회에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대다수를 차지한 2030세대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30대 직장인 서 모씨는 "희생자 대부분이 제 또래이다 보니 더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했다"며 "저나 제 동생, 친구들이 희생될 수도 있었던 것 아니냐"고 했다. 그는 "세월호 때와 비교해서 달라진 게 없고 오히려 더 뒤쳐졌다는 느낌마저 든다"며 "사고 대응에는 무능했던 정부가 일방적으로 애도 분위기를 주도하며 진상규명을 억누르려 한다"고 비판했다.

20대 대학생 최 모씨는 "서울 한복판에서 말도 안되는 일이 발생했는데 정부에서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서로 네 탓 타령을 하다가 이젠 방송국, 거기에 간 사람들 잘못이라는 식으로 몰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화가 났다"면서 "윤석열정부가 집권하고 있는 한 이런 참사는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나왔다"고 했다. 그는 "윤 대통령은 지난번 폭우 때에도 참사 현장에 가서 엉뚱한 소리를 하더니 이번에도 사진찍기에만 바빠 보였다"며 "과연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대통령의 자세가 맞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서 시민들의 분노는 윤 대통령의 퇴진 요구로 이어졌다.

같은 세대 친구들이 희생당한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안좋아 이태원역에서 추모하고 집회에도 참석하게 됐다는 20대 직장인 박 모씨는 "윤 대통령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요구했다.

가족 단위의 참석자들도 여럿 있었다.

경기도 동탄에서 처남 식구들과 함께 왔다는 배 모씨는 "큰 사고가 났는데도 정부의 대처는 미온적이고 남의 집 얘기하듯이 하는 게 너무 안 좋았다"며 "국민 눈높이에 맞춰서 모든 행정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배씨의 처조카 중학생 김 모군은 "외국에서만 보던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날 줄 몰랐다"며 "친구들도 가슴 아파한다"고 전했다. 그는 "정부의 대처가 미흡하다고 생각해 이런 데 나와서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국가애도기간 마지막 날이었던 이날 저녁에는 서울 뿐 아니라 부산, 대구, 광주, 수원, 춘천, 군산, 제주 등지에서도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 정부의 책임을 묻는 집회가 열렸다. 서울 집회에는 주최측 추산 6만여명의 시민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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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원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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