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통과시한 쫓겨 결국 지도부에 협상권 넘겨

예결위원 지역·의원별 1년씩, 공식적 예산확보 창구

끼어 들어온 지역구 사업예산, 사실상 심사 어려워

국회의원의 지역구 예산 따내기는 '실력'이면서 다음 국회의원 선거의 당락을 결정하는 주요한 요소다. ○○표 도로, ○○표 건물 등 국회의원들의 이름이 들어간 성과들이 유권자들의 표심에 새겨지게 마련이다. 1년 장사는 예산 확보 실적에 달려있고 특히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도 그 영향력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들의 예산확보는 전쟁에 가깝다.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챙기는 쪽지예산'을 담은 비판 기사를 싫어하지 않는 이유다.

기자회견 참석자들과 악수하는 주호영 원내대표와 박홍근 원내대표ㅣ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내년 예산안·세법 일괄 합의 발표 기자회견을 마치고 참석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정책위의장, 박홍근 원내대표,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 추경호 경제부총리. 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문제는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예산 따내기 경쟁이 예산안 부실심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예산안 합의는 국회의 '감액권'과 정부의 '증액동의권'간의 협상의 결과물이다. 이 과정에서 협의내용이 드러나지 않은 '깜깜이'가 관행으로 굳어졌고 이 '깜깜이' 과정이 지역구 예산 끼워 넣기에 활용되고 있다. '불투명'은 '부실 심사'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게 만든다.

29일 국회 예산결산특위에 참여하고 있는 모 의원은 "이번 예결위 예산조정소위원회에서는 감액만 했고 증액은 전혀 손도 못 댔다"며 "증액은 소소위와 지도부 결정에 의해 이뤄졌다"고 했다. 소소위와 지도부 협상은 법정 심사방식이 아니다. 예결소위가 10여명으로 구성돼 합의가 어렵다는 이유로 기재부 차관, 여야 간사, 예결위원장이 참여하는 '소소위'라는 담판기구가 비공식적으로 만들어졌다. 소소위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게 되면 최종단계로 원내대표와 기재부 장관으로 수위가 올라간다. 이 또한 비공개로 이뤄진다. 소소위와 지도부 담판은 비법정 심사이기 때문에 회의록도 없다. '깜깜이' 심사가 되는 이유다. 2023년 예산안 심사에서는 예결소위에서 감액심사를 마쳤지만 증액심사에 합의하지 못해 증액심사 전체를 소소위와 지도부 담판에 넘겨졌고 결국 증액심사는 '그들만의 합의'로 마무리됐다.

◆한달도 안되는 예결위 심사기간 = 예산안 심사기간이 현재와 같이 한 달을 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예결위 심사시간 역시 부족할 수밖에 없다. 예결위는 무난히 진행되더라도 최소한 20일정도가 필요하다. 공청회, 정부의 제안설명, 전문위원의 검토보고, 종합정책질의, 부별심사, 찬반토론 등을 거쳐야 한다.

올해 예결위는 지난달 7일에 열었다. 상임위에서 예비심사를 끝낸 후 예결위 심사를 시작해야 하지만 시간이 부족해 이 절차는 무시됐다. 11월30일까지는 마무리해야 법정시한(12월2일 통과)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사무처 의안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7~16일까지 제안설명, 검토보고를 거쳐 종합질의가 실시됐다. 예산조정소위는 17일부터 29일까지 13일 동안 모두 8차례 열렸다. 각 상임위별로 심사를 거쳐 감액에 합의했다. 시간은 부족하고 여야가 이견이 많아 결국 예산조정소위를 뛰어넘는 합의체로 넘겼다. 소소위와 지도부 협상이다.

◆나눠먹기 배분의 관행 = 예결위에는 지역구 예산을 끼워넣기 위한 '배분의 관행'이 존재한다. 국회 예결위는 상임위에서 통과된 예산안을 참고삼아 사실상 처음부터 재검토한다. 상임위의 감액안은 대부분 수용하려고 한다. 반면 상임위 증액 요구는 대부분 수용되지 않는다.

실권은 예결위에 있다. 예결위원은 50명이다. 임기가 1년이다. 4년간 200명이 참여할 수 있는 셈이다. 심사 중간에 사보임을 통해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의원들은 4년 임기 동안 한 번 정도의 예결위 심사에 참여하게 된다.

예결위원 경쟁이 심하다. 다만 예결위원은 충청, 호남, 강원, 영남 등 권역별로 배분해 임명한다. 예결위원들은 자신의 지역구 예산뿐만 아니라 권역의 관심사안까지 챙겨야 하고 권역 지역구 의원들의 요구사항도 반영해야 하는 역할을 맡는다. 더욱 강력한 실세는 '예산조정소위 위원'이다. 모두 15명으로 구성되고 위원장은 우원식 예결위원장이 겸임할 뿐만 아니라 여야 간사인 이철규 의원과 박정 의원도 모두 위원으로 들어가 있다.

예결위 모 인사는 "각 정당 지도부, 예결위원, 예결소위원 등의 민원, 지역구 예산을 정부도 챙겨주는 게 관례화돼 있다"면서 "증액 사업에서 이러한 예산들만 합해도 1000개 이상의 사업이 될 것"이라고 했다.

◆야당 '감액권', '증액동의권' 정부와의 협상카드로 = 예산안 심사가 마지막 단계인 소소위와 지도부 담판에 들어가면 국회는 '감액권'을 손에 쥐고 정부의 '증액동의권'을 압박한다. 예산조정소위에서 '감액'을 의결하지 않은 것도 입법부에서 정부와 협상하기 위한 꼼수다.

정부는 애초 편성한 대로 통과시키기 위해 감액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고 이를 활용해 국회는 지역구 예산 등을 증액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감액과 증액 협상은 예산안을 편성때와 비슷하게 맞추는 선에서 마무리되기 일쑤다.

내년 예산안 협상도 전체적으로는 3000억원이 줄었지만 3조~4조원이 줄고 비슷한 규모를 늘릴 수 있었다. 국회는 '감액'한 정도로 '증액'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모 의원실 보좌관은 "국회의원들이 감액을 많이 하려고 하는 이유는 그만큼 증액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늘어난 증액 부분은 사실상 제대로 심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했다. "정부에서 편성한 예산도 모두 심사하기 어렵지만 지역구 사업에 대한 심사는 사실상 사각제대에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예견된 부실 예산심사" 연재기사]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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