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례품보다 쓰임새 홍보 더 중요" … '기부자 → 생활인구' 이어질지 관심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될 고향사랑기부제가 열악한 지방재정 문제를 극복할 대안으로 자리 잡을지 관심이다. 고향사랑기부제는 국민 누구나 거주지 외 지방자치단체에 연간 500만원 한도 안에서 기부할 수 있는 제도다. 제도가 활성화되면 지자체와 도시민들의 다양한 교류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인구소멸 문제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지정기부·민간플랫폼' 눈길 = "양구를 살리고 지구를 살리고 싶으시다면 지금 양구의 못난이 농산물과 함께 해주세요."

강원도 양구군이 고향사랑기부금 모금을 위해 진행 중인 '못난이 농산물 多가치 프로젝트' 안내 문구다.

양구군이 선택한 고향사랑기부제 모금 방식은 '지정기부'다. 시행 초기 환경위기 극복을 주제로 한 두 가지 프로젝트를 내놓고 이에 공감하는 기부회원을 모집하는 구조다. 모집 기간은 1년이고, 모금 목표액은 각각 1억원이다.

양구군은 못난이 농산물 프로젝트를 통해 못난이농산물 실태파악 연구와 상품 개발, 못난이 농산물과 연계한 공정관광 프로그램 등을 추진한다. 기후위기로 과거에는 생산되지 않던 다양한 농산물을 활용해 지역 농가소득도 올리고 환경문제도 각인시키겠다는 의도로 추진하는 사업이다.

양구군은 '북위 38° 꽃꿀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꿀벌 생태계 복원연구 지역 커뮤니티 지원, 꿀벌 서식지 확보 및 꽃꿀식물 식재 등이 주요 사업이다. 벌통 만들기 공방체험, 꿀벌 생태체험처럼 기부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체험사업도 준비 중이다.

3일 현재 못난이 농산물 프로젝트는 목표치의 9%인 897만4000원(32명), 꽃꿀 프로젝트는 목표치 2%인 143만3000원(10명)이 걷히며 순항하고 있다.

양구군은 프로젝트 운영을 민간에 위탁했다. 담당 공무원 몇 명만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답례품을 관리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일찌감치 전문 기관에 사업을 맡겼다. 위탁기업은 일본에서 고향사랑기부 대행운영 경험이 있는 사회적기업이다.

고두환 ㈜공감만세 대표는 "공무원 조직이 감당하기에 부담스러운 업무를 민간과 함께 추진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기부자들의 효능감을 높여 다양한 추가 사업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40여개 민간 업체들이 지방자치단체 위탁을 받아 고향납세 플랫폼을 운영한다. 일본 홋카이도 북동쪽 외진 바닷가에 자리한 몬베츠시도 민간기업에 플랫폼 운영을 맡긴 지자체 중 하나다. 인구가 2만1000명 남짓인 이 지자체는 일본의 1740여개 기초지자체 가운데 2021년 고향납세 기부금을 가장 많이 받았다. 몬베츠시가 받은 기부금은 전체 예산의 절반 수준인 1530억원에 이른다. 몬베츠시가 이처럼 많은 기부금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유빙 보호'라는 전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캠페인을 발굴했기 때문이다.

◆"기부 동기부여가 더 중요" = 답례품만으로는 고향사랑기부금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데는 한계가 분명하다. 전문가들은 이보다는 모금액을 어디에 쓸 건지를 알리고, 또 집행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측면에서 일부 지자체의 시도는 눈여겨볼 만하다. 충북도는 기부금을 재원으로 취약계층에 의료비를 장기 저리로 빌려주는 '착한은행'을 운영키로 했다.

광주 동구는 '어린이 재능 발굴·교육 사업'에 기부금을 사용할 계획이다. 기부금으로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다양한 분야의 교육·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임 택 광주 동구청장은 "이미 3~4년간 지역의 모든 초등학교에서 통기타교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반응이 뜨겁다"며 "좀 더 다양한 분야로 재능 교육을 확대하면 아이들도 부모들도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 구청장은 이 사업이 장기적으로는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모들의 이주로까지 이어지길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기부금을 어떤 사업에 활용할지를 밝히지 않은 지자체들도 많다. 이들은 앞으로 기금운영위원회를 열어 사용처를 정하겠다는 생각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고향사랑기부금이 얼마나 걷힐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에서 사용처를 정하는 게 부담스럽다"며 "향후 기금운영위원회를 통해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말했다.

◆4500여종 답례품 고르는 재미 쏠쏠 = 제도시행 초기에는 답례품이 성패를 가를 수도 있다. 고향사랑기부금제는 단순히 보면 기부에 대한 대가로 답례품 쇼핑의 기회를 갖는 것과 비슷하다. 전액 세액공제가 되는 10만원을 기부할 경우 3만원 가치의 답례품이 덤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지자체들이 어떤 답례품을 주는지 먼저 확인하고 기부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시행 초기 통합 플랫폼 고향사랑e음에 등록된 답례품은 4500여종에 이른다. 당초 예상보다 2배 이상 많은 숫자다. 종류도 다양하다. 각 지역의 농·축·수산물은 기본이다. 3일 현재 등록된 상품이 1907개나 된다. 지역 특산물로 생산한 가공식품도 1868종에 이른다. 마땅한 특산물이 없는 지역은 생활용품(476종)을 답례품으로 등록하기도 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상품권이다. 지역마다 지역사랑상품권, 지역쇼핑몰 모바일상품권 등을 등록했다. 이를 답례품으로 지급해 지역 안에서 다양한 용도로 소비하도록 하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이보다 더 적극적으로 체험·관광 상품을 내놓은 지자체들도 많다.

강원 화천군은 오는 7~29일 열리는 산천어축제 예약낚시터 표를 답례품으로 내걸었다. 전남 보성군의 '시골 체험관광 패키지', 전북 완주군의 '안덕마을 체험 및 이용권'도 있다. 강원 동해시의 '서핑 강습권'도 눈에 띄는 답례품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특정 상품보다는 지역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포인트를 제공해 효과가 지역경제에 고르게 영향을 미치도록 했다"며 "선택 폭이 넓어진 만큼 기부자들도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말 성적표 부담 '경쟁 치열' = 연말이면 고향사랑기부금 성적표가 나온다. 시행 첫해 어떤 지자체가 기부금을 얼마나 모금했는지가 공개된다. 수도권 등 도시지역 지자체들은 큰 관심이 없겠지만 농·어·산촌 지자체들은 경쟁이 치열하다. 성적표 공개에 부담감을 느끼는 지자체들도 있다.

이 때문에 단체장들까지 경쟁 대열에 직접 나섰다. 정영철 충북 영동군수는 2일 시무식을 마치고 곧바로 자매도시인 경기 오산시를 찾아가 100만원을 기부했다. 오산시민들이 영동군에 기부해 달라는 간청이다. 정 군수는 이날 오후 인천 남동구도 방문해 역시 100만원을 기부했다. 또 이달 중 서울 서대문구와 중구, 전남 신안군에도 각각 100만원씩을 기부할 계획이다.

가세로 충남 태안군수도 이날 교류도시인 충북 제천시와 강원 동해시, 경남 고성군에 기부금을 전달했다. 정영철 군수는 "건전한 기부활동에 자매도시 주민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상호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명인들을 앞세운 지자체들도 있다. 충북 옥천군은 방송인 이미주씨를, 제주도는 탤런트 현 석씨를 기부자 대표선수로 내세웠다. 경북이 내세운 유명인은 탤런트 이정길씨다.

충북 음성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강원 원주시는 프랜차이즈 업체인 명륜당 이종근 회장이 각각 대표선수로 나서 기부금을 전달하며 고향사랑기부제를 홍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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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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