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환 서강대 명예교수 정치외교학과

동남아의 '왕조정치'를 21세기에 부활한 시대착오적인 전근대성으로 본다면, 몇몇 동남아국가에서 오랫동안 기승을 부리고 있는 군부정치 역시 근대성을 탈피하고 현대사회로 진입, 진화하지 못하는 동남아정치의 또 다른 시대착오성을 드러낸다. 오늘날 동남아 정치지도를 들여다보면 부활한 정치왕조가 도서부의 민주국가들을, 막무가내 '군부엘리트'들이 미얀마와 태국 두 대륙부 국가를 장악한 형국이다. 여기에 일당체제 일인독재 국가들이 얼마 남지 않은 여백을 채우고 있다.

필자도 정치사회학자들의 용어를 빌려 할 수 없이 '엘리트'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자기 나라의 정치를 난도질하고 있는 미얀마와 태국의 군부집단에게 썩 어울리는 단어는 아닌 것 같다. 엘리트의 의미가 권력독점이라는 부정적 내포를 갖고 있으면서도 높은 교육수준과 품위, 경쟁성 등의 측면에서 긍정적 내포도 담겨있는데, 이런 긍정적 의미는 지금의 미얀마와 태국의 군부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국부가 민주화 필요충분조건 아닌 듯

미얀마 군부는 1948년 독립 이래 첫 10년을 뺀 65년 대부분을 통치하면서, 단순한 정치적 독재를 넘어 소수민족과 버마족을 가리지 않고 자국민을 향해 각종 반인륜적 반인권적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국가테러 집단이다. 태국의 군부는 미얀마 군부와 비교해 훨씬 긍정적인 엘리트 이미지를 풍기기는 하지만 1932년 입법혁명 이래 거의 한세기가 지나는 동안 20여차례 쿠데타를 통해 정치를 유린했다. 군 장성들은 그중 13차례 성공적인 군사정변을 통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정당을 만들고 헌법과 선거법을 주물러 집권했다.

제3의 민주화 물결을 주도한 라틴아메리카와 동아시아에서는 이미 역사적 유물이 되어버린 군사쿠데타와 군부통치가 가까운 이웃 동남아에서 이렇게 버젓이 활개를 치는 현실은 우리 모두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필자와 같은 정치학자에게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이례적 현상이기도 하다.

어떻게 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을 비롯한 각종 사회경제지표에서 인근 민주국가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을 훨씬 앞서면서도 정치발전에서는 30년 이상을 뒤처질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민주세력이 82% 지지율이라는 압승을 거두었던 1990년 총선이 무려 33년 전의 일이고, 2015년 2020년 똑같은 압승을 되풀이한 바 있는 미얀마가 이렇게 오랫동안 군부독재에 시달리고 있단 말인가?

미얀마는 동남아 최빈국의 하나이고 태국은 그래도 부국이라 할 수 있는데, 똑같이 군부독재에 시달리는 걸 보면 - 앞서도 살펴본 바 있지만 민주주의 동티모르와 선거권위주의 싱가포르를 비교해 봐도 - 아무래도 동남아에서는 잘살고 못사는 게 민주화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닌 듯하다.

반인류적 국가테러집단 미얀마 군부

미얀마 군부가 오만하고 그릇된 주인의식에 빠져들게 된 것은 역사적 문화적 요인에 기인한다. 버마족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다. 원래 중국 운남성에 살던 버마족이 남하하면서 원주민이던 퓨족 몬족과 충돌했다. 특히 버마 저지대에 불교문화를 꽃피우고 있던 몬족과는 근대에 들어서까지 전쟁을 벌였다.

대륙부 동남아에서 가장 호전적인 민족으로 알려진 버마족은 곡창지대인 에야워디(Irrawaddy)강 유역을 차지하기까지 모든 소수민족을 굴복시켰을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함께 유래한 민족 샨족과 타이족이 세운 나라들과도 전쟁을 벌이고 수도를 함락해 왕조를 멸망시키기까지 했다.

최강자로 부상한 버마족 꼰바웅왕조는 제국주의 영국과도 60년 동안 세차례에 걸쳐 전쟁을 치를 정도로 끈질김을 과시했다. 독립을 위해 일본 및 영국과 협상하고 무력투쟁을 벌인 주역도 그 유명한 아웅산장군과 29명의 '군인들'이었다. 1948년 독립 이후 10년간 정국을 이끌었던 우누 총리는 내전과 정쟁으로 불안하던 나라를 네윈 국방장관과 군부에게 맡겼다. 네윈이 4년 후 1962년 쿠데타를 통해 의회정치를 종식시키게 되는데, 명실상부한 군부독재의 시작이었다.

이민족과의 전쟁이나 독립투쟁 중에 떨친 용맹함과 호전성은 독립 이후 국가건설과 국민형성 과정에서 국내 소수민족과 국민들에 대한 탄압 인종차별 테러 추방 학살 등으로 변질됐다. 그중에서도 버마족 군사정부에 끈질기게 맞섰던 몬족이나 까잉족, 이슬람을 신봉하는 여까잉족과 로힝야족이 당한 잔학상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

1988년 '양곤의 봄' 이후 군부의 적은 동족인 버마족으로 확대되었고, 2020년 11월 군부가 총선결과를 무효화하는 쿠데타를 감행하고 이에 저항하는 양곤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자, 적지 않은 미얀마인들은 다시 정글로 들어가 무기를 들었다.

지난 30년 동안 미얀마가 표출해 온 군부 대 국민(민간인) 갈등이라는 정치적 균열은 역사적 선례나 유례를 찾기 힘들다. 어떻게 인구의 1%도 안되는 군인들이 저렇게 오랫동안 국민들과 등지고, 국민들을 적으로 간주해 총질을 할 수 있을까?

온라인 반정부지 '에야워디'에 기고한 예모헤인이라는 학자는 "군인은 미얀마의 수호자라는 이념" "비인간적이고 잔혹한 군 내부의 상하관계" "군인들에게 습관화된 면책특권" "무자비한 보복 관행" 등 미얀마군부의 독특한 '조직문화'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63회에 걸쳐 3만4000여명의 장교 졸업생을 배출한 국방사관학교(Defense Service Academy)는 생도들에게 "교육목표는 고도로 교육받은, 모든 일에 능통한 새로운 세대의 국가지도자를 기르는 것"이라고 주입한다.

교육과정부터 특권의식 갖춘 태국 군부

국민과 구별하는 군부의 특권의식과 배타적인 조직문화는 태국에서 장교를 배출하는 선발 및 교육 과정에 더 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태국의 장교들은 청소년 시기부터 군대 장교로서뿐만 아니라 장차 나라의 지도자로서 교육과 훈련을 받는다. 군 장교와 경찰 간부를 기르는 육·해·공·경찰 4개 사관학교는 4년 학사과정이지만, 사관학교 입학생 대다수가 국군사관예비고등학교(AFAPS) 출신들이라 사실상 7년 간 장교교육을 받는 셈이다.

게다가 이 예비학교는 100대 1이 넘는 치열한 경쟁률을 뚫어야 입학할 수 있으므로, 이런 영재학교까지 거친 태국 장교들의 특권의식과 엘리트로서 자부심은 대단할 수밖에 없다. 졸업 후 이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중요한 임무는 왕권의 수호이고, 가장 배치받고 싶어하는 부대는 제1사령부 제1여단 국왕수비대다. 지금은 쭐라쫌클라오 왕립사관학교로 불리는 육군사관학교는 태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왕 라마5세가 1887년에 설립했다.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태국에서 국왕과 군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태국의 현대정치사는 군 장성 출신의 총리와 정치인들의 이름으로 각인되어 있다. 높이 평가받는 정치지도자도, 낮게 평가받는 지도자도 모두 군 장성 출신들이다. 후대의 평가야 어떻든 지금까지 우리 기억에 남아 있는 민간인 출신 총리는 추안 릭파이와 탁신 신나왓 정도밖에 없다. 무려 9년 동안 뚜렷한 치적 하나 없이 태국정치를 분열과 혼란의 수렁으로 몰아 넣고 있는 최악의 현 총리 쁘라윳 짠오차 또한 국군총사령관 출신이다.

동남아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미얀마와 태국의 군부정치에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한다. 미얀마 군부는 국제사회의 비난과 압력을 수십년 동안 견뎌 낸 끈질긴 집단이다. 사실 그 뒤에는 미얀마 문제해결과 제재에 대해 입장을 달리하고 있는 미국·유럽 중국 인도 아세안 국가들의 각각의 셈법이 있다. 일상화되고 고질화되어 세계 여론의 주목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태국 군부의 정치개입 역시 언제까지 지속될 지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신윤환 서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