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휘 이화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한국 외교가 미중 사이에서 '거리적 균형'을 확보하는 건 처음부터 실현불가능한 목표였다. 우리가 추구할 균형외교는 '이익의 균형' 개념으로 재정립돼야 한다. 다시 말해, 외교정책의 기준과 원칙을 정해두고 상황에 따라 이익에 맞게 선택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의사와 한 여성이 각자 생을 받아들이고 맞서는 매우 상반된 모습을 정교하게 묘사했다. 주인공인 의사와 여성이 생의 한가운데 놓인 도전들을 어떻게 수용하느냐가 결국 두 사람의 정체성이 되었다.

국제정치학 교과서에서나 등장하던 '대만카드'라는 표현이 지금과 같이 호사가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건 2016년 미국 대선부터였다. 중국에 대한 압박을 선거 캠페인으로 삼았던 당시 트럼프 후보가 당선인 신분이던 2016년 12월 2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통화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론적 영역에 머물던 '대만카드'가 현실적 영역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미국과 대만의 정상 간 통화에 대한 당시 중국 왕이 부장의 표현을 정확히 옮기자면 '허튼수작'(小動作)이었다.

'하나의 중국' 정책은 미국은 물론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인정하는 국제사회의 중요한 원칙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1949년 지금의 중국이 등장한 이래 미국과 중국이 바라보는 대만문제는 두 국가 간 관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미국과 아시아의 한가운데'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의 대만침공 가능성 높지 않아

2차대전 이후 세계의 중심이 된 미국에서는 전세계를 주무르는 전략가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대전 당시 두개의 전선이 형성됐다. 독일에 맞선 유럽전쟁과 일본에 맞선 태평양전쟁이다. 이는 일종의 유산으로 남아 세계 경영에서도 유럽 전략가들을 가리키는 '유럽 스쿨'과 아시아 전략가들을 가리키는 '아시아 스쿨'로 양분됐다.

'본토 중국'과 '대만'으로 갈라진 아시아는 미국의 전략가들에게 고민거리였다. 중국을 배제한 아시아 질서 즉, 데탕트 이전까지 아시아 전략가들 중 '재팬 스쿨'이 미국의 아시아 경영을 주도한다.

냉전이 끝나면서 '차이나 스쿨'과 '재팬 스쿨'로 양분된 아시아 전략가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 둘 사이의 경쟁과 전략적 판단의 간극은 더욱 벌어졌다. 하지만 2000년 대선 전후로 등장한 '아미티지 보고서', 단순화의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미국의 힘을 사용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던 '네오콘'의 득세, 아베 신조 총리에 의한 '론-야스 밀착의 부활' 등이 이어지면서 일본은 이제 미국의 전략가들에게 '중국 혹은 일본'이라는 이분법적 접근대상이 아니다.

특히 '인도-태평양 전략'이 트럼프행정부와 바이든행정부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외교전략으로 자리잡으면서 일본은 미국과 아시아 사이에 놓인 국가가 아니라 미국과 하나의 결합체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대만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정체성에, 또 미국과 중국의 목표 속에 더 뚜렷하게 존재하게 되었다.

일단 한가지 질문을 해보자. 미국의 전략가들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것으로 보는가? 미국인들 사이에서 매우 민감한 사안이지만 일단 필자의 판단으로는 '그렇지 않다'이다. 미국과 중국 모두 대만문제가 현상유지 범주 안에 머물러 있을 때의 이해관계가 중국의 대만 침공으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이익을 포함한 이해관계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특히 군사전문가들은 중국의 대만 침공이 군사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을 비교적 낮게 보고 있다. 지리적 환경이 다르긴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전에서 1년 넘게 보여주고 있는 군사작전 운용능력의 한계는 중국에게 암시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몇㎞ 이내에 있는 진먼섬 정도는 어떻게 해볼 수 있겠지만 대만 장악은 차원이 다르다. 실패로 돌아간다면 경제성장과 군사성장이라는 두개 목표를 차근차근 실천해 오던 글로벌 강대국 중국의 위상에 치명상이 될 수 있다. 특히 미국이 동아시아 중동 유럽 태평양 등 전세계에서 일상적으로 전개하는 고도의 군사훈련과 달리 중국은 실전경험이 거의 전무한 상태다.

미국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되기 이전 우크라이나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이 시작되고 2024년 1월 대만 총통 선거가 마무리되는 시점인 내년 상반기를 전후로 현재의 미중갈등은 숨을 고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대체로 우세하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2022년 한해 동안 미중 간 무역량은 6900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수 전문가들의 설명처럼 '갈등과 협력'이 공존하는 미중갈등의 특징을 다시 한번 잘 보여줬다.

우리 외교 스탠스, 대만 리스크와 밀접

윤석열정부는 출범 이후 일관되게 외교의 시간에 집중하고 있다. 4월 말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평가가 분분하지만, 윤석열정부의 '글로벌 중추국가' 시도 역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주도성과 제안 능력을 강화하는 어젠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초강대국인 중·일·러에 둘러싸여 동북아라는 '섬'에 갇혀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 한미동맹은 활용하면 할수록 이득이 될 수 있다. 물론 미국을 강조하는 것이 중국을 비롯해 다른 모든 외교 파트너를 포기하자는 메시지로 비쳐서는 안될 것이다.

현재 우리 정부의 외교 스탠스는 '미국과 아시아의 한가운데' 놓인 대만 리스크와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다. 대만위기 시 주한미군의 현장 투입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이 무엇이냐는 매우 원색적인 질문에서부터, 대만위기 시 동북아 안보정세를 판단하는 북한의 인식은 무엇인가 하는 매우 복잡한 질문에까지 우리의 전략적 범위는 폭넓게 펼쳐져 있다.

1949년 10월 1일 현재의 중국정부가 수립된 지 불과 몇개월 후 발발한 한국전쟁 당시 마오쩌둥은 대만통일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부족하고 제한적이었던 군사자원을 한국전쟁에 투입하기로 결정한다. 1950년 10월 19일의 일이다. 외교사가들 사이에서 아직까지 평가가 분분하지만 '대만'과 '한국전 참전' 사이의 생존적 교환이 이뤄진 셈이다.

미국과 대만 사이의 교역 규모 확대도 잘 알려져 있다. 미국의 주요 수입 대상국 순위에서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던 대만은 2021년부터 10위권에 포함되는 미국의 핵심 수입국가가 되었다. 또한 작년 말 미국 의회는 대만에 약 1억8000만달러 무기 수출을 승인했다. 대만 기업 TSMC는 전세계 첨단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서 5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대만 기업의 중국 내 투자는 정치의 힘으로 막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복원력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대만위기를 포함한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처해야 하겠지만, 외교안보 정책에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이 주변 강대국보다 부족한 한국의 입장에서는 신중함과 추진력 사이의 균형이 절대적으로 중요해 보인다.

미중 사이 '이익의 균형' 개념 필요

한국 외교가 미중 사이에서 '거리적 균형'을 확보하는 건 처음부터 실현불가능한 목표였다. 우리가 추구할 균형외교는 '이익의 균형' 개념으로 재정립돼야 한다. 다시 말해, 외교정책의 기준과 원칙을 정해두고 상황에 따라 이익에 맞게 선택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대만을 둘러싸고 미국의 전략가들이 고민하는 가능한 모든 변수들을 확인하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오는 5월 19일~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이 자리에서 누군가의 발언을 통해 대만문제가 또 불거질 수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 정교하게 세팅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3월 한일정상회담, 4월 한미정상회담, 5월 한미일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한미일 외교안보 축이 완성되려는 순간이다. 이럴 때일수록 대만문제를 우리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순간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