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정 세종연구소 인도태평양연구센터장

굵직한 외교행사가 많은 9월이다. 그중에서 올해 인도가 의장국을 맡은 G20는 많은 이슈를 낳았다.

2023년 G20의 주제는 '하나의 지구, 하나의 가족, 하나의 미래'(One Earth, One Family, One Future)였다. 모디 총리는 G20을 인도의 "외교적 성년식"에 비유하면서 글로벌사우스(Global South)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기회로 활용하겠다고 선언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분열이 심화되고 있는 국제질서에서 인도는 G20를 어떻게 이끌고 무엇을 얻었을까?

G20와 세계의 균열상

9월 9일~10일 양일 간 뉴델리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담은 시작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정치적 비난, 나아가 체포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정상회담에 불참했다.

러시아와 "한계가 없는(no limits) 파트너" 관계를 선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G20 정상회담 불참을 통해 서구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2012년 정권을 잡은 이후 G20 회의에 불참한 적이 한번도 없던 시진핑은 뉴델리로 향하는 대신 중국 동북부 헤이룽장성의 수해 피해지역을 찾았다.

G20정상회의에 참석한 바이든과 모디. AP=연합뉴스

정상회의에 참석한 G20 지도자들은 러시아 외무장관과 함께할 수 없다며 2022년에 이어 올해도 G20 공식 '가족사진'을 남기지 않았다. 정상회담 첫날 기습적으로 타결한 공동성명은 러시아의 침공을 비난하지 않았고, 유엔 결의안과 영토 경계 존중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수준에 그침으로서 우크라이나 문제를 가장 원론적인 표현으로 봉합했다. 이에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번 정상회담이 성공이라고 선언하고 글로벌사우스 국가들과 인도에 감사를 표했다.

기후변화 의제에서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는 앞선 7월 인도 첸나이에서 개최된 회의에서 이미 예견됐던 것으로, G20 회원국 중 선진국과 개도국 간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선진국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역량을 3배 확대하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5년까지 2019년 대비 60% 수준으로 단계적 감축하자는 목표를 제시했으나, 러시아 중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의장국 인도까지 모두 반대하면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이는 G20 국가들이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G20는 인도가 의장국을 맡으면서 글로벌사우스를 포용하는 새로운 통합의 장을 열었다. 대표적으로 55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아프리카연합(African Union, AU)이 G20 의장국 인도의 초청으로 합류하게 됐다. G20가 주요 19개국과 유럽연합(EU)에 이어 AU를 두번째 지역기구 회원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마키 살(Macky Sall) 세네갈 대통령의 표현대로 G20가 '서구 중심의 불공정한 관행을 바로잡는'(repair an injustice)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G20 회의를 통해 글로벌사우스 의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점도 특기할 만하다. 이를 통해 인도는 저소득국의 부채위기 해소, 세계금융기구의 융통성 있는 지원과 구조개혁을 이끌어냈다. 이는 중국이 브릭스개발은행을 만들고 저소득국을 대상으로 부채함정 외교를 펼치는 데 대한 대응책으로서, 브레턴우즈 체제의 고안자이자 지지자인 서방세계에서도 이견이 없었다.

중국의 일대일로에 맞서는 '향신료 루트'의 등장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은 인도-중동-유럽을 연결하는 현대적인 향신료 루트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공개했다. 이 계획은 중국의 막대한 인프라 지출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중동 전역에 철도 항만 전기 및 데이터 네트워크와 수소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도와 유럽 간 무역도 최대 40%까지 늘릴 수 있을 전망이다.

모디정부가 얻은 국내정치적 성과

모디 총리의 글로벌 리더십을 보여주기에 G20 만한 무대도 없었다. G20는 인도가 그간 참여한 브릭스(BRICS), 상하이협력기구(SCO)와는 격이 다르다. 이 회의에 참석차 인도를 찾은 주요국 정상들과의 포옹외교(hugplomacy)를 비롯해 국제무대에서 '노련한 외교관 모디'의 모습을 홍보할 절호의 기회였다. 거리마다 G20 홍보물을 부착했는데, G20 장관급 회의를 개최한 16개 도시는 특히 집중적인 홍보 무대가 됐다. 2024년 봄 총선을 앞둔 모디의 재선 캠페인을 글로벌 차원에서 벌인 셈이다.

특히 모디정부는 '바라트'(Bharat)를 국제무대에 데뷔시키는 데 성공했다. G20 정상들은 '인도 대통령'(The President of India)이 아닌 '바라트 대통령'(The President of Barat) 이름으로 발송된 초청장을 받았다. 모디 총리 역시 'Bharat'라고 적힌 국가 명패 뒤에 앉아 정상회담 개회 연설을 했다.

인도와 바라트는 모두 헌법에서 인정하는 국가의 공식명칭이다. 과거 모디 총리가 이끄는 힌두 민족주의 정당 BJP 당원들은 1858~1947년 영국이 인도에 대한 식민지배를 했던 시기에 도입된 이름이라는 이유로 인디아(India) 사용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인 바 있다. 특히 최근에 이는 'INDIA'라는 야당연합의 선거 캠페인을 겨냥하면서 정치 이슈화됐다. 인도라는 국명이 이미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기 때문에 바라트를 사용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동안의 논리였다고 한다면, 이번 G20를 통해 모디정부는 바라트의 국제적 지명도를 한껏 올려놓았다.

글로벌사우스를 둘러싼 경쟁의 승자는

G20에서 글로벌사우스 의제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중요한 배경은 지난 8월에 개최된 브릭스 정상회의라고 할 수 있다. 2024년 브릭스가 11개국 체제가 되면 구매력(PPP) 기준으로 G7보다 더 큰 경제규모를 갖게 된다. 브릭스에서 위안화 또는 자체 통화 도입을 추진하고 있고, 개발은행 전자결제시스템 신용평가기관 등을 설립해 미국과 서방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가시화된다면 이들이 글로벌사우스를 대표하는 거대한 정치·경제 블록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이들이 글로벌사우스를 대변하거나 일관된 목적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므로 G7이나 G20에 대행하는 블록을 형성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또한 1970년대 소련시절의 러시아가 글로벌사우스를 결집하려다 자원과 동력의 고갈로 좌초됐던 것과 현재 브릭스 팽창을 주도하는 중국의 상황이 매우 닮아있다. 다만 브릭스의 이같은 팽창은 서구세계에 경고를 줄 수 있다. 그리고 글로벌사우스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진영 간 경쟁은 더욱 가열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G20에서 글로벌사우스를 포용하는 큰 걸음을 내딘 인도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미 2022년 인도네시아, 2023년 인도에 이어 2024년 브라질, 2025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G20 의장국을 수임할 예정으로 인도가 쏘아올린 글로벌사우스 의제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렇게 글로벌사우스의 리더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인도의 다음 목표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일 것이다.

최윤정 세종연구소 인도태평양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