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경 뉴욕주 변호사 공익로펌 리걸서비스NYC

평화적인 시위에 대한 강경진압으로 악명 높은 뉴욕시 경찰(NYPD)에 대한 개혁안이 발표됐다. 뉴욕시와 경찰을 상대로 뉴욕주 법무장관과 시민단체, 그리고 개인들이 제기한 소송 결과다. 그러나 미국 수정헌법 1조에 보장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시민들이 두려움 없이 누릴 수 있을지는 시간이 좀더 지나야 알 듯하다.

시민들의 평화적 시위를 강경진압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뉴욕시 경찰(NYPD)의 시위 대응방식이 앞으로 달라질 전망이다. 현지시간 9월 5일 러티샤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은 공익법단체 '리걸에이드 소사이어티'(Legal Aid Society), '뉴욕시민자유연맹'(New York Civil Liberties Union)과 함께 NYPD 개혁안을 발표했다. 담당판사의 최종허가를 받아 향후 3년에 걸쳐 구체화될 이 개혁안은 뉴욕주 법무장관과 시민단체, 개인들이 뉴욕시와 경찰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 결과 나온 합의안이다.

2020년 5월 미국 미네소타주 백인 경찰이 무릎으로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눌러 숨지게 했다. 플로이드는 "숨을 쉴 수 없다"며 애원했지만 경찰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끝내 죽음에 이르는 8분여 분량의 영상이 공개된 후 경찰폭력과 구조적인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폭발했다. 코로나19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미 전역에서 수백만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흑인뿐 아니라 백인의 70%도 '조지 플로이드 살해사건은 일부 경찰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인종차별 문제'라고 답할 정도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뉴욕시에서도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 곳곳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대부분의 시위는 평화적으로 진행됐지만 경찰의 대응은 사뭇 달랐다. 당시 뉴욕 경찰국장은 "우리는 공개적으로 집회할 권리, 시위할 권리, 언론의 자유를 전적으로 지지한다. 하지만 동시에 누구에게든 해를 끼치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의 시위할 권리를 보장하겠다던 경찰은 평화로운 시위대에게 무차별적으로 최루액을 분사하고 경찰봉을 휘두르며 자전거를 타고 시위대에 돌진하는 등 폭력을 사용했다. 시위대를 포위해 출구를 봉쇄하는 체포작전을 썼는데 이 과정에서 의료진과 취재진까지 마구잡이로 체포했다. 당시 드블라지오 뉴욕시장과 경찰 간부들은 경찰의 과잉진압이 생생히 담긴 사진과 영상에도 불구하고 "폭력진압은 없었다"고 주장해 비난을 받았다.

경찰 폭력진압 항의 소송에서 승소

이후 경찰의 폭력진압에 항의하는 여러 소송이 이어졌다. 주로 집단소송의 형태로 이루어진 시민소송에서 원고측은 NYPD가 무차별적인 경찰폭력과 불법체포, 구금 등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집단소송에 원고로 참여한 사람들은 입을 모아 경찰 폭력의 경험이 신체적 상해뿐 아니라 정신적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증언했다. 경찰이 케이블 타이로 손목을 묶어 피가 안 통해 감각을 잃을 정도였고, 수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냉방도 안되는 버스 안에 몰아 넣고 몇시간씩 방치했다고 전했다. 특히 팬데믹 상황에서 경찰의 이런 과잉진압은 공공보건 측면에서도 위험한 일이었다.

2021년 1월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도 뉴욕주를 대표해 이 소송 대열에 합류했다. 제임스 법무장관은 "NYPD가 평화시위를 하는 시민들을 상대로 과도하게 잔혹한 무력을 쓰고 불법체포를 하는 관행에 종지부를 찍겠다"며 뉴욕시와 NYPD를 연방법원에 제소해 결국 이번 합의안을 끌어냈다.

지금까지 여러건의 소송에서 뉴욕시는 원고측에게 배상금을 주는 것으로 합의를 하며 일단락했다. 지난 3월에는 집단소송에 참여한 시민 300여명에게 1인당 2만1500달러씩 모두 700만달러를 배상금으로 지급했다. 이번 경찰개혁안을 끌어낸 집단소송에서도 올해 7월 뉴욕시가 소송에 참여한 원고 1인당 약 1만달러 정도, 총합 1370만달러를 지급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는 지금까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제기된 소송으로는 최대 규모의 배상액이다.

소송 합의안은 배상금 지급뿐 아니라 경찰개혁 내용도 담고 있다. 경찰이 시위 대응에 과도한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언론이 더 자유롭게 취재할 수 있도록 시위 상황을 4단계로 구분해 단계별로 적절한 대응을 하겠다는 것이다. 1단계인 평화시위는 경찰이 최대한 시위대의 안전을 보장하고, 시위대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거나 법원과 병원 등 주요 인프라를 차단할 조짐이 보이는 2단계 이상부터 특수기동대 또는 추가 인력을 배치하도록 했다. 시위대를 위협하는 헬리콥터 동원을 금지하고, 경찰의 시위 대응이 적절했는지 감독하는 민관합동 감시기구도 만들 예정이다.

"케틀링 않겠다"는 선언도 큰 진전

또한 눈길을 끄는 것은 뉴욕경찰이 이제 '케틀링'(kettling)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케틀링은 김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주전자 뚜껑을 막는 것처럼 시위대를 한 곳으로 포위해 진압하는 방식으로, 최루탄을 쏘아 시위군중을 흩어지게 하는 것과 대조되는 전술이다.

이런 진압방식의 전형적인 예가 2020년 6월 4일 뉴욕시 브롱스에서 일어났다. 당시 뉴욕시는 시위가 계속되자 밤 8시 통행금지를 발표했다. 브롱스의 모트 헤이븐 지역에서 약 300명이 거리행진을 하고 있었다. 8시가 되기 약 10분 전 행진대열은 도로를 막고 있는 경찰을 맞닥뜨렸다. 더이상 앞으로 움직일 수 없는 시위대를 또다른 경찰병력이 뒤에서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큰 충돌 없이 진행되던 시위는 경찰이 포위를 시작하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출구가 없는 상태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좁혀오자 일부는 "숨을 쉴 수 없다. 나가게 해달라"고 소리쳤지만 경찰은 요지부동이었다. 8시 정각이 되자 경찰은 해산경고 방송도 없이 시위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날 체포된 이들 중 한명은 국제인권기구인 '휴먼라이츠와치'(Human Rights Watch)와의 인터뷰에서 한 경찰이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고 또다른 경찰은 그의 손을 꺾어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심지어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겨 얼굴에 최루액을 분사했다고 증언했다. 땅에 쓰러진 그는 경찰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폭력진압으로 구급차에 실려갈 정도의 심한 부상을 입었다. 시위대의 안전귀가를 보장해야 할 경찰이 '무차별 포위' 작전으로 상황을 악화시킨 셈이다. 이런 식으로 경찰은 뉴욕시 일대에서 2000여명을 체포했다. 따라서 이번 합의안에서 경찰이 앞으로 시위 현장에서 케틀링을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큰 진전이다.

공권력 남용 관행 없어질지는 두고봐야

뉴욕주 법무장관은 "이번 합의가 미국에서 가장 큰 경찰조직이 시위에 대응하는 방식을 극적으로 바꾸게 하는 획기적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소송 당사자들과 시민단체들 또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경찰의 새로운 시위 대응 방식이 시위대와의 불필요한 충돌을 막고 평화시위를 보장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개혁안'이 실제 의미있게 실행될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뉴욕시립대 존제이 칼리지에서 경찰에 대한 시민감시를 가르치는 대니엘 보다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개혁안이 올바른 방향이기는 하지만 현실에서 제대로 적용될지 의문을 제기했다. 공권력을 남용하는 경찰을 제대로 징계한 적이 거의 없는 NYPD의 전력에 비춰볼 때 이번 개혁안이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소송에 참여한 시민단체와 변호사들도 합의안이 이행될 수 있도록 경찰 공권력 남용에 대한 감시를 늦추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반면 합의안에 서명한 경찰지도부와 달리 일선에서는 이 합의안을 그리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다. 경찰관들을 대표하는 경찰노조는 경찰이 시위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도리어 시위대의 폭력성을 부추겨 진압경찰의 안전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뉴욕시 경찰의 시위 대응이 실제로 유연하게 바뀌어 미국 수정헌법 1조에 보장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시민들이 두려움 없이 누릴 수 있을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남수경 뉴욕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