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삶에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가 있다. 바로 카리브해에 있는 서반구에서 가장 가난한, 인구 1100만명의 나라 아이티이다. 현재 아이티에는 대통령도, 의회도, 법원도 없다. 정부는 국민을 대표하지 않으며, 실질적인 권한이 없고 안전조차 제공할 능력이 없다.

2016년 이후 선거가 열리지 않는 아이티에는 아무도 국민에게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한때 카리브해의 진주로 불리며 세계 설탕 생산의 절반을 차지하며 번영했던 아이티가 어쩌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폭력적인 갱단의 나라가 된 것일까?

세계 최초 흑인공화국의 영광에서 몰락

아이티의 역사는 극심한 빈곤, 만연한 부패, 독재, 쿠데타, 부채, 폭력, 자연재해 등 고통과 상흔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804년 투생 루베르튀르(Toussaint Louverture) 흑인 지도자에 의해 중남미에서 가장 먼저 독립한 국가이자 세계 최초로 노예제를 폐지하고 수립한 흑인공화국이었다.

그러나 영광의 대가는 너무 참혹했다. 아이티의 혁명은 노예제도에 기반한 미국과 중남미의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에게는 악몽이었기에 아이티는 외교적으로 고립됐고 프랑스는 아이티의 주권을 인정하는 대가로 1억5000만프랑(당시 아이티 1년 예산의 10배)의 전쟁배상금을 아이티에 요구했다.

아이티는 프랑스의 노예 소유주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기 위해 미국 프랑스 독일의 은행으로부터 높은 이자율로 막대한 대출을 받았고 국가 예산의 대부분을 대출 상환에 쓰면서 1세기가 훨씬 넘게 성장동력을 상실하고 재정적으로 약화됐다. 프랑스에 대한 독립부채는 1947년이 되어서야 다 갚을 수 있었다. 부채는 확실히 오늘날 아이티의 저개발, 국가 취약성과 많은 관련이 있다.

20세기 전반은 미국의 군사 점령과 도미니카공화국의 라파엘 트루히요 대통령의 인종학살로 인한 폭력의 역사로 점철됐다. 30년간 아이티를 장기집권했던 뒤발리에 부자(父子)는 반공주의 지정학 아래 미국의 지지와 보호를 받으며 아이티의 국고를 약탈했고 6만명이 넘는 시민을 납치 고문 살해했다.

1990년 민주적 선거에서 해방 신학자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Jean-Bertrand Aristide)가 당선되면서 아이티는 민주주의로 전환했지만 쿠데타와 민중반란, 그리고 혼란 해결을 위한 외세의 개입이 반복되며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20만명 이상의 사망자와 70억달러 이상의 경제적 피해를 낸 2010년 대지진과 피해를 미처 회복하기도 전인 2016년에 불어 닥친 허리케인 매튜와 같은 자연재해로 인해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신조차 아이티를 버렸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이티는 황폐해졌다. 2010년 대지진 이후 국가재건을 위해 국제사회로부터 100억달러 이상의 원조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나 이 자금이 아이티인들을 먹이고 보호하는 데 사용되지 않고 대립하는 권력 집단들 간의 권력다툼과 정치적 폭력을 부추기는 도구가 되었다.

아이티 테러의 기원이 된 갱단

아이티에는 약 200여개의 갱단이 존재하며 그중 23개의 주요 갱단이 포르토프랭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이티에서 갱단의 폭력은 1957년부터 1986년까지 30년간 아이티를 철권 통치했던 뒤발리에 부자 독재체제의 유산이다. ‘파파독(PapaDoc)’이란 별칭으로 알려진 프랑수아 뒤발리에는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자신에게만 보고하고 적을 즉결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통통스 마쿠트(Tontons Macoutes)라는 준군사조직을 창설해 납치 고문 살해를 일삼았다.

독재체제가 종식하면서 통통스 마쿠트도 해체됐지만 민주화 이후에도 폭력과 억압의 전통은 남아 갱단으로 계승됐다. 아이티의 갱단은 오랫동안 정치인 또는 정당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다. 갱단은 자신들이 통제하는 지역에서 표를 동원하고, 자신들의 후원자인 정치인이나 정당의 정적을 제거해 사회질서를 유지해주고 그 대가로 정치인으로부터 돈, 무기, 각종 특혜와 이권을 받았다.

이번 폭력 사태를 일으킨 주범은 G-9과 G-Pep이라는 두 갱단이다. 이들은 수년간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통제권을 놓고 경쟁을 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아이티의 안정을 위해 다국적군을 파견하겠다고 한 뒤 아리엘 앙리 대통령 축출을 공동목표로 동맹관계를 맺었다. 지난 3월 초 앙리 총리가 케냐에 다국적군 파견을 요청하기 위해 출국하자 앙리 총리 사퇴를 촉구하며 폭력 사태를 일으켰다.

G-9는 포르토프랭스에서 활동하는 9개 갱단으로 구성된 범죄 연맹으로 ‘바비큐(Barbecue)’로 더 잘 알려진 전직 경찰관 출신의 지미 셰르지에(Jimmy Cherizier)가 수장이다. ‘바비큐’는 2021년 암살된 조브넬 모이즈(Jovenel Molse)와 그가 속한 우익 정당인 텟 칼레당(PHTK)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집권 기간 내내 정당성, 경제위기, 페트로카리베 부패, 휘발유 부족, 폭력으로 지지율이 낮았던 모이즈 대통령은 포르토프랭스의 많은 지역을 통제하는 G-9를 자신의 정치적 안정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

모이즈 대통령의 피살로 G-9은 정치적 후원자를 상실했지만, 사회 내 팽배해진 불안감을 이용해 오히려 지배지역을 확장하고 전기와 수돗물 같은 공공서비스와 아이티 최대 석유 터미널(Terminal Varreux)에 대한 통제권까지도 손에 넣을 정도로 성장했다. 반면 G-Pep은 가브리엘 장 피에르(Gabriel Jean-Pierre)가 수장이며 포르토프랭스의 주요 영토통제권을 놓고 G-9과 경쟁하기 위해서 형성됐다. G-Pep은 아이티의 야당 및 기업인과 연결되어 있다.

손혜현 고려대 연구교수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소

이권 넘어 국가권력까지 장악 시도

지난 2월 말부터 고도로 무장된 갱단들에 의해 시작된 아이티의 폭력 사태는 더 많은 민간인 희생자들을 만들어내며 나라 전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수도 포르토프랭스 중심부에서 경찰과 갱단들 간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졌고, 경찰서를 비롯한 주요 관공서들은 화염에 휩싸였다. 교도소 두 곳을 공격해 5000명에 가까운 수감자들이 탈출했다.

무장한 갱단들은 상점 병원 약국 은행 학교와 일반 가정집을 파괴하고 약탈했고, 길목 곳곳에 검문소를 세우고 시민들로부터 통행세를 강탈했다. 갱단의 폭력과 기물파손으로 병원들은 문을 닫았고 학교들은 휴교령을 내렸다. 주민들은 자경단을 만들어 스스로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고 있지만 경찰보다 군사적으로 우세한 갱단은 현재 수도인 포르토프랭스의 80%를 포함해 국토의 절반가량을 장악한 상황이다.

갱단의 폭력으로 올해 들어서만 15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살해됐고 1만5000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으며, 인구의 절반 정도는 식량이 부족한 상태다. 그러나 무장갱단이 연료, 인도주의적 지원, 기타 필수 물자의 이동로인 주요 항구 공항 도로를 장악하고 물품을 약탈하고 구호활동가들을 위협하면서 현재 아이티에서 인도주의적 활동은 중단됐다.

아이티의 혼란을 수습하고 무너진 권력 공백을 다시 메우기 위해 지역협의체인 카리브공동체(CARICOM)가 나서 현 아리엘 앙리 총리체제를 대체하는 대통령 과도위원회를 구성했으나, 갱단의 폭력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자신들의 군대가 부패한 정치인과 외세의 개입으로부터 국가와 시민들을 보호한다면서 새로운 정치 질서를 설계하는 과도위원회 테이블의 한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

현재 아이티 갱단이 보여주는 폭력의 행태는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갱단들 간의 단순한 영역싸움으로만 보기 어렵다. 현재 아이티의 갱단은 더 이상 정치인들의 정치적 야망을 지원하는 조력자가 아닌, 국가권력에 도전하는 가장 강력한 정치적 행위자로 부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