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실적 불안 커지며 필라델피아지수 3.25% 하락

미중 갈등·금리인하 기대 하락에 차익실현 물량 쏟아져

세계 최대 최첨단 반도체 장비 업체인 네덜란드 ASML의 부진한 실적 쇼크에 글로벌 주요 반도체 주가가 급락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랠리를 주도하고 있는 엔비디아 주가는 전일대비 4% 떨어지고 영국계 반도체 설계업체 ARM이 12% 폭락했다. 미국 최대 D램업체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4.47%, 대만 TSMC는 0.55% 각각 하락했다. 실적 불안이 커지며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도 3.25% 급락했다.

17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ASML의 주가는 전일대비 7.09% 급락했다. ASML 1분기 매출은 52억9000만유로를 기록하며 전분기보다 약 27% 감소했고, 순이익은 12억2000만유로로 40% 급감했다. 문제는 1분기 신규 수주액 또한 시장 예상치를 22%나 하회한 36억1000만유로에 그쳤다는 점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 줄었을 뿐만 아니라 전망치 평균인 46억유로보다 낮다. 중국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고, 수주에서 대만의 TSMC가 지난 분기 장비를 발주하지 않은 점이 이번 어닝 쇼크의 배경으로 분석된다.

다만 미국 주도의 반도체 장비 수출 제한 움직임 속에서도 ASML의 대중국 판매는 어느 정도 실적을 뒷받침해준 것으로 나타났다. ASML은 중국 판매액이 1분기 전체 매출의 49%를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ASML은 중국 업체들의 주문이 전체 수주 규모의 20% 정도를 계속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는 “현재로선 중국 업체에 판매한 장비에 대한 정비·유지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네덜란드 정부는 올해 1월부터 ASML이 극자외선(EUV) 바로 아래 단계 노광장비인 심자외선(DUV) 장비에 대한 수출 제한 조처를 시행 중이다. 최근에는 ASML이 중국 반도체 업체에 이미 판매한 고가의 장비와 관련한 정비·유지 등의 서비스를 제한하는 방안이 미국과 네덜란드 정부 간 논의되고 있다.

첨단 반도체에 대한 리소그래피 장비를 공급하는 ASML이 중국 규제 여파로 부진한 수주 전망을 내놓으면서 뉴욕증시에서 반도체 기업 주가가 동반 급락했다. 반도체 및 반도체 장비·부품에 대한 투자심리 약세를 불러오며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와 반에크 반도체 ETF 모두 3% 넘게 하락했다. 엔비디아와 AMD 등 인공지능 수혜로 강세를 보였던 기업들이 1분기 실적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급격한 하락을 기록했다. 이에 뉴욕 증시에서 S&P500지수는 전일 대비 0.58%, 다우지수는 0.12% 하락하고 기술주 비중이 높은 나스닥은 1.15% 떨어졌다.

반도체주 일제 하락에는 금리인하 기대감 하락도 영향을 미쳤다. 투자자들이 그동안 고공행진했던 반도체 관련주에 대해 차익실현에 나섰다는 것이다.

서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현 금융시장은 시장금리가 높아진 것에 비례해 주식의 밸류에이션 부담도 증가하고 있다”며 “기업 실적에 대한 기대치는 물론, 주가 민감도 또한 이전보다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일 국내 주식시장에서도 장 막판에 나온 ASML 실적 쇼크에 삼성전자와 한미반도체 등 반도체 업종이 크게 떨어지며 코스피 지수 2600선이 붕괴됐다. 18일 오전에는 반도체주가 약세로 장을 출발했다가 소폭 상승 중이다. 다음 주부터 주요 빅테크의 실적이 공개되는 만큼, 확인 후 대응하려는 움직임이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김영숙·김은광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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