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압승으로 끝난 이번 총선에 대해 정치권과 언론은 ‘정권심판론’으로 압축한다. 자기 할 일(민생)은 도외시한 채 정치공세에만 몰두한 여당을 향해 국민들이 회초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권심판론에만 초점을 맞추면 총선민의를 제대로 읽을 수 없다. 큰 흐름은 심판론이 지배했지만 그 속엔 크고 작은 다른 바람이 숨어 있었다. ‘지역일꾼론’도 그중 하나다.

정권심판 바람이 강하게 분 수도권에서 예상 외로 고전한 후보들이 있다. 서울 광진 을 고민정 후보와 강서 을의 진성준 후보다. 두 지역 모두 민주당 강세지역으로 꼽혔지만 개표 내내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했다. 다양한 요인이 숨어 있겠지만 취재 중 만난 주민들은 공통적으로 지역보다 중앙정치에 치중한 것을 이들의 약점으로 꼽았다. 중앙무대에서 이름을 날리고 언론에 많이 노출되는 것을 가장 좋은 선거운동으로 꼽았던 과거와 달라진 풍경이다.

민주당의 우세지역인 서울 도봉 갑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된 것도 지역일꾼론의 연장선이다. 선거 한달 전 전략공천으로 내리꽂힌 민주당 후보는 동네 시장 이름도 모른다는 비난을 들었고 4년간 바닥을 다진 여당 후보가 신승했다.

여당 중진인 나경원 후보의 승리도 같은 맥락이다. 취재 중 만난 서울 동작 을 주민들은 류삼영 후보에 대해 한결같이 “우리 동네를 위해 무슨 일을 했나”를 반문했다.

수도권뿐만이 아니다. 여당 싹쓸이 속에 나홀로 당선된 부산 북강서 갑의 전재수 민주당 당선자는 “어느 당, 누가 와도 꺾을 사람이 없다”는 동네일꾼론의 선두주자였다. 여당 우세 환경이었지만 조경태 의원의 당선도 같은 선상에서 봐야 한다. 지역구인 부산 사하 을에선 “목욕탕에서 조 의원에게 등을 안 밀려본 사람은 사하 사람이 아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지역일꾼의 진출을 가로막는 건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의 이른바 낙하산공천이다. 총선을 결정한 것은 정권심판 구도였지만 단순히 이 구도에 의지해 내리꽂은 후보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문제는 낙하산 공천이 자기편 반발까지 초래했다는 점이다. 자기 당의 경선 맞수들이 본선에서 상대당 후보를 돕거나 표를 던지는 일이 실제 바닥에선 일어나고 있다.

풀뿌리를 존중하고 지역일꾼을 적극적으로 발탁했다면 야당은 개헌의석을, 여당도 지금보다 많은 의석을 얻었을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풀뿌리 일꾼의 중앙무대 진출은 다시 퇴보했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39명까지 상승했던 단체장 출신 정치인의 원내 진입은 25명으로 줄었다. 최근까지 지역을 일구다 출마한 이들로 대상을 좁히면 최종 당선인은 10명에 지나지 않는다.

민심의 풍향계를 태풍으로만 읽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다.

이제형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