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하반기에는 2%대”라지만 묘수 없어 고심

국제유가·환율 급등 여파 이달 물가 반영 가능성

정부, 물가동향 모니터링 … 가격인상 집중 점검

“정부 전망 지나치게 낙관적, 정책변화 뒤따라야”

식품가격 상승에 이어 중동분쟁 확대로 환율·유가까지 뛰면서 정부의 2%대 물가상승률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하반기에는 총선 전까지 억눌러 온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요인이 널려 있다. 모두 물가상승 압력요인이다.

하지만 정부당국은 아직까지 2%대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근원물가(에너지·식료품 제외)와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이 정부 설명이다. 최근 ‘이코노미스트’도 한국의 인플레이션 현상이 비교적 빨리 끝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아 주목된다.

국무회의 입장하는 최상목 부총리와 송미령 농축산부 장관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근원물가는 2%대” = 24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국내 먹거리 물가가 농산물을 중심으로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지만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 품목을 제외한 근원 물가는 안정적 흐름을 보이고 있다. 실제 올해 2월 기준 농산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대비 20.9% 올랐다. 하지만 3월 근원물가 상승률은 2.4%로 전년 같은 기간(4.7%)보다 2배 가까이 떨어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최근 우리 먹거리 물가가 높은 수준을 보이는 것은 이상기온 및 일조량 부진 등에 따라 과일 등 작황 부진으로 농산물 가격이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며 “국제유가 상승 등 불확실한 요인이 있지만 연말까지 (근원)물가는 2% 초반대의 안정적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도 최근까지 “지정학적 위기로 불확실성이 있지만 상반기에 3%에서 위, 아래 근처에 머물다가 하반기로 가면서 2%대 초·중반으로 하향 안정화한다는 전망은 유효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주요 선진국보다는 좋은 상황” = 주요 선진국 대비 우리나라 근원물가가 낮다는 점도 기재부의 ‘하반기 물가안정론’의 단골 메뉴다. 실제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5% 상승하며 시장 예상치(3.4%)를 웃돌았다. 근원물가 상승률은 전월과 마찬가지로 3.8%에 달했다.

영국의 물가 상승률도 3.2%로 시장 예상치(3.1%)를 뛰어 넘었고, 근원물가 상승률은 4.2%에 달했다. 한국의 물가 상승률은 3.1%로 전월과 같았으나, 근원물가 상승률은 2.4%로 줄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6일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 조정’에서 세계 연평균 물가상승률을 올해 6.8%, 내년 5.9%로 전망했다. 1월 전망 때에 비해 올해와 내년 전망치를 각각 0.1%p 높인 것이다.

한국과 일본 등은 주요 선진국 중 비교적 빨리 인플레이션에서 탈출할 것이란 최근 외신 분석을 거론하기도 한다. 실제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어느 국가가 마지막으로 인플레이션에서 벗어날 것인가’란 칼럼에서 “고소득 국가 10곳 중 한국이 2번째로 인플레이션 고착화 수준이 낮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인플레이션 상황을 조기에 벗어날 가능성이 높은 국가로 한국과 일본을 제시했다.

◆물가안정 불확실성 더 커 = 하지만 중동 사태 등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유가·환율 급등 여파를 피할 수 없게 되면서 물가 안정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부터 국제유가는 연일 급등세다. 지난 5일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북해 브렌트유 6월 인도분은 배럴당 91.17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두바이유도 90.89달러로 나란히 90달러 선을 넘어섰다.

최근 숨고르기에 들어간 원·달러 환율도 지난 16일부터 1400원선을 넘어서는 등 급등세다. 국제유가와 환율 급등은 생산단가를 높여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실제 수입물가도 3개월 연속 상승하면서 국내 물가상승을 압박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과일·채소 가격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도 크게 올랐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노무라증권은 한국의 올해 1~3월 월평균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3.0%로 영국(3.5%)·미국(3.3%)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고 밝혔다. 과일과 채소 가격만 따져봤을때 가격 오름세는 1위다.

◆“정부, 지나치게 낙관적” = 식품 가격만큼 소비자 체감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품목이 에너지다. 에너지 관련 항목(전기·가스요금, 연료비 등)을 가중 평균해 산출한 에너지류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프랑스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여기에 올해 초부터 요금인상을 억눌러 둔 전기·가스·대중교통 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중동 사태 관련 긴급회의를 여러 차례 개최하고 물가 점검을 위한 부처합동 회의에도 나섰다. 무제한, 무기한으로 투입하기로 한 긴급안정자금을 통해 농수산물 소비자 가격 인하에도 나서는 모양새다.

전문가들도 중동 사태와 고환율 사태 등에 대해 높은 경각심을 가지고 봐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부가 물가상황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추가경정예산에 부정적인 정부가 농축수산물 긴급가격안정자금 등 예비비를 생각보다 빨리 소진하는 모양새”라며 “무제한 보조금을 지원이나 유류세 인하 등의 대책에서 벗어나 유통구조 개선 등 본질적인 민생 대책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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