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동맹체제가 빠른 속도로 개편되고 있다. 우선, 미국이 유지해온 양자동맹이 심화·발전되고 있다. 기시다 일본 총리는 4월 10일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미일동맹을 업그레이드하기로 결정했다. 인도태평양지역뿐 아니라 전 지구, 우주개발로 동맹의 범위를 넓히고 군사협력은 물론 경제와 기술, 환경과 개발 등 다양한 이슈를 다루었다. 기시다 총리는 세계질서의 미래를 위해 미국의 리더십이 필수불가결하며 일본은 미국과 짐을 나누어지겠다고 천명했다.

둘째, 미국의 동맹 파트너들간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미국 방문 중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과 3자 정상회담을 열고 미래 지역질서를 위한 공통의 노력을 기울이기로 합의했다. 마르코스는 3국간 협력이 “편의 때문이 아니라 민주주의, 좋은 거버넌스, 법치에 대한 깊은 존중으로 연결된 3국간의 관계 심화와 견고한 협력의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했다. 기시다 총리 역시 태평양으로 연결된 해양국가들간의 필연적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미일 정상회담에서도 호주 한국 등 같은 뜻을 가진(like-minded) 국가들간 다양한 소다자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호주에게 핵추진잠수함을 제공한 오커스(AUKUS)에 일본의 가입을 고려하고 있다는 공식 문구도 삽입됐다. 양자동맹 간 소위 바퀴살 모양의 동맹체제를 넘어 다층적 군사협력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있다.

동아시아 동맹, 전세계 안보구조와 연결

셋째, 동아시아에 한정된 동맹체제가 유럽, 더 나아가 전세계 안보구조와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전쟁이 한창인 유럽에서 나토는 빠르게 강화되었고, 러시아와 “제한없는 우정”을 약속한 중국의 외교정책도 나토에게 큰 관심사다. 중국이 러시아에게 경제적 외교적 지원을 넘어 군사적 지원을 본격화한다면 유럽과 아시아의 안보상황은 더욱 긴밀히 연결될 것이다.

러시아에 대한 북한의 무기지원으로 우크라이나전쟁은 유라시아 양쪽의 안보지평을 하나로 만드는 단초를 보였다. 우크라이나전쟁이 어떻게 마감되는가가 대만에 주는 함의가 클 것이라는 관측 역시 두 대륙의 긴밀한 연관성을 보여준다. 나토는 2년 전부터 정상회담에 아시아의 4개국, 즉 한국과 일본 호주 뉴질랜드를 초청해왔다. 때를 맞추어 2022년 나토 국가는 전략개념문서를 발표해 중국이 체계적 위협이라는 점을 명시해 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본격화했다. 올 7월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나토정상회담에도 아시아 4개국이 함께 할 예정이다.

넷째, 미국은 공식적인 조약을 통한 동맹국이 아닌 전략적 파트너 국가들과 안보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 의회에서 반년 동안 통과되지 못했던 1000억달러의 지원금은 이스라엘 우크라이나 대만에게 곧 사용될 예정이다. 우크라이나전쟁 피로감과 미국 내 지원 반대 여론, 강화되는 미국 내 반이스라엘 정서, 그리고 대만 지원에 대한 중국의 반발 와중에서 미국은 동맹이 아닌 전략적 파트너 국가들에게 막대한 예산과 외교적 군사적 지원을 투입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유럽 중동 아시아에서 미국이 추구하는 지역전략의 교두보다.

2차대전 후 동맹체제 수립과정과 닮은 꼴

미국의 동맹 재편전략은 2차세계대전 이후 트루먼정부가 추진했던 아시아와 유럽의 동맹체제 수립전략을 연상시킨다. 트루먼정부는 유럽에서는 다자동맹을, 아시아에서는 바퀴살 체제의 양자동맹 네트워크를 수립해 미국 주도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군사적 기초를 놓았다.

바이든정부가 러시아 중국 이란 북한 등 소위 ‘수정주의의 축’ 국가들과 지정학 경쟁을 벌이고, 경제 기술면에서 새로운 지경학 지정학적 체제를 마련하고, 초국가위협에 공동대처하는 다자주의 협력을 공고히 하고, 더 나아가 자유주의 국제질서 강화의 전기를 마련한다면 트루먼정부에 버금가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기시다와 바이든은 세계질서가 변곡점에 있으며 현재의 결정적 시기에 어떠한 노력을 하는가에 따라 미래 질서가 결정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도전은 도처에 있다. 예전보다 힘이 빠진 미국이 동맹과 전략적 파트너들의 도움을 절실히 바랄수록 이들 국가를 통제하기는 쉽지 않다.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드론 공격 등은 미국을 불안하게 한다. 확전을 염려하는 미국이 이들을 자제시키고자 해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파트너 국가들에 미국이 연루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연루되는 것을 막기 위해 거리를 두는 것도 불안하다.

중국 러시아는 미국이 견제하는 경쟁국들이지만 미국의 동맹국들은 이들과 밀접한 경제적 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은 자유주의 대 권위주의 구도를 내세워 이념적 대결 구도를 강조하지만 실리를 포기할 수 없는 동맹국들의 행보는 다양하다. 미국은 중국을 유일한 경쟁국이라고 여기고 패권경쟁 관점에서 중국의 도전을 인식한다. 그러나 미국의 동맹국 포함, 120개국 이상의 국가들에게 중국은 최대의 교역파트너다.

안보동맹이 반드시 경제협력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미국은 중산층 강화와 제조업 부흥을 통해 패권의 경제적 기초를 회복하고자 하고, 이 과정에서 동맹국들의 도움, 혹은 동맹국들에 대한 압박도 불가피하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경제영역에서 경쟁하기도 하고 이익이 어긋나기도 하는 것이다. 트럼프가 돌아오면 안보의 진영과 경제의 진영은 더욱 엇갈릴 것이다.

미국의 동맹개편은 한국에게 큰 도전

한미동맹을 최대의 외교자산으로 삼아온 한국에게 미국의 동맹체제 개편은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첫째, 대북 군사억제가 더욱 시급해진 지금, 한미동맹이 제공하는 확장억제와 연합군사력의 유지는 핵심이익이다. 한편으로는 확장억제 공약에 대한 미국의 다짐을 받아내야 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미동맹 강화가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불러와 북중러 군사협력이 강화되는 부수효과도 막아야 한다. 이미 러시아는 유엔의 대북제재 전문가 패널의 연장에 반대해 북한의 비핵화라는 목표가 더 이상 상수가 아닌 변수가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둘째, 대북 억제가 한국의 당면 과제이지만 한미동맹의 목표에 대한 우선순위를 둘러싸고 한미 간에 이견이 발생할 수 있다.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하지만 북한의 러시아 무기 지원, 북중러 군사협력 강화 등 대중 대러 견제의 목표가 더욱 두드러진다. 북중러 연대를 약화시키고 북한의 신냉전 외교전략을 견제하는 것이 한국에게도 중요한 정책 목표이지만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의 관심 저하 및 정책 우선순위 하락은 큰 문제다.

셋째, 동아시아 동맹 파트너 국가들이 하나로 묶이면서 미국의 동맹국들간에 위계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 동맹국들의 파이브아이즈나 오커스, 쿼드 등 핵심 협력체 참가 여부는 미국과의 거리를 측정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한국은 양자동맹 외에 한미일 협력을 추진하기 시작했지만 여타 소다자 협력에 불참해 일본 호주 등 다른 동맹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정치적 양극화 정도가 심하고 외교정책의 변동이 큰 한국에 대한 미국의 우려도 한국의 동맹 지위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이 미국의 다른 동맹국에 비해 아시아 지역과 지구 전체에 대한 명확한 외교적 비전을 보유하고 미래 국제질서에 대한 지표를 제시하려 한다면 단기적 이익 외교의 향방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미국의 동맹 재편에 대해 우리의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임한다면 다른 동맹국들과의 비교나 지역, 지구적 사안에 대한 참여 등 사안에서 자신감 있게 임할 수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다양한 이익 구조와 대중 관계 등을 고려한 유연하고 기민한 새로운 동맹체제를 만드는 것이 미국과 동맹국 모두에게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한국만의 동맹전략을 찾아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전재성 서울대 교수 정치외교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