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4.10 총선 직후 열린 국무회의에서 기존의 국정 방향과 정책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재외공관장 초청 만찬(4.22)에서는 한국이 글로벌 질서의 중심에 우뚝 서있다고 평가하면서 △최초의 인도·태평양 전략 발표 △한미동맹의 ‘핵 기반 동맹’ 격상 △한일관계 정상화, 새로운 단계로의 한·미·일 협력 강화 등을 글로벌 중추국가 외교의 성과로 꼽았다.

글로벌 중추국가는 윤석열정부가 내건 120대 국정과제의 외교안보 분야 목표로서 지난해 6월에 발간된 ‘윤석열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의 핵심개념이다. 중추(pivot)란 말은 20세기 초 지정학자 매킨더가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글로벌 중추국가(global pivot state)는 ‘국제정치의 질서에서 국가 간 세력 분배와 안정성에 변화를 야기할 수 있는 국가’로 정의된다.

흔들리는 글로벌 중추국가론

윤 대통령의 자화자찬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글로벌 중추국가 외교는 출발부터 흔들리고 있다. 현 정부가 국가안보전략의 목표로 ‘자유 평화 번영의 글로벌 중추국가’를 내걸었지만, 이를 뒷받침할 대형 외교과제인 ‘2030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와 ‘G-7 이탈리아 정상회담’ 초청에 거듭 실패하는 바람에 빛이 바랬다.

북한의 우방국인 사회주의 국가 쿠바와 수교하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에 앞서 북한이 서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와 국교를 복원하는 것을 막지 못했고, 최근 북한과 우호관계를 강화하려는 니카라과의 주한 대사관 폐쇄도 못 막았다. 글로벌 중추국가론에 따른 한국의 글로벌 사우스 외교도 명암이 교차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글로벌 중추국가 외교의 3대 업적 중 하나로 내세운 한일관계 정상화도 일본의 잇단 외교 도발로 도마 위에 올랐다. 독도와 위안부 문제를 왜곡한 교과서들이 일본정부 검정을 통과하고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외교청서’가 발간됐다.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기시다 총리는 취임 후 줄곧 총리 명의로 공물을 봉납했다.

글로벌 중추국가에 대한 최대 도전요인은 의외로 미국의 세계전략이다. 미국은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되자 군사적으로 통합억제전략(integrated deterrence strategy)을 내놓았다. ‘국방전략서(NDS)’(2022.10)는 이 전략에 대해 “기존 군사적 수단의 확장억제에다 미 행정부의 부처·기관과 동맹국·협력국이 함께 쓰는 경제제재 수출통제 외교조처 등 외교·정보·경제적 수단을 추가해 적·경쟁국이 핵·미사일을 사용치 못하게 미리 막는 전략”으로 정의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글로벌 중추국가 외교의 주요 성과로 꼽은 3대 이슈라는 것들도 우리의 독자적인 외교전략의 산물이라고 보기 어렵다.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장을 막으면서 중국·북한을 겨냥해 한국을 인도·태평양 전략에 편입시키면서 숙원이던 한미일 안보협력체를 만들고자 한 미국의 통합억제전략에 따른 결과물인 것이다.

미 통합억제전략과 일본의 중추적 역할

미국의 현 대외전략은 바이든 대통령이 오바마행정부 때 부통령으로 재임하며 만든 ‘오바마 독트린’을 근간으로 한다. 2014년 5월 웨스트포인트에서 발표된 이 독트린의 3원칙은 △다자주의 및 동맹·우방 국제공조의 국제분쟁 해결 △온건파 반군 지원 및 대테러 방식의 전환 △미국 안보이익이 직접 침해될 때만 무력사용 등이다.

오바마 독트린은 2002년에 발표된 ‘부시 독트린’의 선제공격론을 포기하고 군사력 사용의 절제와 외교 수단의 중시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다만 오바마행정부 때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중동지역의 급진 무장단체들에 대한 반테러 전쟁이 목표였던 것과 달리, 바이든행정부의 경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대만 무력통일 위협 등 강대국이 대상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군사충돌을 피하고 핵전쟁 확전을 막으면서 동맹국·협력국과 함께 외교 정보 경제적 수단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 4월 20일 미 하원은 우크라이나에게 608억달러의 대외원조 예산을 추가로 승인했다.

중국의 굴기에 대해서는 러시아와 다른 접근법을 사용하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2020년 논문에서 중국의 패권전략을 해양진출로 지역에서 세계로 나아가는 전략과 중국이 일대일로를 통해 세계에서 지역을 포위하는 전략의 두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미국은 우선 동맹국들과 함께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진출을 억제하려 한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오커스(AUKUS) 외에 미국·일본·호주·인도의 쿼드(QUAD), 한국·미국·일본, 미국·일본·필리핀 소다자 안보협력기구의 창설을 통해 중국의 해양 진출을 저지하려고 한다. 미국은 동아시아판 나토와 같이 지역을 묶는 단일한 공동방위기구를 만들기보다 통합억제전략을 추진하면서 지역별로 소다자안보기구를 만들어 연결하는 격자형(lattice-like) 전략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보고 있다.

관건은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통합억제전략을 수행할 핵심 파트너가 어느 나라인가 하는 점이다. 지난 4월 10일 기시다 총리의 국빈 공식방문 때 ‘미일 정상 공동성명 - 미래를 위한 글로벌 파트너’가 발표되었다. 이번 공동성명은 ‘미·일 안보조약에 기초한 양국 간의 방위·안보협력’이라고 밝혀 미·일 글로벌 파트너십이 미국 통합억제전략의 핵심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초당적 협력 있어야 중추적 역할 가능

전후 일본은 제2의 경제대국이 된 이후 군사적으로는 전쟁할 수 있는 국가를, 외교적으로는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려왔다. 일본은 2015년 안보법제 제정을 통해 사실상 집단적 자위권을 확보하고, 2022년 3대 안보문서를 발표해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탈바꿈했다.

금년 4월 미일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은 3대 안보문서의 내용을 재확인하고, 통합작전능력 제고, 군사장비 개발·운용 협력, 오커스 필러2 참가, 방위장비 이전 3원칙 개정, 미 확대억제 강화 마련 등 ‘새로운 전략 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여기서 바이든 대통령은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확대를 조건으로 일본의 진출을 지지했다.

그렇다면 미일 글로벌 파트너십 강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동안 윤 대통령은 국민적 합의 없이 강제동원피해자 문제의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하고, 일본의 적기지 반격능력 보유와 방위비 2배 증액을 지지했다. 4.10 총선 결과는 윤석열외교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기도 했다. 이제라도 한일 및 한미일 간에 국익이 충돌하는 핵심 현안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미국은 통합억제전략 차원에서 유엔사 전력제공국 확대와 일본의 참여를 지지해 왔다. 일본이 전력제공국에 참여하게 될 경우 한국이 일본과의 방문군지위협정(VFA) 또는 상호접근협정(RAA) 체결을 거부하기 어렵게 된다. 일본의 투코리아 정책 고수로 불발됐던 상호군수지원협정(ACSA)도 재추진될 것이다.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은 중국과 러시아의 동의 없이는 실현되기 어렵지만, 한국이 지지하는 것만으로도 인도·태평양 지역 내 일본의 외교적 발언권은 높아진다. 이는 글로벌 중추국가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일 뿐 아니라 한반도문제에 대한 일본의 발언권도 높여주는 결과를 초래한다.

오는 11월 미 대통령선거에서 바이든과 트럼프 중 누가 당선되든 통합억제전략과 일본의 중추적 역할이 유지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적어도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을 줄이고 한국의 외교 자율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문제는 윤 대통령이 이를 막으려는 의지와 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글로벌 중추국가 역할을 위해 초당파적인 협력이 필요한 이유다.

조성열 경남대 군사학과 초빙교수

전 주오사카 총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