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중국 봉쇄위해 일본 군사력 강화 … 한국 샌드위치 신세, 균형외교 절실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 미국 방문을 앞두고 '린치핀-코너스톤' 논란이 일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린치핀(linchpin 핵심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미동맹'이 '미일동맹'을 추월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6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처음으로 한국을 린치핀에 비유한 이후 이 용어를 쓰며 한미동맹의 견고함을 과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12월 한국 대선 직후 박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는 성명에서도 린치핀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나 같은 달 총선에서 승리한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에게 보낸 축하성명에선 미일동맹을 코너스톤(Cornerstone)에 비유했다. 린치핀은 자동차나 마차의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에 꽂는 핀이며, 코너스톤은 집이나 건물 기둥을 떠받치는 주춧돌이라는 뜻이다. 외교가에선 린치핀이 '공동의 정책목표를 달성하는 데 꼭 필요한 동반자'라는 의미로, 코너스톤보다 더 친근하고 가까울 때 쓰는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

박 대통령 방미 때 미국의 환대는 한미동맹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켰다. 하지만 지난 3일 미국과 일본이 외교ㆍ국방장관 회담(미일 2+2회담)에서 양국 군사 협력을 대폭 강화키로 하면서 불만과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양국은 미·일 방위협력지침 재개정 시작,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수용, 중국의 군현대화 투명성 촉구, 미사일방어(MD) 협력 강화 등에 합의했다. 이러한 결정은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이 방한 뒤 이루어진 것이다. 미 국방장관은 박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한일 관계 개선의 중요성만 강조했을 뿐 미일간 안보협력 강화 방안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미 국방장관에게 털어놓은 일본에 대한 불만을 전격 공개하면서 불쾌함을 드러냈다.


<사진:지난 2월 22일(현지시간) 미국을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회담을 하고 있다(사진 상단 우측). 당시에도 분위기를 썩 좋지 않았다. 지난 5월 7일 오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야기하고 있다(사진 상단 좌측). 당시 분위기가 좋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9월 30일 오후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와 국군의 날 행사에 참석차 방한한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 일행을 접견했다(사진 하단 왼쪽). 10월 3일 미일 지난 3일 미국과 일본이 외교ㆍ국방장관 회담에서 양국 군사 협력을 대폭 강화키로 발표했다(사진 하단 오른쪽). 사진 연합뉴스>

미국 일본에 '지역방위-중국 견제' 하청 = 워싱턴의 보수적인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의 동북아시아 전문가 부르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국방비 삭감에 직면해 일본에 군사력을 강화토록 허용함으로써 더 많은 지역안보 역할과 책임을 맡기고 있다"고 해석했다.

오바마 미 행정부는 일반 국방비 감축으로 4820억달러를 삭감하기 시작한데 이어 자동예산 삭감인 이른바 시퀘스터(sequester)로 그만큼 추가 삭감을 해야 한다. 결국 미국은 국방비에서 10년간 1조달러나 삭감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라크 전쟁을 끝냈고 아프간 전쟁을 종료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북한과 이란의 핵위협에 대처해야 하고 중국의 군사력 강화와 팽창전략을 막아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안보책임과 부담을 나눌 파트너가 절실한 상황이다.

미국은 특히 일본의 군사력 강화로 주일미군을 보호해 주는 동시에 동북아시아 안보역할을 분담하고 국제평화유지에도 더 많은 기여를 하게 만든다는 전략적 목표를 실행하고 있다. 때마침 일본의 아베 정부가 국방비 증액, 집단 자위권 전략 등을 추구하고 나서면서 오바마 미행정부와 거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10월 3일 미일간 안보합의로 미국은 일본에 최신예 장비와 무기를 해외에 첫번째로 배치하게 된다. 글로벌 호크 무인 정찰기, P-8 포세이돈 차세대 초계기, F-35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등을 일본에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일본은 17년이나 끌어온 미 해병 오키나와 기지를 괌으로 이전하는데 드는 86억달러의 비용 가운데 31억달러를 부담하기로 했다. 아베정부는 11년 연속 줄이기만 했던 국방예산을 올해 처음으로 2.9% 증액했다. 일본은 앞으로도 국방예산을 지속 증가시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은 일본이 GDP의 1% 이상으로 국방비를 늘려야 한다고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의 독려에 힘입어 일본 아베정권은 집단 자위권 모색, 첫 국가안보전략 수립, 국가안보회의 신설, 나아가 재무장을 금지시킨 일본 헌법의 재해석까지 새로운 군사안보정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의 두가지 우려 = 미 예일대의 유명한 외교안보 매거진 '예일글로벌'은 한국계 언론인으로 지구촌 언론에 영어 분석기사를 기고하고 있는 심재훈씨 기고문을 게재하고 "미일 안보협력이 한국을 화나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예일글로벌'은 미국과 일본이 10월 3일 발표한 미일 안보협력 합의는 즉각 한국에서 두가지 큰 우려를 불러 일으켰다고 밝혔다. 첫째 한국은 미국이 국방비 대폭삭감에 직면해 동북아지역에서 지도력을 포기하고 지역안보를 일본에 맡기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국이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독려하면 한국으로서는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도움으로 일본이 군사력을 강화하고 지역안보 책임을 더 많이 맡게 된다면 한국은 중일 양국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될 것을 극히 우려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과거에도 중국과 일본간 패권 다툼은 일제의 한반도 침략과 식민지배로 이어진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미국의 이번 결정은 이러한 한반도의 지정학적 요소들을 간과하고 일본에 지역안보와 중국봉쇄를 '아웃소싱'하는 데에만 신경써 나온 것이어서 즉각적인 우려를 사고 있다는 것이다.둘째 미일간 안보합의는 박근혜정부의 새 안보전략을 제한시킬 수 있다.

박근혜정부는 한중 협력을 중시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데 미일간 안보합의가 걸림돌이 되지나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한국은 중국이 전체 교역의 4분의 1이나 차지하고 있는 경제 파트너이자, 북한을 억지시킬 지렛대를 갖고 있어 중국과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중국의 팽창을 봉쇄하기 위해 일본의 군사력 강화 카드까지 꺼내든 것이기 때문에 한국에게 외교적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다.

워싱턴이 나서 해결할 일 = 부르스 클링너 연구원은 "미국은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허용하기에 앞서 한일 관계가 개선되도록 더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금 한일관계가 소원해 진 이유는 아베정부가 과거사 문제 해결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미국은 아베정부가 역사문제를 해결토록 함으로써 안보협력의 테이블에서 과거사 문제를 제외하게 만들도록 요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부르스 클링너 연구원은 "미국이 이번 미일 합의를 통해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내버려 두는 게 아니며 오히려 일본의 군사력 강화가 미국의 통제에 연결 돼 있다는 점을 확신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일본에게 국방비증액, 군사력 강화, 집단 자위권 인정 등을 독려해 지역안보 역할과 책임을 늘리고 있지만 군사대국화, 군국주의 부활로 나가지는 못하게 억제시킬 것이라는 점을 확신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일본의 헌법개정 노력과 선제공격 전략 채택은 억제시켜야 하며 대신 덜 논쟁적인 집단자위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 '예일 글로벌'은 "박근혜 정부로서는 경제적측면 뿐만 아니라 대북 지렛대를 갖고 있는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손짓을 뿌리칠 수 없는 상황지만 중국이 북한을 완전히 통제해주기 이전에는 한국도 미국과의 동맹이나 한일 협력을 결코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한국이 미국과 일본의 틈새를 벌리려 시도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전략이 될 것이고 지적하면서 박근혜정부가 올바른 선택을 한 사례로 이달초 실시된 한미일 3국 합동 군사훈련을 한국 영해상에서 가진 것이라고 꼽았다.

한국은 안보협력 측면에서는 한미일 3각 협력에 적극 참여하면서 일본이 과거사 문제해결에 나서 한일관계를 개선토록 하고 군사대국화, 군국주의부활의 우려를 해소하도록 일본은 물론 미국에도 요구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중관계에는 중국이 경제협력에 그치지 않고 대북 지렛대를 실제로 활용해 북한정권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 줄 것을 주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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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기자 · 한면택 워싱턴 특파원 ks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