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소통 강화가 관건 … 김장수 실장, 미중 외교·안보 사령탑과 잇단 회동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 직전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중국 원자바오 총리가 남북 정상회담을 주선할 정도로 한중관계가 각별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한중 정상이 전례 없이 빈번한 만남을 이어갔다고 밝혔다. 이명박정부 5년 동안 후진타오 주석과 정상회담 10회, 원자바오 총리와 정상급회담을 10회나 했다. 후진타오 주석도 2013년 2월 24일 친서를 통해 이 대통령 재임 5년 동안 양국관계가 진일보하게 격상됐다며 양국 간에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가 구축돼 정치와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교류 협력에 괄목할만한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는 국가 간의 관계에서 사용되는 '외교적 수사(Diplomatic rhetoric)'일 뿐이다. 이 같은 공식적인 평가와 달리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중국학자나 외교관들은 "지난 정부처럼 미국과 힘을 합쳐 중국에 대항하려는 태도는 도의적으로 문제가 있고, 그런 일은 다시없었으면 한다"고 속내를 털어 놓았다.


<사진: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국빈방문 둘째날인 6월 28일 공식 영빈관인 댜오위타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펑리위안 여사와 오찬에 앞서 환담을 나누고 있다. 왼쪽은 윤병세 외교부장관 사진=청와대 제공>

한중관계 내실화 추진 중 = 지난 6월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 방문한뒤 한중관계는 한단계 높아지고(更上一層樓) 내실화를 다져 나가고 있다.

한중 정상회담의 성과 중 하나는 전략적 소통을 포괄적이고 다층적으로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6월 정상회담 이후 양국 정상은 다자외교 무대에서 몇 차례 조우했으며, 지난 7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다시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중은 외교·안보 채널 구축 및 확대에 입장을 같이하고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간 대화 채널 구축에 합의했으며, 조만간 서울에서 회담이 이루어진다.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 비서장겸 외사판공실 주임을 맡고 있는 중국외교의 최고사령탑이다.

한중관계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정치·안보분야의 협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양국 지도자뿐만 아니라 정부 의회 정당 학계 등 다양한 주체간의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기로 했는데, 후속조치가 비교적 잘 이행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도 "한중 양자관계만 놓고 보면 분위기가 우호적으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중국에서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한국정부와 소통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 되었으며, 한국도 중국을 보다 적극 개입(Engagement)시키려는 의지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한중 양국은 북한과 한반도 정책에 대한 입장차가 존재한다. 지난 6월 박 대통령 방중 전후 일부 학계와 언론은 중국이 북한에 대한 기본 노선을 획기적으로 전환할 것처럼 전망했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이 그동안 유지해온 평화(不戰)와 안정(不亂), 비핵화(無核) 가운데 우선순위를 변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최근 중국전문가들은 "특별히 달라졌다고 믿을 만한 징후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는 강경한 입장이지만 북한과 양자관계를 근본적으로 조정했다고 믿을만한 근거는 없다는 주장이다.

시진핑 집권 초기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와 평화와 안정 두 가지 목표의 동시 해결을 주장했다. 이른바 '표본겸치(標本兼治)론'이다. 북한의 핵개발은 표면적으로 불거진 문제(標)이며, 근본적인 문제(本)는 북한의 안정으로 이를 동시에 해결(兼治)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기존 한반도 정책의 틀, 즉 북한의 체제 안정이 유지되는 가운데 비핵화를 보다 우선시 하는 '조정' 혹은 '태도 변화'가 이뤄진 것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것이다.

미일동맹 강화와 중국의 대응 = 최근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논의를 공식 지지하는 등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안보 역할이 강화되면서 지역 정세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지난 2009년 2월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를 선언하고 중국을 강하게 압박했지만 존 케리 국무장관은 '중동으로 재회귀(Re-Pivot to the Middle East)'하고 있다. 미국이 단기적으로 이란 핵과 아랍―이스라엘 분쟁 해결을 통해 외교적 성과를 내려 하면서 아시아에서 힘의 공백을 일본을 통해 메우려 하고 있다. 한국에는 일본과 안보 분야에서 협력을 강하게 주문하고 있다. 한미일 안보협력, 미사일방어(MD)체계, 미국 주도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등은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려운 줄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미국보다 중국에게 한반도의 가치가 크고 한반도 안정이 훨씬 더 절실하다. 한국이 중국 견제를 위한 한미일 삼각 안보동맹에 과도하게 편입될 경우 중국은 북한의 안보적 가치에 대해 더욱 집착하게 되는 역효과를 낳게 된다. 최근 중국은 미일 동맹 강화에 대해 1차로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2차로 동남아 국가들 및 북한을 포용하는 정책을 취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외교전문가들은 어느 한쪽을 희생하는 제로섬 게임을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이 심각해 미일이나 중국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은 정치·군사안보적인 측면에서 미일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하지만 경제적인 측면과 북한 변수를 고려할 때 미일 동맹에 편승할 수만은 없다.

미국과 관계 강화는 중국과 일본에 대한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고, 이를 배경으로 한 중국과 관계 강화는 일정 부분 다시 미국과 일본에 대한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한미-한중간 전략적 소통을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총괄 조정하고 있는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3일 출국해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현안을 논의하고, 다음 달에는 중국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대화에 나서면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관련기사]

-한국이 탐지하면 미·일이 요격

-미, 중동전쟁 늪에 빠져 중국 부상 대처 못해

-[인터뷰 | 베이징대 진징이 교수] "중국에 과도한 기대는 금물"

-[한국외교를 진단한다 ①  한미관계] 미국-일본 안보공조 대폭 강화 … 딜레마에 빠진 한국

-[한국외교를 진단한다 ②한일관계] "위안부 피해 문제, 중재위 회부 등 정면승부해야"

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

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

김기수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