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군 석평리 범들마을 … 영농시스템 혁신으로 농업경영 체질 바꿔

우리나라 농촌·농업은 안팎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밖으로는 우루과이라운드 타결과 WTO체제 도래, FTA 체결 등에 따른 농산물시장 개방 압박이 안으로는 고령화와 이농현상 등에 따른 농촌해체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들이다. 하지만 농업은 포기할 수 없는 생명산업이다. 이 때문에 농업에서 희망을 찾기 위한 새로운 시도들이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경북도 역시 마찬가지다. 위기를 기회로 바꿔나가는 경북도의 선진 농업현장을 찾아 미래 농촌의 희망을 확인한다.

지난 21일 찾아간 경북도 봉화군 봉화읍 석평3리 범들마을 들녘은 황금물결로 출렁였다. 넓은 들판 한 귀퉁이에서는 벼를 수확하는 기계인 콤바인이 요란한 기계음을 내며 분주히 움직였다. 예나 지금이나 추수하는 농촌 풍경은 풍요롭다. 이런 풍경만 보면 범들마을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옛날 봉화읍의 상징 호골산 범들이 뛰어놀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 범들마을. 올해 들어 이 범들마을에 새로운 변화가 시작됐다. 없었던 비닐하우스가 생겨났고 새로운 작물들도 심어 첫 수확의 맛을 봤다. 비닐하우스 고추는 늦가을 때를 잊고 아직 주렁주렁 달려있다. 부추농사는 이제 시작이다.


<사진:경북 봉화군 마을영농 육성 시범마을로 선정되면서 범들마을 회원들이 처음으로 수확한 홍고추 선별작업을 하고 있다. 봉화 최세호 기자>

마을영농 선정되면서 새 소득작물 도입 = 범들마을이 달라진 것은 경북형 마을영농 육성 시범마을로 선정되면서부터다. 물을 대서 농사를 짓는 전형적인 수도작 마을에서 새로운 고소득 작물을 키워 부자마을의 꿈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경북형 마을영농은 경북도가 고령화되는 농촌의 소득을 상향평준화하기 위해 도입한 공동영농시스템으로 일본의 집락영농에서 벤치마킹했다.

이 마을은 117가구 253명의 주민이 사는데 40%가 60세 이상 고령이라 인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마을공동체 의식과 결속력이 강해 공동작업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범들마을은 지난해 10월 마을영농회를 구성했다. 대표는 오랫동안 이장을 맡아온 남호원(65)씨가 맡았다. 가입을 희망한 38농가를 회원으로 출범했다.

수도작생산부, 원예작물생산부, 가공유통부 등을 두어 책임자를 임명했다. 공동경작 농지는 40㏊. 벼 38㏊, 고추 1.8㏊, 부추 0.2㏊를 심기로 했다. 지난 3월 영양고추시험장과 영덕 부추단지를 방문해 견문도 넓히고 수차례 세미나와 포럼을 통해 마을영농에 대한 이해와 소득작물 재배기술을 익혔다.

도에서 지원받은 3억원으로 겨울에도 원예작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수막비닐하우스 5000㎡, 소형육묘장 168㎡를 새로 설치하고 트랙터와 콤바인 등 6종 35대의 농기계도 마련했다. 부족한 농기계는 기름값을 지원해주고 회원 개인 것을 빌려 썼다.

공동체 분위기 되살아나고 수입도 늘어 = 마을영농회 조직과 경작준비를 끝낸 범들마을 영농회는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볍씨소독부터 논갈이, 고추정식, 부추정식, 모내기, 부추·고추 수확 등의 경작을 '네것 내것 없이' 공동으로 했다. 크고 작은 알력은 있었지만 새로운 가능성이 보였다. 작업의 효율성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공동작업장에서 같이 식사를 하고 노동을 하며 부대끼다 보니 없던 정도 생겨났다.

이 마을영농회는 농지임차료로 1000㎡당 쌀 80㎏ 3가마 상당을 지급하고 회원소유 농기계 임대시 유류대 지원을 규칙으로 정했다. 인건비는 작업량(시간)에 따라 일지에 기록해 사후 정산하기로 했다. 100만원을 출자한 회원에게는 수익이 발생할 경우 60%를 배당했다. 30%는 영농회에 적립하고, 10%는 마을기금으로 내기로 했다.

마을영농 시범마을 선정 후 고추와 부추를 새로운 소득작물로 도입했다. 지난 8월까지 출하실적을 집계한 결과 홍고추 5톤을 출하해 1000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부추도 2톤을 생산해 320만원의 소득을 냈다. 첫해 실적은 미미했지만 부농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고추는 노지뿐만 아니라 하우스에서도 생산한다. 수막하우스 재배를 하면 내년 3월까지 홍고추와 풋고추를 생산할 수 있어 소득작물로 선정됐다. 부추도 한번 파종하면 1년에 8번까지 수확할 수 있어 고소득 작물로 꼽혔다.

벼농사는 1000㎡에 평균 80㎏짜리 6가마를 생산한다. 돈으로 환산하면 100여만원에 불과하다. 반면 부추는 같은 면적에서 연간 1000만원 정도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 또 한번 파종하면 일년에 8번 수확할 수 있고 8년까지 생산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김주령 도 농업정책과장은 "부추는 고소득 작물이긴 하나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고, 반대로 쌀은 소득은 낮지만 노동력 투입이 적은 작물"이라며 "범들마을은 이 두 작물을 병행 경작해 효율을 극대화시켰다"고 말했다.

범들마을은 유휴인력에게 일자리도 제공했다. 시간당 6000원씩 인건비를 줬다. 하루 평균 10시간씩 80일 정도를 일해 48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틈새농지 이용 절임배추 등 6차산업 발굴 = 범들마을은 시범마을 선정을 계기로 주민스스로 마을의 발전방안에 대한 가닥을 잡았다. 마을영농회 첫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송이쌀 만드는 범들마을'을 마을 브랜드로 정했다. 지난 6월 주민 80여명이 참여해 12시간의 토론과 협의를 거쳐 도출했다.

내년부터는 고추·부추·수박 등 소득작물 단지를 확대한다. 현재 2㏊인 경작면적을 2017년까지 10㏊로 늘릴 계획이다. 40㏊인 공동경작지도 62㏊도 확대하기로 했다.

농산물을 활용한 기능성 발효제품 생산에도 도전하기로 했다. 최근 봉화지역에서 인기작물로 부상하고 있는 수박재배를 확대하면서 수박 수확이 끝나면 배추를 심어 절임배추로 가공해 판매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밖에 친환경들판 메뚜기잡기 체험장 운영과 허수아비경연대회 등 체험관광 상품도 개발할 계획이다.

마을영농의 운영조직도 법인으로 전환해 경영합리화에 나서기로 했다. 남 대표는 "고령화와 농촌이탈 현상으로 영농작업 능력이 떨어지는 농촌현실을 공동체 의식으로 극복해 인정이 넘치고 풍요로운 범들마을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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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호 기자 seho@naeil.com

김신일 기자 se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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