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미싱타는 여성들' 20일 개봉 … 1970년대 평화시장 어린 '여공'들 청춘·성장이야기

"전태일 정신은 한마디로 '어린 여성노동자를 향한 연민'이다."

송필경 '(사)전태일의 친구들' 이사는 평전 '왜 전태일인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큐멘터리 '미싱타는 여자들' 한 장면. 앞쪽부터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씨 사진 진진 제공


50여년 전 전태일 열사의 분신은 한국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그 전태일을 움직였던 1970년대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 소녀 여공들의 어제와 오늘을 담은 '미싱타는 여자들'이 20일 개봉돼 관객들을 만난다.

다큐멘터리 '미싱타는 여자들' 한 장면. 사진 진진 제공


'미싱타는 여자들'은 1970년대를 추억하는 내 '친구'이자, 눈부신 투쟁의 시간을 지나온 '내 엄마'이자, 시대는 다르지만 서로 연대할 수 있는 '또래 여성'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온 가족이 같이 볼 수 있는 공감 다큐다.

당시 평화시장에는 1만5000명의 노동자가 하루 14시간 이상 일했다. 여성이 80%였다. 적게는 12살, 많게는 16살로 대개 가정을 부양하고 남자 형제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돈을 벌기 시작한 10대 소녀들이었다.

주요 출연자들은 환갑을 넘겼다. 평화시장에서 '시다' '미싱사'로 일을 시작한 이숙희·신순애·임미경씨다. 옛 편지 글 사진 등과 함께 당사자들의 증언은 당시 그들이 느꼈던 솔직한 감정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이혁래 감독은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기 보다 이분들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임미경씨는 "여자는 공부를 하면 안된다"는 아버지의 말에 국민(초등)학교를 마치자마자 평화시장에 시다로 들어갔다.

당시 노동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전태일 평전' 속 13살 '시다'의 모델이었던 신순애씨는 "왜 전태일평전을 읽고 눈물이 안 날까 싶어서 다시 읽었다. 평전에 나와 있는 것보다 내 시다생활할 때가 더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은 게 생리대다. 돈이 없어서 약국에서 파는 생리대를 사서 쓰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몇년 전인가 방송에서 고등학생이 생리대가 없어서 구두깔창으로 대신했다는 말을 듣고, 내 몸이 굳어지는 것 같았다"며 "이런 경험들이 있어서 눈물이 안 났구나 했다"고 했다.

이런 환경에서 청계피복노조에서 운영한 '노동교실'은 이들에게 동료애를 확인하고 '배움의 한'을 풀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또 노동자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발돋움하게 해준 곳이기도 하다.

"중등교육 과정을 무료로 가르쳐준다는 소리를 듣고 노조에 찾아갔다. 어린 나이었지만, 점차 '이건 인간답게 사는 게 아니야'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 사실을 일깨워준 노동교실은 제 생명과도 바꿀 수 있는 곳이었다."(임미경씨)

빨리 돈 벌어 중학교에 가겠다는 꿈을 안고 16살에 평화시장 봉제공장에 취직했던 이숙희씨는 "단순히 교실이 아니고 계속 일만 하던 우리에게 배움터였고, 놀이터였고, 자신을 키워나가는 장이었다"고 말했다.

노동교실에서 통장개설 방법도 배우고, 한자로 이름 쓰는 법도 알게 됐다.

신순애씨는 "1966년 평화시장에서 13살에 시다로 시작했다. 저는 7번 시다, 1번 보조, 공순이였다"며 "그러다가 노조에 갔는데 처음으로 '신순애'라는 제 이름을 불러줬다"며 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교실은 당시 정권에게 불편한 공간이었다. 박정희정권은 노동교실에 민중운동가 함석헌을 초청하고 이소선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른다는 이유에서 '빨갱이 양성소'라는 낙인을 찍은 뒤 폐쇄에 들어갔다.

건물주가 폐쇄를 통보한 한달 전인 1977년 9월 9일 노동자들은 노동교실을 점거한 뒤 농성에 들어갔다.

당시 15살이었던 임미경씨는 "평화시장에서 전태일이 목숨을 바쳤으니, 제2의 전태일은 여자가 돼야 한다"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는 "노동교실은 제 생명과 바꿀 수도 있는 곳이었고, 그것을 못 가게 차단했을 때 목숨을 던져서라도 꼭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세 사람이 다큐제작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숙희씨는 "함께 고생하고 애쓰고 상처받은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참여하게 됐다"며 "전국 극장에서 영화가 상영되면 그런 기회가 오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한국 노동사를 거창하게 말하기 이전에 개인 한 분 한 분에게 어떤 사연들이 실타래처럼 얽혀있는지, 해야 하는데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사려 깊게 하나하나 풀어내는 영화"라며 "복잡하게 얽혀있는 마음의 실타래들을 하나하나 풀어주는, 아름다운 화면으로 찍혀져 있는 영화"라고 극찬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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