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이집트, 튀니지도 IMF행 … 아프리카 2800만명 극심한 기아

지난 4월 12일 스리랑카정부는 채권 이자 7800만달러(약 975억원)를 갚지 못하겠다며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했다.

외화부족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로 단전이 일상화되고, 생필품 부족과 물가급등으로 민생이 파탄에 빠지면서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이런 혼란을 겪는 곳이 스리랑카뿐 아니다. 남미,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등 세계 곳곳의 신흥국이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식량 가격 상승으로 민생파탄에 직면하고 있다.
배급식량 받으려 장사진 친 아프간인들│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주민들이 25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구호단체가 나눠주는 식량을 받기 위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유엔에 따르면 무장세력 탈레반이 작년 8월 재집권에 성공한 뒤 아프간 경제 상황이 급속히 악화해 인구 4000만 명 가운데 58%인 2300만 명이 극심한 기아에 직면해 있다. 카불 AP=연합뉴스


◆전기없어 핸드폰 불빛으로 수술도 = 스리랑카는 외화부족으로 석유 수입이 줄자, 주유소에는 줄이 길게 늘어섰고 일부 화력발전소는 가동을 중단했다.

설상가상으로 건기까지 겹치며 전력 생산의 40%를 차지하는 수력발전도 큰 타격을 입었다. 3월부터 순환 단전을 해오는데, 하루 3시간에서 13시간까지 매일 이어지고 있다.

물가도 치솟았다. 지난 3월 스리랑카의 소비자물가는 작년 동월 대비 18.7%, 식품 물가는 30.2% 각각 올랐다. 기름부족으로 대중교통도 마비됐고, 마취약 등 의약품 부족으로 시급하지 않은 수술은 연기됐다. 수술실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핸드폰 불빛으로 수술했다는 현지 보도도 나왔다. 인쇄 종이 부족으로 학교 시험도 미뤄졌다.

문을 닫는 해외 공관 수도 늘었다. 스리랑카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나이지리아 아부자 대사관,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키프로스 니코시아 총영사관에 이어, 지난 4월말부터 노르웨이 오슬로와 이라크 바그다드의 대사관, 호주 시드니 총영사관의 운영을 잠정 중단했다.

민생이 파탄에 빠지자 국민들은 연일 시위를 벌이며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제까지 충돌로 5명이 사망했고 약 180명이 다쳤다. 지난 9일 마힌다 라자팍사 총리가 사임의사를 밝혔지만, 총리 가문 조상집이 불타는 등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튀니지, 빵 부족으로 시민들 고통 = 파키스탄, 이집트, 튀니지 등도 심각한 경제난에 봉착해 있다. 코트라에 따르면, 3월 현재 파키스탄 소비자 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12.7%로 상승했다. 생필품은 더 치솟아 2월 현재 전년 동기 대비 식용유 42.6%, 채소류 39.4%, 밀가루 22.1%, 휘발유 37.7% 상승했다.

경제상황이 악화되자 지난 4월 11일 파키스탄 의회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임란 칸 총리를 불신임 퇴진시키고 셰바즈 사리프 총리를 선출했다. 셰바즈 총리는 취임 일성으로 "나라가 빚으로 침몰하고 있다. 지금은 전시"라고 말했다. 파키스탄은 IMF와 이슬람 수니파 우방국인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집트도 코로나19로 주 수입원인 관광산업이 침체에 빠진 상태에서, 우크라전쟁으로 물가가 급등하고 해외자본 이탈로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이집트는 밀의 83%를 러시아(60%)와 우크라이나(23%)에서 수입하는데, 국제 밀 가격 상승으로 외화가 급감하고 있다. 외환보유고가 급감하자 수입제한 조치와 함께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상태다.

중동지역 언론사인 '알 모니터'에 따르면, 튀니지도 밀 수요의 대부분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의존하는데 최근 주식인 빵이 크게 부족해 시민들이 고통받고 있다. 튀니지는 밀가격 상승에 이어 관광객 축소와 휘발유 가격의 상승 등으로 경제위기를 겪으며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러-우'서 곡물수입 의존 아프리카 직격탄 = 영국에 본부를 둔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의 가브리엘라 부커 총재는 지난 3월 22일 "동아프리카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에 곡물수입의 90%를 의존하고 있다"며 "동아프리카 주민 2800만명이 극심한 기아를 겪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옥스팜은 에티오피아, 케냐, 소말리아 등에서 이런 위기가 심각하다고 전했다. 옥스팜에 따르면 이들 국가는 2년째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다.

케냐는 곡물 수확량이 70% 감소해 국가 재난사태를 선포한 상태다. 2016년 이후 최악의 식량위기를 겪고 있는 에티오피아도 940만명이 굶주리고 있다.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소말리아에서도 350만명이 식량과 식수 부족사태에 빠졌고, 식량을 찾아 나라를 떠난 국민도 67만명에 이른다. 부커 총재는 "이미 2100만명이 동아프리카에서 심각한 기아와 싸우고 있다"며 "인도적 지원부족 상황은 비참한 지경"이라고 호소했다.

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장병호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