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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성원용의 신북방정책 탐사]

제재의 역설, 중앙아시아 진출 '기회의 창' 열린다

등록 : 2022-06-23 12:15:51

성원용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올해는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수교한 지 30주년 되는 해다. 대중앙아시아 관계를 평가하고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때가 되었다. 사실 지난 정부의 신북방정책이 너무 러시아에 무게중심이 실려 대중앙아시아 협력의 잠재력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당분간 대러제재의 혼란이 지속될 터이니 대중앙아시아와의 실질협력이 보다 절실한 순간이다.

중앙아시아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몇가지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첫째, 신냉전 기류가 격화되고 경제 블록화가 가속화되면 '지정학적 중간국'의 위치에 있는 국가들간 연대가 필요하다. 중앙아시아 5개국은 러시아 중국 미국 유럽연합(EU)간 세력 각축전이 전개되는 공간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지정학적 중간국이다. 한반도의 운명과 일치한다. 이들과 전략적 연대를 강화함으로써 대외정책의 새로운 공간이 열릴 수 있다.

둘째, 경제안보 측면에서도 중앙아시아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중앙아시아는 유라시아의 '심장지대'이며, 석유·가스 등 에너지자원의 보고다. 최근 희토류 등 전략광물의 안정적 공급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바로 중앙아시아가 전략광물의 보고이기도 하다. 키르기스스탄은 세계 9위 희토류 생산국이다. 우즈베키스탄에는 텅스텐 우라늄 크롬 텔루르 등 다양한 전략광물이 매장되어 있다.

셋째, 서방의 대러제재가 진행되면서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신북방정책을 추진할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대러제재 이후 중앙아시아에서 일부 러시아 기업이 철수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면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 기업이 주도한 에너지자원 개발 및 각종 인프라 투자가 중단되는 등 '경제공백'의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러시아에서 수입하던 일부 경공업 제품의 공급이 불안정해지자 일부 국가에서는 자국 내에서 제품을 생산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만일 우리 기업이 그 공백을 대신 메울 수만 있다면, 중앙아시아 시장 진출의 '기회의 창'이 열리는 것이다.

대러제재 피난처로 떠오른 중앙아시아

대러제재 이후 중앙아시아를 '우회'의 공간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IT 부문의 러시아 엔지니어들이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으로 대거 이주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러시아 IT 부문의 이민 투자자를 위한 긴급 취업비자를 발급하기 시작했다.

한편 카자흐스탄에는 러시아 물류기업들이 몰려들고 있다.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회원국으로 러시아와 관세동맹국인 카자흐스탄에 기업을 등록하고, 우회통로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대러제재로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이용한 물류상황이 악화되자 카스피해 연안국을 경유한 해륙복합운송으로 대안 노선을 찾는 것이다. 중앙아시아가 제재 피난처가 된 것이다. 이러한 추세를 고려한다면 중앙아시아와 러시아를 연계한 청산결제 체제까지 재현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우회의 공간은 코카서스 지역에도 있다. 친러 성향이 강하고 러시아가 주도하는 EAEU 회원국인 아르메니아로 이주하는 러시아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에게 우크라이나 사태는 곤혹스러운 문제다. 일부 중앙아시아 국가의 외교 각료들이 우크라이나의 주권 및 영토 보전을 인정하는 원칙론적인 발언을 했지만, 대러제재에 가담한 국가는 없다. 기조는 중립이다. 현실적으로 러시아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고, 대러 경제의존도가 상당하다. 영세중립국을 표방해온 투르크메니스탄의 세르다르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의 첫 해외순방(6월 10일) 지역도 다름 아닌 러시아의 모스크바였다. 양국은 전략적 동반자관계 강화 선언에도 서명했다. 이게 유라시아의 현실이다.

중앙아시아에도 MZ세대가 주도하는 새로운 디지털 문화가 확산되면서 향후 중앙아시아 사회의 격변을 예고한다. 세대교체와 리더십의 변화를 촉발할 전망이다. 그렇다고 중앙아시아에 반러정서가 강화되고 러시아와의 이격이 확대될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들은 단순한 지배종속 관계가 아니다. 둘 사이는 때때로 긴장과 갈등을 내포하고 있지만 많은 연결고리와 깊은 정서적 유대감을 갖고 있다. 2021년 카자흐스탄 청년세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러시아를 가장 우호적인 국가로 답한 비중은 56.8%였다. EU(20.2%) 미국(17%) 중국(14.4%)이 다음 순이었다. 구소련 해체 이후 변형된 형태일지라도 일종의 공동체가 작동하는 것이고, 싫든 좋든 러시아는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각국 정책수요에 협력과제 실천을

이제 중앙아시아에 대한 막연한 기대, 혹은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된 통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의 앞선 기술 수준과 발전경험을 중앙아시아 5개국들과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중앙아시아 각국의 정책수요와 필요성에 부합하는 협력 과제를 실천해감으로써 실질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구축해가야 한다.

ICT 신재생에너지 금융 보건의료가 4대 유망 협력 분야다. 그중 최우선은 ICT 협력이다. ICT 분야가 우리의 강점과 중앙아시아의 정책 수요가 만나는 접점이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도 4차산업혁명시대에 디지털 전환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ICT 발전과 연계된 사물인터넷(IoT) 기술 등을 전력 가스 상하수도 교통카드 체계에 광범위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공공서비스를 효율화하고 정부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 또한 ICT를 활용한 전력계통의 개선이 뒤따라야 보건의료, 헬스케어, 스마트 팜·시티 사업도 현실성을 갖게 된다.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의 성공도 송배전 전력계통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결국은 ICT가 핵심이다.

다행인 점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의 ICT 주요 지표가 세계평균에 근접하거나 이를 상회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ICT 협력을 위한 기초 여건은 조성된 셈이다.

2020년 기준 글로벌 수준의 전자상거래 비중이 약 20%인데, 우즈베키스탄은 0.1%, 카자흐스탄은 3.8% 수준이었다. 그만큼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것이다. 중앙아시아 정부에게 디지털 전환은 역점 사업이다. 거래투명화로 세수확보가 용이하고, 오프라인 비용 절감으로 물가 인상을 억제하는 부수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 각국의 정책 수요와 필요성에 주목한다면 적시 정책화와 대응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에서 일자리를 잃은 중앙아시아의 이주 노동력이 본국으로 귀국하고 있다. 따라서 실업률의 증가는 불가피하며, 중앙아시아 정부는 고용 창출을 촉진할 산업에 투자할 개연성이 높다. 결국 우리의 중앙아시아 진출도 고용 창출을 촉진할 산업에 집중해야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한국적 산업화 모델'의 현지화 필요

신북방정책의 수용성을 높이는 전략은 양국간 전략적 협력에 대한 비전과 로드맵 작성과도 연관된다. 지금까지 단기적인 경제이익 실현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중장기적인 성장잠재력에 주목하고, 상대국의 전략적 가치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 속에서 '한국형 산업화 모델'을 정교하게 현지화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주목할 국가가 키르기스스탄이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과 비교해 경제규모가 작고 부존자원도 적지만 상대적으로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개방성이 높은 국가다. 무엇보다도 고위급 국가엘리트들이 '한국형 산업화' 모델을 배우려는 열망이 강하고 한국과의 전략적 협력에 대한 기대가 크다. 수용성의 측면에서 보면 협력 잠재력이 더 큰 국가일 수도 있다.

이제는 한국의 대중앙아시아 전략도 지역적 차원이 아니라 개별 국가 단위로 개발 조건과 환경, 비전과 목표, 전략과 접근방법 등을 조율해가며 국가발전전략을 업그레이드하고 구체화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성원용 인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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