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완박' 이건 또 무슨 얘기인가. 국민들이 '검수완박'이란 생경한 용어에 익숙하기도 전에 이란성 쌍생아가 태어날 판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의 지시로 구성된 행안부 '경찰제도개선 자문위원회'는 21일 '경찰의 민주적 관리·운영과 효율적 업무수행을 위한 권고안'을 발표했다. 요지는 행안부장관이 경찰청의 인사·예산, 나아가 수사관련 사안에 대해서도 상시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행안부에 가칭 경찰국 (경찰지원조직)을 설치하는 권고안이다.

비록 권고안이지만 사실상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것으로 해석돼 행안부는 즉각 실행할 태세다. 대통령령과 행안부장관령의 규칙을 바꾸면 된다는 논리를 편다.

대통령실은 "그동안 민정수석실 등을 통해 비밀리 경찰을 통제하던 것을 공식조직을 통해 감독하려는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황정근 공동 자문위원장은 브리핑에서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 권한이 커진 만큼 '민주적' 방법으로 경찰을 통제하고 지휘할 수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함정이 많다.

권력이 통제하려는 방식은 곤란

'공룡경찰'을 견제하려면 권한을 분산하고 국민적 감시하에 두어야 한다는 반론이 거세다.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정치권력에 의한 '통제'는 경찰을 또 다시 정권의 시녀로 전락시킬 위험성이 높다는 우려 때문이다. 경찰들 역시 "왜 과거로 돌아가느냐"며 항변한다. 경찰청은 당일 공식 입장문을 통해 "권고안은 역사적 발전과정에 역행하고 법치주의 훼손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경찰은 미군정 경무국-경무부를 거쳐 치안국 치안본부 경찰청으로 조직과 기능이 확대되어 왔다. 1948년 제정된 '내무부직제'(대통령령)에 계속 규정되었던 경찰은 1991년 제정된 '경찰법'으로 내무부직제에서 벗어나 별도의 '경찰청과 그 소속기관(등) 직제'(대통령령)를 갖게 되었다.

현재의 논란은 1991년 독립적인 경찰법이 생긴 역사적 배경과 법취지와 관련이 있다. 현재도 경찰청은 행안부 소속이다. 하지만 행안부장관의 치안사무 조항을 삭제해 경찰의 인사와 예산, 수사에 개입하지 못하게 한 것이 1991년 입법 취지다. 박종철 고문사망과 같이 정권의 시녀로서 불법적인 권한을 행사해 온 것에 대한 제도적 장치로 '독립성'을 부여한 것이다. 설사 대통령실 산하 민정수석실을 폐지하면서 행안부에 별도 조직이 필요하다고 해도 정부조직법 등 정상적인 입법절차와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높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안이 불거질 때 마다 "법과 원칙에 따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행안부 자문위 권고안은 관련법과 충돌한다는 지적이 많다. 법 개정이 여소야대 정국이라서 어려우면 시간을 늦추면 된다. 여론과 야당을 설득하고 정 안되면 차기 총선에서 이겨서 법 개정에 나서야 위헌시비를 피할 수 있다. 검찰 출신 윤 대통령이 경찰에 대한 불신이 있는 것도 이해가 가지만 무리해서 경찰을 손아귀에 넣으려면 탈이 날 수밖에 없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공론화와 법 절차 거쳐야

사실 경찰은 검찰보다 정권변동에 더 민감했다. 경찰은 통제하기 전에 먼저 '순응'해 온 게 더 문제였다. 현재 경찰의 수사가 야당 탄압이라는 정쟁에 휘말려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경찰 고위직 출신 한 전직 경찰은 "경찰이 통제안된 적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현행법상 경무관 이상 경찰 고위직은 대통령에게 인사권이 있다.

21일 경찰 치안감 인사 번복과정에서 이는 그대로 노출됐다. 권고안에 대한 경찰청의 공식 반발입장이 나오자 정부는 2시간 만에 이미 공개된 치안감 전보인사에 대한 수정 인사를 냈다. 대통령실은 부인하지만 경찰 군기잡기란 말이 나온다.

지난 정부에서 검찰의 힘이 빠지면서 상대적으로 경찰의 권한은 세졌다. 9월 이후 검수완박법(형사소송법·검찰청법)이 시행되면 이런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민주적 통제는 정치권력이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경찰을 장악하는 방식이 아니라 권한분산과 국민적 감시 시스템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게 시민단체들 주장이다.

차제에 정부와 정치권은 행안부 자문위 권고안을 포함해 자치경찰과 국가경찰의 분리, 국가경찰위원회 상설화 등 그동안 경찰 비대화를 제어하기 위해 논의돼 오던 사안을 공론화하고 관련법 개정에 나서는 게 순리다.

차염진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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