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이 끝난 지 열흘이 지난 3월 20일. 윤석열 당선인은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실 이전을 공식화했다. 청와대 공간의 폐쇄성을 벗어나 늘 국민과 소통하면서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받들고자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겠다고 했다. 물리적 공간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통의 의지라는 것을 잘 안다며, 수시로 언론과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한지 6개월 남짓 지난 11월 21일. 대통령실은 그동안 소통의 상징처럼 내세웠던 도어스테핑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악의적인 보도"라고 비난한 대통령에게 해당 언론사 기자가 "뭐가 악의적이라는 얘기냐"며 항의한지 사흘만이다. 이후 대통령실은 대통령의 출근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가림벽까지 설치했다.

동종선호경향은 서로의 편향만 확증해줄 뿐

대통령의 소통법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소통을 강조해 대통령실까지 옮겼지만 용산 집무실은 청와대와 진배없는 구중궁궐이 되어 가고 있다. 국민과의 열린소통을 위해 마련됐다던 도어스테핑은 끝내 가림벽에 가려졌다. 소통을 내세웠던 윤 대통령은 6개월 만에 스스로를 불통의 굴레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이런 평가가 불편할 것이다. 전직 대통령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려 했고, 나름의 통로를 통해 세간의 여론을 듣고 있다고 자신하기 때문이다. 실제 윤 대통령은 몇개의 조언그룹으로부터 의견을 듣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장벽은 오히려 높아졌다. 대통령의 '헌법수호 책임' 발언 이후 MBC 뉴스 시청률은 부동의 1위였던 KBS의 '9시 뉴스'를 제쳤다. 윤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는 몇달째 30%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부정평가는 60% 선에서 내려올 줄 모른다. 이런 지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조언그룹의 시각이 문제인가, 아니면 대통령의 고집이 귀를 막고 있는 것인가.

윤 대통령이 국무위원들 중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 한동훈 법무부장관과 각별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에 권영세 통일부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 박민식 보훈처장 등과도 자주 의견을 나눈다고 한다. 대통령을 포함해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서울대 법대 출신의 엘리트들이라는 점이다. 정치권에서는 다른 조언그룹들도 비슷한 유형일 거라고 본다.

사고방식과 관점이 같다면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끼게 돼 있다. 실제 타인의 생각이 자신과 같을 때 뇌를 스캔한 사진을 보면 뇌의 쾌락중추가 자극된다고 한다. 이른바 '동종선호'(Homophily) 경향이다. 하지만 조언그룹이 동종이라면 문제다. 상황을 판단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이들끼리라면 편향을 더 확증할 가능성이 높다. 그토록 자유를 강조해온 대통령이 '언론의 자유'를 '위헌'으로 오독하고, 이태원 참사의 '법률적 책임'만 묻고 '정무적 책임'은 외면하는 것은 이런 동종선호 경향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일찌기 송나라는 권력의 편향성을 경계하기 위해 조정 밖 재야인사를 직접 황제와 대면해 진언하게 하는 '등대'(登對), 특정 관료들이 돌아가며 직언하는 '윤대'(輪對) 제도를 운영했다. 시쳇말로 조언그룹을 제도화한 것이다. 사대부들은 이를 황제에게 바른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 주희(朱熹) 육구연(陸九淵) 여조겸(呂祖謙) 등 당대의 인물들은 황제권력 앞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그들은 "황제가 독단적으로 모든 기관을 운용한다(獨運萬機)"는 식의 직설적 어휘까지 사용했다.(위잉스 '주희의 역사세계') 그런데 훨씬 민주화된 이 시대 우리 대통령은, 그리고 조언그룹은 어떤가.

조언그룹이 '복제인간팀'이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

윤 대통령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소통은 공간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 권력은 그 자체로 구중궁궐을 만드는 속성이 있다. 스스로 귀를 막으면 예스맨이나 동종집단이 울타리를 치게 돼 있다. 영국의 언론인이자 저술가 매슈 사이드가 '다이버시티 파워'에서 지적한 것처럼 조언그룹이 '복제인간팀'(teams of clones)이 아닌 '반항적인 팀'(teams of rebels)이 되어야 할 이유다.

대통령실이 지금 할 일은 가림벽 설치가 아니다. 대통령의 소통법에 문제가 없었는지, 동종선호 경향이 대통령의 편향을 더 확증적으로 만들지는 않았는지 묻는 게 먼저다. 취임 6개월 만에 불통 낙인이 찍혀서는 대통령도 나라도 불행해진다.

남봉우 기자 baw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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