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유가 보조금으로만 116조원 지원

과보호 따른 '좀비기업' 양산·존속 논란

오일쇼크 땐 절약과 기술혁신으로 돌파

"가격의 시장조절 기능 상실, 경쟁력 저하"

일본 정부의 각종 보조금 남발이 시장 질서를 왜곡하고 경제 전체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코로나19에 이어 고유가 등으로 고통받는 기업과 가계에 대한 각종 보조금이 경제 주체에 대한 '과보호'를 초래해 시장의 조절기능을 상실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 도쿄에 있는 국토교통성 청사. 사진 백만호 기자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8일 '출구없는 개입으로 왜곡되는 시장'이라는 논설주간 칼럼에서 정부와 일본은행의 재정지출과 금융완화정책을 비판했다. 이 신문은 우선 일본 정부의 천문학적인 보조금 정책에 대해 우려를 드러냈다. 일본 정부가 올해 초부터 지급한 유가 보조금은 6조엔(약 58조원)에 이른다. 여기에 내년 초부터 추가로 6조엔 규모의 유가보조금을 지급한다. 정부가 유가보조금으로만 지급하는 액수가 12조엔(약 116조원)에 이르는 셈이다.

보조금은 구체적으로 전력 및 가스회사에 대한 지원과 일반 가계의 주유소 이용 등에도 쓰인다. 이러한 막대한 보조금에 따라 기업이나 가계가 자체적인 혁신이나 절약을 하지 않고 정부에 의지하게 된다는 점이다. 신문은 "전기와 가스요금이 오르면 에너지 절약의 동기가 커지고, 생산라인의 효율화를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며 "예컨대 탈탄소와 신기술 개발 등을 통해 에너지 수입 비중을 줄일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의 보조금 덕택에 유류 사용은 크게 줄지 않았다. 카드회사 JCB와 나우캐스트가 신용카드 결제내역을 분석한 결과, 올해 1~10월 평균 휘발유 구입액은 7.7% 늘었다. 휘발유 가격 인상에 따른 증가분을 빼더라도 전체 이용자수 자체는 1~2% 감소에 그쳐 유가 인상의 영향이 사실상 전혀 없었다는 분석 결과다.

이러한 현상은 1973년 1차 오일쇼크 당시와도 크게 다르다. 당시 일본의 원유수입량은 1973년 2억8900만리터에서 1985년 1억9700만리터까지 급감했다. 그만큼 국가와 기업이 에너지를 절약하거나 기술혁신 등을 통해 오일쇼크의 파고를 넘어왔다는 의미다.

실제로 일본은 1, 2차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기업들이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기술혁신에 나서고, 정부도 원전 증설 등 에너지원의 다각화를 통해 막대한 원유 수입에 따른 부담을 줄여왔다.

와타나베 쓰토무 도쿄대학 교수는 "가격이라는 시장의 시그널을 없애버리면 최악의 선택이 된다"며 "더구나 보조금에 의한 개입은 출구를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가격의 변동은 시장 참여자가 생존을 위해 다양한 선택을 하는 계기가 되지만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그만큼 왜곡된 질서를 낳는다는 비판이다.

이와 같은 실태는 금융지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정부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무담보, 제로금리 대출을 지원했다. 최장 10년간 사실상 제로금리에 차환대출까지 지원해 주도록 했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 이후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대한 원리금 상환을 몇차례 반복적으로 연장해 준 것과 비슷하다.

여기에 일본 기업은 사실상 제로 금리로 대출을 받고 있어 향후 기업이 문제가 되면 금융기관의 건전성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다만 이러한 정책금융지원은 대부분 정부와 일본은행이 최종적으로 보증을 해주기 때문에 금융기관의 부담은 거의 없다. 결국 금융기관과 기업 모두 정부의 재정지원에 취해 도덕적 해이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일본은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지나해 기업 도산 건수가 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정부의 공적자금 지원에 의해 기업이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히토츠바시대학 경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긴급신용보증을 받았던 기업의 60% 이상이 코로나19 때도 제로금리 대출을 동시에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학교 우에스기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달리 코로나19로 인한 제로금리 대출만 이용한 사업자는 37%에 그친다"며 "정부의 지원을 반복해서 받으면서 긴급 피난을 일상화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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