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환 언론인, 경기대 교수

"오늘날 독일은 우리가 알던 그 독일이 아니다. 혼돈과 펑크난 사회로 치닫고 있다." 녹색당 창당 멤버로 최고위원을 지낸 위르겐 유겐마이어 환경포럼 의장 등 독일 지인들이 필자에게 한 말이다.

독일의 고급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은 '세계가 독일을 어떻게 보는가?'라는 특집기사를 쏟아내면서 독일 위기를 지적한다. 미국 뉴욕타임스도 독일문제를 심층 분석했다.

이들은 4가지 증상을 들며 독일의 신화가 깨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4번 월드컵 우승국에서 연이은 예선 탈락 △정확성을 자랑하던 대중교통의 카오스 현상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 시대에 심화된 잘못된 에너지·경제정책으로 인한 러시아 푸틴의 오판과 중국문제 △'무능한 평화주의'가 그것이다.

첫째,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축구는 삶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유럽에서 가장 많은 월드컵 우승컵을 들어 올린 독일이 카타르월드컵에서 일본에 패해 예선 탈락했다. 4년 전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대한민국에게 패배,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둘째, 독일의 대중교통은 1초의 오차없이 제시간에 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전철 버스 등 대중교통 정거장에 시간표가 있고 그 시간을 맞춘다. 독일어로 '핑크트리히카이트'(Punktlichkeit) 즉 시간엄수다. 그러나 오늘날 전철 등 대중교통뿐 아니라 기차 비행기까지 수시로 연착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독일 중도진보지 슈피겔(Spiegel)은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전철근무 인력부족으로 37만5000분 지연이 발생했다는 특집기사를 내놓았다.

숄츠총리, 국면전환 시도하지만 지지율 낮아

셋째,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러시아에 50%까지 의존한 독일 에너지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러시아 에너지 의존이 독일 경제의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독일인들 사이에서는 푸틴과 친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와 16년 집권한 메르켈 앙겔라 전 총리에 대한 원성이 높아가고 있다. 특히 메르켈이 너무 안이하게 푸틴과 타협했고, 그 결과 에너지 국방 난민 등 수많은 난제를 남겼다고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무능한 평화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주장한 '무역을 통한 평화'가 푸틴의 러시아 침공으로 무의미해졌고, 게다가 중국이 끊임없이 대만 침공을 말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평화주의가 무능해졌다는 것이다.

국내외 위기로 지난해 집권한 '신호등'(빨간색 사민당, 녹색 녹색당, 노랑색 자민당 상징) 연합정권이 국면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전쟁은 독일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올라프 숄츠 총리는 '시대전환'을 내걸면서 국방비 1000억유로 책정과 해마다 국방비를 GDP의 2%로 상향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최근 독일 민영방송 RTL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숄츠 총리 지지율은 24%, '독일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당'에 대해 집권당 사민당은 11%에 불과하다. 신년사에 숄츠 총리는 '강하고 안전하고 에너지를 해결하는 나라'를 선언했지만 국민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

독일 지성인·고급지 비판이 우리에게 호들갑으로 비쳐질 수 있다. 독일은 평화통일을 이룩했고, 유럽 최강국으로 4차산업혁명을 선도하면서 경제호황과 완전고용에 다시 인구가 늘고 있다. 반면 우리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지만 정쟁으로 손놓은 국면이다.

독일의 위기가 남의 일 같지 않은 이유

오늘날 대한민국은 최고이자 최악의 시기다. 세계 10대 경제강국 및 아시아 최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지만 세계 최악의 자살률(한해 1만3451명), 초저출산(0.75명)으로 인구 및 지방소멸, 양극화, 정쟁 등으로 위기에 처해있다. 인구 5000만명 대한민국이 8000만명의 독일보다 독일산 비싼 고급차를 더 많이 구입한다. 세계 최고의 명품 구매로 '호갱'이라는 조롱을 받는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한국경제가 이대로 가면 2050년에 세계 50위권 밖으로 밀려날 것으로 전망한다.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찬란했던 로마제국의 몰락 원인을 '사치, 무능한 정치리더십, 인구소멸' 등으로 설명했다. 근면검소, 통 큰 리더십과 대통합, 인구증가 등 슈퍼전환을 통해 '한국이 쇠락한다'는 생각이 기우에 그치길 기대해본다.

김택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