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생산성과 직결, 현실적 대책 필요 … 규제에 막혀 안전 위한 별도 재활용 시설 구축 어려워

순환경제가 전세계적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떠오르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이러한 추세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12월 28일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환경부는 지속가능한 경제체계로의 전환을 위한 초석이 마련됐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지만 현실은 갈 길이 멀다.

당장 순환경제사회 달성 목표 자체가 없는 상황이다. 어떤 과제가 성과를 내기 위해선 목표 설정이 첫 단추다. 하지만 아직까지 순환경제사회 달성을 견인할 수 있는 법적 목표 설정이나 성과 관리 시스템이 없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국제적으로 순환경제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정작 이를 달성하기 위한 법적 목표조차 없는 실정이다. 사진은 24일 서울 시내 한 아파트에 분리배출된 재활용품들이 쌓여있는 장면. 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25일 이승희 경기대학교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는 "관련 법상 중장기적으로 폐기물발생감량률 등 목표를 세워야 하지만 쉽지 않은 과제"라며 "폐기물 발생을 줄이는 일은 기업 생산성과도 직결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사항들을 면밀히 따져 현실적인 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온실가스 감축 부분과 연계해 목표 설정을 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석유를 원료로 하는 플라스틱의 경우 온실가스를 다량으로 배출한다. 생산부터 폐기까지 8억6000만톤/년 CO₂를 뿜어낸다. 이는 석탄발전소 189개(500MW)에서 나오는 분량이다.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 제 13~15조에서는 '순환경제 목표의 설정 및 순환경제 성과관리' 내용을 담았다. 폐기물 발생 이후의 지표 외에 폐기물발생감량률 등을 순환경제 지표로 규정해 이를 위한 국가의 중장기·단계별 목표를 설정하도록 했다. 폐기물발생감량률은 기준연도 대비 해당연도 원단위 폐기물 감량비율을 말한다.

25일 경기도 용인시 재활용센터에서 설 연휴가 끝나고 나온 쓰레기들이 재활용을 위해 분류되고 있다. 용인=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경북 의성 쓰레기산 사태 재현 안되게 면밀히 검토 = 20일 환경부 관계자는 "관련 법상 2년 내에 순환경제 목표 설정을 해야 한다"며 "아직 정해진 사항이 없어서 예단할 수는 없지만 생활폐기물 위주로 설계를 하는 방법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산업폐기물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생활폐기물 감량 목표만 세워서는 본디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전체 폐기물 중 사업장폐기물 비중은 80% 이상이고 생활폐기물이 약 10%에 불과한 상황에서 사업장폐기물을 제외하고 목표 설정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지나치게 감량 목표를 높게 잡으면 오히려 사업장들이 몰래 쓰레기를 내다버려 '경북 의성군 쓰레기산' 사태가 재현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2019년 외신에 보도되는 등 국제적으로 망신을 산 경북 의성군 쓰레기산은 약 19만2000여톤 규모였다.

한 재활용업체가 2016년부터 20여차례 행정처분과 6차례 고발이 반복되는 상황에서도 5톤 트럭 3만8000대 분량의 폐기물을 불법으로 내다버렸다.

이들 쓰레기를 치우는 데만 국비와 지방비 282억원(행정대집행)이 들어갔다. 환경부는 행정대집행에 들어간 비용을 해당 업체에 구상권을 청구한다는 방침이지만 아직도 단돈 1원도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이 교수는 "폐기물은 이른바 '운동성'이 있어 지나치게 규제를 강화하면 아예 숨어버릴 수 있다"며 "다른 나라로 불법적으로 폐기물이 이동하는 문제도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플라스틱 다소비국가, 재생원료 확대 앞당겨야 = 순환경제사회 실현을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3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제5차 유엔환경총회에서 2024년까지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기 위해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협약 결의안이 채택됐다. 이 결의안은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위주에 국한되지 않고 전주기적인 관리로 확대했다는 게 의미가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플라스틱 소비량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유럽플라스틱제조자협회 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간 1인당 플라스틱 원료 사용량은 132kg(2015년)이다. 벨기에(170kg) 대만(141kg) 등과 함께 다소비 국가로 꼽힌다.

게다가 코로나19 등으로 폐플라스틱 발생량은 2018년 323만톤에서 2021년 492만톤(잠정치)으로 껑충 뛰었다. 지난해 10월 환경부는 2025년까지 폐플라스틱 발생량을 2021년 대비 20% 줄이겠다는 목표를 발표한 바 있다.

이를 위한 방안 중 하나로 투명폐페트병을 생수병 등 다시 페트병으로 사용하는 대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업체 한곳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투명폐페트병의 물리적 재생원료 사용 허가를 받은 상태다.

종전에는 재활용 페트로 식품용기를 만들려면 화학반응이나 가열 등의 과정을 거치거나 용기 중간층에 넣는 식으로 식품과 직접적으로 닿지 않도록 해야 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버려진 페트병을 잘게 잘라 세척해서 사용하는 물리적 재생 방식도 허용이 됐다.

식약처는 "그동안 매년 재생 페트원료 30여만톤이 대부분 산업용 자재(부직포·단열재 등)로 재활용되어 왔다"며 "이번 허가를 계기로 연간 최소 10만톤(약 30%)까지 식품용기로 재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분홍빛 전망을 내놨다.

◆환경부 "공공시설부터 적용, 해결책 찾을 터" = 하지만 업계에서는 만만치 않다는 분위기다. 원료 사용 승인을 받았을 뿐 이를 실제 제품에 쓰겠다고 나선 식음료기업은 아직 없다.

게다가 고질적인 투명폐페트 원료 확보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환경부와 식약처는 식품용기 안전성과 위생 등에 문제가 없도록 재활용 시설과 재생원료의 품질에 대한 기준을 만들었다. 투명페트병이 다른 플라스틱과 섞이지 않도록 수집·운반돼야 하고 선별 업체는 별도로 보관·압축·선별한 투명페트병만 사용해야 한다.

20일 한 회수선별업체 대표는 "환경부 기준에 따라 별도 시설에 투명폐페트를 선별하기 위해서는 시설을 증설할 수밖에 없는 데 건폐율 규제에 걸려 사실상 할 수가 없는 구조"라며 "지방자치단체 인허가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추가적으로 어떻게 재활용을 확대하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 별표9에 따르면 '바닥면 벽면 지붕 등을 갖춘 보관시설에 재활용가능자원을 보관해야 한다'. 문제는 회수선별업체들 상당수가 이미 건폐율 최대한도를 채워 시설을 만든 상태라는 점이다.

27일 환경부 관계자는 "업계 의견 수렴을 해서 지난해 말 지자체 공공시설부터 해당 제도를 도입하는 안으로 우선 대책을 마련했다"며 "이후 나타나는 여러 문제들이 있다면 보완을 해서 민간시설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해당 시행규칙은 모든 재활용 관련 시설들에 적용되는 기준이기 때문에 무조건 예외를 줄 수도 없다"며 "재활용 확대는 물론 위생 문제와 안전성 확보 등을 함께 가져갈 수 있도록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선형경제 & 순환경제 = 선형경제란 '자원채취-대량생산-폐기' 로 끝나는 종전 방식을 말한다. 반면 순환경제란 폐기로 끝나지 않고 다시 순환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이다.

생산-유통-소비-재사용·재활용 등 모든 과정에서 자원 사용과 폐기물 발생을 원천적으로 줄이는 게 목표다. 나아가 사용된 자원을 경제체계 안에서 계속 이용하는 지속가능한 경제체계를 추구한다.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에서는 제품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버려지는 자원의 순환망을 구축해 투입되는 자원과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친환경 경제 체계를 순환경제로 정의한다. 또한 순환이용을 사람의 생활이나 산업활동에서 사용된 물질 또는 물건을 다시 자원으로 재사용 및 재생이용하는 활동 등으로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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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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