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권 위임받았지만 승진 사유도 몰라 … 시·도지사에 승진심사 내용 보고 의무없어 '유명무실'

시행 2년째를 맞는 자치경찰제에 대한 현장 불만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지방시대를 표방한 현 정부 국정 기조에 발맞춰 자치경찰제 대수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30일 내일신문 취재에 따르면 자치경찰제가 반쪽 짜리라고 불리는 대표적 이유는 인사권에 있다. 책임은 지자체에 물으면서 권한은 여전히 국가경찰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현행 자치경찰제도상 시·도지사는 경감과 경위로의 승진 임용권을, 자치경찰위원회는 경사와 경장으로의 승진 임용권을 위임받아 행사하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이는 말뿐이다. 승진자를 결정하는 '보통승진심사위원회'는 경찰기관에만 둘 수 있다는 규정이 시·도와 자치경찰의 인사권 행사를 가로막는다. 이 때문에 서울시의 경우 매번 서울경찰청으로부터 승진자 명단만 통보받고 시장은 도장만 찍는다. 서울시장은 단순 결재자 역할만 하고 자치경찰위원회는 형식적인 의결만 거친다.

임용장 '명의'만 시·도지사 및 자치경찰위원회로 변경된 셈이다. 더구나 해당 임용행위가 잘못되면 그 책임은 임용권자가 져야 한다.


◆시·도지사, 임용장 명의만 빌려줘 = 시·도지사와 자치경찰위원회가 시정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자치경찰제 임용규정 제정 당시 경찰청과 서울경찰청에 승진심사 결과의 구체적 내용을 통보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 또한 현행법에 막혔다. 경찰공무원 승진임용 규정(제23조)은 보통승진심사위원회 결과 보고를 '경찰 기관의 장'에게만 할 수 있도록 못 박고 있다. 경찰청 등 국가경찰은 이를 근거로 시·도지사 및 시·도자치경찰위원회에 승진심사 내용을 보고할 의무가 없다는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시·도가 건네받는 자료는 승진자 숫자가 전부다.

국가경찰 측에선 승진심사위원회에 자치경찰이나 시·도 관계자가 포함된다고 반박하지만 이 또한 제도적 장애물에 걸려있다. 경찰공무원 승진임용 규정 제16조에 따르면 보통승진심사위원회는 5명 이상 7명 이하로 해당 경찰기관에서 근무하는 경찰공무원(경위 이상) 중에서 임명토록 돼있다. 자치경찰위원회는 그 가운데 2명을 추천할 수 있다.

얼핏보면 7명 중 2명을 추천할 수 있어 간접적이나마 승진임용권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치경찰 관계자들은 "각 경찰기관의 모든 승진심사위원회에 매번 경찰관 2명을 추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인사 정보가 없는 자치경찰로서는 해당 경찰기관 보직자 위주로 추천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자치경찰위원회는 심사대상이 되는 5배수 명단을 알 수도 없다. 현재 시·도 자치경찰위원회는 경찰 인사 시스템에 접속 자체가 안된다. 심사위원 추천을 통한 임용권 행사가 허울 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구대·파출소가 국가경찰 소속? = 치안과 교통, 방범 등 경찰 본연 임무가 원활하게 돌아간다면 경찰 인사 문제는 시민의 관심사가 아니다. 하지만 생활치안 분야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출동'은 다르다. 지구대와 파출소는 시민생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생활밀착형 치안기관이지만 소속이 국가경찰인 112치안종합상황실로 돼있다. 당연히 인사권도 시·도지사나 시·도 자치경찰위원회에 있지 않다.

자치경찰 관계자는 "지역순찰 등 업무성격을 감안해 수십년간 '생활안전과' 소속이던 지구대·파출소가 자치경찰제 시행을 앞두고 갑자기 112상황실로 소속이 변경됐다"고 말했다. 이태원참사 당시 자치경찰 역할에 대한 비판이 나오다가 수그러든 배경에도 이 같은 구조가 숨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시 자치경찰 관계자들 사이에선 "대규모 경찰력 동원은 고사하고 지구대·파출소 대한 지휘권도 없는 현 자치경찰제 실상이 여실히 드러난 순간"이라며 "책임을 피할 수 있어 다행이라기 보다 제도 현실이 창피한 수준"이라는 이야기가 회자된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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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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