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최상목 경제수석은 "취약계층 난방비 지원 확대를 위해 에너지바우처 지원과 가스요금 할인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올해 겨울 한시적으로 취약계층 117만6000가구에 한해 에너지바우처 지원 금액을 기존 15만2000원에서 30만4000원으로 올리고, 가스공사의 사회적 배려 대상자 160만가구에 대한 요금할인 폭도 2배로 늘린다는 것이다. 난방비 폭등에 민심이 들썩이자 뒤늦게 대책을 제시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대책으로 끝났다고 볼 수는 없다. 이번 겨울이 지나면 난방비 문제는 완화될 것이다. 그렇지만 뒤이어 가스요금 인상이 예고돼 있다. 전기료 등 다른 공공요금도 줄줄이 오를 예정이다. 또 취약계층만 어려운 것도 아니다. 일반 시민과 소상공인들에게도 큰 부담이다. 따라서 일시적 대책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단가공개보다 횡재세가 더 나을 수도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에서는 '횡재세'를 도입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7조5000억원 규모의 가계난방비 지원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추경예산 편성까지 요구했다. 정부여당의 주장대로 지출항목과 완급을 조정해서 난방비 지원재원을 마련할 수만 있다면 매우 훌륭한 일이다. 그러니 추경예산이 굳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 의지와는 별개로 횡재세는 검토해 볼만하다.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국제유가가 급등한 틈에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사들은 엄청난 이익을 내고 성과급 잔치까지 벌였다. 그들의 막대한 이익은 사실 반도체 자동차 바이오 등의 경우와도 다르다. 그저 우크라전쟁으로 인한 국제정세 불안과 국제유가 상승으로 인한 이득을 사실상 독식한 것이나 다름없다. 손쉬운 이자장사로 막대한 이익을 낸 은행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지금 횡재세를 걷자는 주장이 거세지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해당 기업과 금융사들이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나 다름없다. 횡재세는 이미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각국과 미국에서 도입했거나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횡재세를 시행하는 방법으로 법인세 손질을 우선 꼽을 수 있다. 아니면 현행 석유관리법을 활용할 수도 있다. 이 법의 18조에 석유수급과 석유가격 안정을 위해 '석유 수입·판매 부과금'을 징수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이 조항을 적용해 부담금을 거둔 적은 아직 없다. 그런데 에너지가격이 크게 오르고 시민과 자영업자들이 큰 어려움을 겪는 이때가 아니라면 언제 시행한단 말인가. 고대그리스의 철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했듯이 훌륭한 법을 두고도 활용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 완강하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26일 횡재세 도입 주장에 대해 "전혀 동의할 수 없고 검토하지도 않고 있다"고 못박았다. 추 부총리의 이런 강인한 반대 밑바닥에는 '자유시장경제'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듯하다.

그런데 횡재세보다 더 부담스런 일이 정유사들을 기다리고 있다. 기름값 도매단가 공개가 곧 시행될 전망이다. 다음달 초 국무조정실 규제개혁위원회를 거쳐 확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가격을 공개하는 것은 사실 더 수용하기 어렵다. 일종의 영업비밀을 내놓으라는 요구와 비슷하다. 횡재세는 일시적인 압박인 데 비해 가격공개는 반영구적이다. 시장경제의 원칙과 부합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소비자에게 유익한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다.

그렇기에 정부가 횡재세를 거부하는 반면 단가공개를 추진하는 것을 보면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된다. 그리고 이번에 단가공개가 시행되면 지금까지 사실상 금단의 울타리 안에 남아 있던 원가공개의 문이 열릴 가능성도 있다. 통신비나 대출이자 원가 등 다른 분야로 번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에너지가격 대란에 직면한 취약계층 공감하려는 자세가 중요

정유사들에게는 횡재세나 단가공개나 모두 거북할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둘다 반대하는 것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그러니 어느쪽이든 선택하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회공헌 형식을 빌려 취약층 난방비 부담을 경감시킬 대책을 앞장서 내놓는 것이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그게 장기적으로는 더 안정된 이익을 지켜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난방비 폭탄과 에너지가격 대란에 직면한 취약계층과 소상공인을 포함해 시민들의 어려움을 공감하려는 자세다.

차기태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