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국 확대로 칠레산 점유율 절반 이하 … 포도시장 판도 바꾼 샤인머스캣, 마구잡이 출하 소비자 신뢰 위기

내일신문은 FTA 교육홍보 지원사업으로 2022년 12월 '학교로 간 FTA' 사업을 진행했다. 'FTA 데이터를 활용한 통계 및 계량경제학 기초 실습'(FTA 데이터 교실)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수업에는 수도권 15개 고교, 총 450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수업 후 85개 과제 탐구보고서가 제출됐고, 이 중 1차 학교별 심사와 2차 서류평가, 3차 발표대회를 거쳐 수상 팀을 결정했다. 고등학생 수준의 탐구라 오류와 한계도 분명하지만 학생 눈을 통해 FTA 이후 농업 현안을 다시 살펴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2004년, 우리나라는 역사상 처음으로 칠레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다. 국산 포도와는 다른 과육이 크고 껍질째 먹을 수 있고 씨가 적은 레드글로브 같은 칠레산 포도가 식탁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칠레산 포도는 우리나라 포도농가에 구조조정을 가져왔다. 수많은 포도농가가 폐업하거나 재배 작물을 바꿨다. 재배면적은 급감했고 생산량도 곤두박질쳤다. FTA는 농민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진행됐고 고통을 안겨줬지만, 포도농가 스스로 제품의 품질을 높여 경쟁력을 갖추는 노력을 이끌기도 했다. 피할 수 없으면 맞서야 했다.

'FTA 데이터 교실' 탐구보고서 발표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서울 미림여고 학생들의 '칠레산 포도 수입과 그에 따른 국내 영향' 보고서에서 출발, 한-칠레 FTA 체결 20년을 앞둔 시점에 FTA가 포도 농가의 생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과정과 전망을 살펴봤다.

ICT스마트팜에서 자라고 있는 샤인머스캣. 사진 송산포도 팜스토리 제공


◆한-칠레 FTA로 국내 포도 생산량 급감 = 수입 포도가 밀려 들어오면서 우리나라 포도 재배면적은 매년 감소해왔다. 2000년 3만헥타아르(㏊)에 달했지만 한-칠레 FTA 직후인 2005년에는 대략 2만㏊로 줄었고, 2020년에는 1만3200㏊로 감소했다. 재배면적이 줄면서 생산량도 감소했다. 2000년에는 47만톤 이상 생산했지만 2015년 22만톤, 2020년 16만톤으로 1/3 수준으로 줄었다.

그 사이 외국산 포도의 수입량은 눈에 띄게 증가했다. 2000년 7921톤에 불과했던 포도 수입량은 2008년에는 3만톤, 2019년에는 7만톤으로 점점 확대됐다. 한-칠레 FTA 이후 2011년에는 페루, 2012년에는 미국과 차례로 FTA를 체결함으로써 포도 수입국이 늘어난 이유도 있었다. 이에 따라 2004년 이후 수입 포도의 80~90%를 차지하던 칠레산 포도의 점유율은 2022년에는 50% 아래로 떨어졌다. 그 자리를 페루와 미국, 호주산 포도가 메웠다. 2022년 기준으로 전체 수입 포도 중 국가별 비중은 칠레산 46%, 페루산 28%, 미국산 15%, 호주산 10%다.

한편 2020년부터 샤인머스캣 성장으로 포도 재배면적과 생산량 모두 확대되기 시작한 점은 눈여겨봐야 한다. 국내산 샤인머스캣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수입 청포도 수요가 감소해 포도 수입량도 지난해 4만톤으로 감소한 상황이다.

반면 수출량은 꾸준히 늘고 있다. 2015년까지 800톤 내외였으나 홍콩 베트남 등지로 샤인머스캣 수출이 늘며 2021년부터는 2000톤이 넘었다. 2020년에 접어들며 샤인머스캣은 국내 포도산업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하고 있다.


◆샤인머스캣, 포도 산업 판도 바꿨다 = 박서준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농업연구관은 "FTA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소비자가 선호하는 포도의 품종을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산 포도의 유입이 샤인머스캣과 같은 품종 개량을 도왔다는 얘기다. 샤인머스캣은 2006년 일본과수연구소에서 등록한 품종이지만 일본이 국제 품종 등록을 하지 않아 2012년 이후 로열티 없이 재배와 수출을 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샤인머스캣을 수출하는 나라는 일본과 우리나라뿐이다. 박 연구관은 "수입 포도가 들어와 우리나라도 외국산 포도에 적응하게 됐다"며 "기존의 씨가 많고 껍질과 과육이 분리되는 포도보다 씨가 없으며 달고 과육이 큰 유럽종 샤인머스캣이 인기를 끌었다"고 짚었다.

품종별 재배면적을 살펴보면 포도 품종의 대세가 바뀌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주로 재배하던 품종은 캠벨얼리(캠벨)였다. 2002년만 해도 재배면적의 74%에서 캠벨을 키웠고 거봉은 13%, 머스캣베일리에이(MBA)는 5%였다. 샤인머스캣이 처음 시장에 등장한 2017년만 해도 그 비중은 3.7%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5년 동안 급증해 2022년에는 전체 재배면적의 41.4%를 차지했다. 과거 주력 품종이었던 캠벨은 2017년 58%에서 2022년 32%로 줄어 샤인머스캣에 1위의 자리를 넘겨줬다.

샤인머스캣의 생산이 확대되면서 병충해를 줄이고 저온 장마 냉해 등의 기상재해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한 시설재배 포도의 재배면적과 생산량도 늘었다. 시설재배 포도란 비닐하우스, 유리 온실 등의 시설 안에서 키우는 포도를 말하는데 노지 재배 포도보다 조기 출하가 가능해 소득에 도움이 된다. 비싸게 팔 수 있고 시설에서 재배하니 날씨와 환경 영향을 덜 받아 당도를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포도농가 피해 최소화 노력 기울여야 = 전문가들은 샤인머스캣의 품질 유지가 앞으로 우리나라 포도 산업에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2022년에 반입량이 30%나 늘어난 샤인머스캣이 당도나 포도알 탄력성, 껍질 두께 측면에서 품질 관리가 미흡했던 점은 우려스럽다.

경북 김천에서 포도 농사를 하는 김경환 농부는 "샤인머스캣이 인기를 끌고 돈이 되니 사람들이 앞다퉈 뛰어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포도 농사를 짓는 농부의 연령대가 높은 편인데 이분들은 농사는 짓지만, 힘에 부쳐 직접 출하를 하지 못한다. 결국 싼 값에 상인들에게 넘기고 상인들은 인력을 사 포도를 따도록 한다. 이때 잘 익은 것, 익지 않은 것 구분 없이 마구 따니 전반적으로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상황을 전했다.

박 연구관은 "수십 년간 지어온 캠벨 품질은 아주 좋지만 샤인머스캣은 아직 갈 길이 멀다"며 "품질이 받쳐주지 않으면 소비자에게 잊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샤인머스캣은 2020년까지만 해도 가격이 ㎏당 1만원을 넘을 정도로 높아 캠벨이나 거봉이 넘볼 수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품질이 많이 떨어져 가격이 하락했고 수출량도 줄었다. 박 연구관은 "보통 300평당 2톤 이내로 수량을 맞춰야 하는데 4톤이 나오게 한다"며 "품질 우선이 아니라 생산량 중심으로 가는 문제를 해결해야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우리 포도 농가가 살아남는 방법은 신품종 개발, 고품질 포도 생산이다. 문한필 전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소비자가 선호하는 새롭고 차별성 있는 포도를 생산해야 한다"며 "사실 FTA가 농가들을 힘들게 했지만 안주하지 않고 경쟁력을 높여 고품질의 상품을 개발하고 육성하는 노력을 하게 했다"고 FTA에 양면이 있음을 설명했다.

FTA는 분명 농가들이 원해서 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제조업을 살리기 위해서 진행한 것이라 농업 부문에서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시장개방이라는 수단을 통해 강제로 진행된 구조조정이었기 때문이다. 문 교수는 "정부는 농가 상황을 살펴 피해 보전이나 폐업지원도 해야 한다"며 "피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피해를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면을 살려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제작지원 2022년 FTA 분야 교육홍보사업

[탐구보고서 팩트 체크!]
포도 농가 생산량 감소, 한-칠레 FTA 때문일까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 지 10년 후인 2014년 11월과 다음해 4월 사이에 수입하는 칠레 포도의 관세가 완전히 없어졌다. 단 우리나라 포도가 출하되는 5~10월 사이에는 45%의 계절관세를 유지한다. 칠레산 포도 수입은 11~4월 사이에 집중되므로 우리나라 포도 농가에 직접적인 피해를 준다고 볼 수 없다는 지적이 있다. 문한필 전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오히려 관세가 없는 시기에 들어오는 외국산 포도 때문에 우리나라의 다른 과일이 피해를 본다"며 "포도 생산량이 줄어드는 것은 포도 소비가 줄어드는 요인이 더 크다"고 말한다. 한-칠레 FTA 이후 여러 나라와의 FTA 체결로 다양한 수입 과일이 들어왔고 대체 과일 선택권이 넓어져 포도 생산량이 줄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1인당 국내산 포도 연간 소비량은 2000년 이후 줄어드는 추세다. 2010년 이후로 4kg대를 유지했지만, 최근에는 3kg대로 하락했다.

조진경 리포터 jinjing87@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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