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적인 한일정상회담에 대한 국민비판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기업의 배상책임을 분명히 한 대법원판결을 무시하고, '제3자 변제'를 거부하는 피해자 권리마저 외면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독주에 국민 자존심은 무너질 대로 무너졌다.

시민사회단체 등 각계에서 비판 시국성명을 발표하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동학·천도교 단체들이 굴종적 합의안 폐기를 촉구하는 등 종교계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일본 초등 교과서 왜곡 주장 더 강화, 제대로 뒤통수 맞은 꼴

박 진 외교부장관은 물컵의 절반 이상이 찼다며 일본의 성의있는 호응을 기대한다고 둘러댔지만 국가 간 외교에선 선제적 양보가 통하지 않는다. 냉정한 힘의 논리가 적용될 뿐이다. 상대가 약세를 보일 때 더욱 밀어붙여 해묵은 숙제들까지 해결하려 드는 것이 역사적 경험칙이다. 기시다 일본 총리는 우리 정부가 간청하다시피 한 '사죄와 반성' 언급을 끝내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존 '위안부 합의'를 성실히 이행하라고 촉구하는가 하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양해와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재개까지 요구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정부는 28일 문부과학성의 검정심의를 통과한 초등학교 교과서의 독도 관련 서술에서 '다케시마(竹島)는 일본의 고유영토'이며 '한국이 불법점거 중'이란 왜곡된 주장을 더 강화했다. 강제동원 서술에서도 '강제' 의미를 희석시키는 표현을 썼다.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꼴이다.

윤 대통령의 '굴욕외교' 내용 중 안보문제에 국한해 당장 우려되는 점들을 짚어보자. 정부는 21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을 완전히 정상화하는 조치를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우리로선 지소미아의 주목적이 북한 미사일 조기탐지·방어에 있지만 미국이나 일본 입장에선 동북아에서 대중국 견제와 효율적인 미사일방어체계 구축에 더 방점이 찍힌다.

사실 지소미아는 우리가 쥐고 있는 유리한 카드다. 지구는 공처럼 둥글기 때문에 미사일이 발사되더라도 목표가 멀면 아무리 고성능 레이더라 해도 일정 고도 이하의 목표물을 정확히 탐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북한이 미사일을 쏠 때 발사 원점에서 초기부터 탐지하는 능력은 한국이 월등히 앞선다. 날아오는 미사일의 종류나 항로, 궤적 등을 몇초 또는 몇분 빨리 파악하느냐에 따라 요격가능 여부가 판가름 난다.

한일 지소미아는 사후통보 형태로 유지돼 왔다. 한미일 정상은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회담 때 미사일 경보정보의 실시간 공유에 합의했다. 이를 논의할 차관보급 안보회의(DTT)가 조만간 열릴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군사정보 수집능력과 축적된 기술이 고스란히 노출된다.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유리한 지렛대를 지레 포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삼각 공조체제가 진전되면 미사일방어를 통합운영할 미사일방어(MD)체계로 발전할 개연성이 커진다. 미국이 5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한미일 확장억제 협의체' 창설을 타진할 것이란 외신 보도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긴밀한 한미일 군사공조를 통해 압도적 힘을 바탕으로 '진짜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처럼 강조한다. 그러나 평화를 향한 대화노력이 배제된 '외곬 강경책'이 과연 평화를 보장할런지 의문이다. 섣부른 조급증과 자신감 결여에서 나온 '미국 줄서기' 한미일 군사공조 강화는 결국 우리가 중국이나 러시아, 북한과의 최전선 대척점에 섬으로써 유사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혹독하게 공격받을 위험성을 높이는 것이다.

평화 노력없이 조급증 앞선 '위험한 질주' 멈춰 세워야

윤석열정부는 올해 한미연합군사훈련 '자유의 방패'를 최대규모 최고강도로 실시했고, 양국 해병대의 연합상륙훈련인 '쌍용'도 사단급으로 높여 현재 진행 중이다. 미국의 핵항공모함 니미츠호도 부산에 입항했다. 북한은 어느 때보다 강도 높은 미사일 도발로 맞섰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협적인 것이 '핵무인수중공격정' 수중폭발 시험과 전략순항미사일 핵탄두 모의공중폭발시험이다. 사실상 사전탐지가 어려운 발사능력을 과시함으로써 상대방의 선제타격 의지를 미리 차단하겠다는 속셈이다. 북한은 27일 전술핵탄두 '화산-31'을 전격 공개하는 등 핵무력 과시를 이어갔다.

한반도에 그 어느 때보다 군사적 긴장이 높아져 우발적 충돌로 인한 확전을 우려할 지경에 이르렀다. 평화를 절실히 갈망하는 마음들이 한데 모여 '위험한 질주'를 멈춰 세워야 한다.

이원섭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