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법제실서 의견 제시했지만 본회의 의결 못해

"의회 민주주의·권력분립 원칙 훼손 될 우려 증가"

"미국·영국·독일 의회, 법규명령 사전·후 승인 권한"

윤석열정부의 '시행령 국정운영'이 도마위에 올랐다. 한동훈 법무부장관과 검찰들의 '검수완박법'(검찰 수사 완전박탈법, 검찰청법·행정소송법)에 대한 국회 상대 권한쟁의 심판이 각하되거나 기각되면서 검찰수사 범위를 확대한 시행령이 입법취지에서 벗어났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입법 취지에서 벗어난 하위법의 위법사항을 고치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법의 취지에 맞지 않거나 위임근거도 없이 만들어진 행정입법에 대해 국회에서 전혀 손을 못 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임위 의결, 본회의 의결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집권여당의 반발 등으로 국회의 '위법 시행령 통제'가 사실상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형두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 28일 국회에서 김형두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백승렬 기자


29일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21대 국회 상임위에서 국회법에 따라 행정입법 분석과 평가를 의뢰해 국회 사무처 법제실에서 평가한 결과 194건의 위법사항이 발견됐다.

상위 법률의 취지나 내용과 맞지 않는 행정입법이 무려 77건에 달했다. 법령 용어, 형식, 체계 등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게 14건, 행정부가 시행령 등을 만들지 않은 행정입법 부작위가 13건이었다. 포괄적으로 재위임한 게 12건, 위임 근거도 없이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한 행정입법이 11건이었다.

하지만 상임위에 보고된 '위법 행정입법'들은 상임위와 본회의 표결을 거치지 않고 사실상 사장되고 있다.

법제실은 "국회사무처는 행정입법 검토 실효성 제고를 위해 정부가 상임위원회에 제출한 제·개정 행정입법에 대해 상임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의 분석·평가 의뢰에 따라 법제실에서 이를 검토하고 그 결과를 의뢰자(수석전문위원)에게 송부하고 있다"며 "제21대 국회에서 본회의 의결 또는 상임위원회 의결을 통해 정부 또는 소관 중앙행정기관의 장에 행정입법에 대한 검토의견을 통보한 사례는 없다"고 했다.

국회 의결로 행정입법에 대한 검토결과를 행정부에 전달하면 행정부는 시행 계획과 결과를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국회 사무처 핵심관계자는 "여야가 대치국면일 경우엔 (행정부에 부담이 되는) 행정입법에 대한 위법 의견을 합의하는 절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서 "21대 국회에서 단 한 건도 행정부에 위법 의견을 보내지 못한 이유"라고 했다.


◆20대 국회에선 행정입법 중 110건 위법 확인 =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위법 시행령 중 2건에 대해 상임위 의결만으로 시정을 요구한 바 있다. 국회 법제실은 "20대 국회에서는 상임위로부터 모두 4409건의 행정입법 분석을 의뢰받아 이중 101건(2.3%)의 행정입법(위법 지적 건수는 110건)에 대해 상위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의견 등을 제시했으며 이중 2건에 대해 상임위에서 심사, 의결을 통해 행정입법이 위법하다는 의견을 소관부처에 통보했다"고 했다. 2017년 11월 20일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통보한 기초연구진흥 및 기술개발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 개정령에 대해서는 법령 체계 부적합 판정을 내렸고 결국 법률을 고쳤다. 정보통신기반 보호법 개정령은 조문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시행령 개정이 이뤄졌다.

국회 법사위 소속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전날 라디오 인터뷰에 나와 "시행령을 지금 무력화하는 방법은 수사 받는 당사자가 재판 과정에서 시행령의 위법 위헌을 따지는 방법이 하나 있고요. 그 다음에 국회의원이 입법권 침해를 이유로 헌재에 권한 쟁의를 청구하는 방법, 또 국회법 98조 2에 따라서 법사위에서 소집요구 해서 시행령이 위법한지를 검토하는 게 있다"며 "지금 법사위원장이 국민의힘(소속)이기 때문에 저희가 노력은 하겠지만 상임위에서 의결을 통해서 의장께 보고하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회법을 개정해서 법률을 위배하는 시행령에 대해서 시정조치를 국회가 강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행정부 내부통제, 소극적이고 객관성 부족" = 국회 사무처 법제실은 "현재 행정의 복합화, 전문화로 많은 사항이 행정부로 위임되면서 행정입법으로 국민의 권익이 부당하게 침해되거나 의회민주주의와 권력분립의 원칙이 훼손될 우려가 증가하고 있다"며 "행정입법 제정과 개정 주체인 행정부에 의한 내부적 통제는 행정입법의 위법성 판단에 소극적이고 객관성이 부족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이어 "미국 영국 독일 등 외국의 입법례에서는 법규명령의 효력 발생 전에 의회의 동의 또는 승인을 받도록 하거나 일단 성립돼 효력을 갖고 있는 법규명령의 효력을 사후적으로 소멸시키는 권한을 의회에 유보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한편 국회 사무처는 행정입법 분석과 평가가 강화하기 위해 "상시적인 행정입법 분석과 평가를 실시하고 전문가 자문의뢰를 활성화하겠다"며 "'행정입법 분석·평가 이론과 실무' 전면 개정을 통해 행정입법 위법성 검토기준을 준비하고 분석사례를 공유하겠다"고 했다. 또 행정부에 분기별로 행정입법 처리결과에 대한 자료제출을 요청할 계획이다. 그러면서 '행정입법분석과'를 신설해 역량 강화에 나서기로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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