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선제양보하며 "호응" 기대했지만 … 모든 초등 교과서 "독도 일본 땅"

내년부터 일본 초등학교 6학년이 사용할 교과서에 조선인 징병을 포함해 강제동원과 관련한 기술이 강제성을 흐리는 방향으로 변경됐다. 초등학교 3~6학년용 교과서에선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이고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부당한 주장이 더 강해졌다. 임진왜란부터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문제 등 일제강점기까지 일본의 가해 역사를 희석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 동의 없이 강제동원 해법에 대한 '선제적 양보'로 일본에 면죄부를 주며 '성의 있는 호응'을 기대한다고 해왔지만 일본은 지난 식민지배와 침략의 역사를 '지우고 묻어'버리려는 속내를 되레 더 노골화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일본 정부는 1998년 10월에 발표된 일한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로서 계승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총리의 지난 16일 한일정상회담 발언을 들며 "일본은 이미 수십차례 사과했다"고 강조한 점이 무색해졌다. 윤 정부의 대일외교가 "일방적으로 퍼주고 뒤통수를 맞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진 형국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28일 2024년부터 사용하게 될 초등학교 사회과 교과서 등의 검정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를 분석한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의 검토 자료를 보면, 점유율 1위인 도쿄서적 6학년 사회교과서는 태평양전쟁 시 조선인 징병에 대한 기술 중 "일본군의 병사로서 징병됐다"란 표현을 "일본군의 병사로서 참가하게 되고, 후에 징병제가 취해졌다"로 바꾸었다. 특히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이란 사진설명 앞에 "지원해서"란 문구를 추가해 조선인들이 자발적으로 전쟁에 나간 것처럼 표현했다.

점유율 2위인 교육출판 교과서는 "일본군 병사로 징병해 전쟁터에 내보냈다"는 기술에서 "징병해"를 아예 삭제했다.

도쿄서적은 조선인 강제노역 동원에 대한 기술에서 "강제적으로 끌려와서"라는 표현을 "강제적으로 동원되어"로 바꿨다. '연행'이란 인상을 주기 않기 위해서다.

반면,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일본의 부당한 영토 주장은 모든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고, 기술 또한 자세해졌다.

특히 독도를 '불법 점거'라고 서술한 건 눈여겨볼 대목이다. 도쿄서적은 2019년 초등학교 3∼6학년용 지도교과서 검정본에서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 영토이지만 한국에 점거돼 일본이 항의하고 있다"고 명시했으나 올해는 '불법'을 추가했다.

'가해자 일본'의 역사를 지우려는 의도는 식민 지배뿐 아니라 임진왜란과 간토대학살 등에 대한 기술에서도 드러났다. 문교출판 사회교과서의 2019년 판에는 "(임진왜란으로) 조선의 국토가 황폐해지고 많은 조선인이 희생됐다"는 내용이 있었으나 이번엔 삭제됐다. 오히려 "히데요시는 중국을 따르고 있던 조선에 대군을 보냈다. 그러나 조선에서 전쟁이 잘 진행되지 않아 큰 피해가 나왔다"며 일본이 큰 피해를 입은 것처럼 기술했다.

올해 9월 1일 100년을 맞는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 민간인 학살에 대한 기술도 약화됐다. 문교출판 2019년 판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푼다는 잘못된 소문이 퍼져 많은 조선인이 살해됐다"는 기술이 있었으나 이번엔 삭제됐다. 도쿄서적과 교육출판은 해당 기술을 유지했다.

정부는 이날 "강제동원 관련 서술이 강제성을 희석하는 방향으로 변경된 것에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며 주한 일본대사관 대사대리인 구마가이 나오키 총괄공사를 초치해 항의했지만, 윤 정부의 '선제적 양보'에 기가 살아난 일본 정부의 태도가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미 윤 대통령이 굴욕외교 비판을 무릅쓰고 강제동원 관련 '제3자 변제'로 한일정상회담의 길을 열었지만, 일본측은 '사죄와 반성' 없이 버텼고 오히려 기존 '위안부 합의'를 성실히 이행하라거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양해와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의 재개까지 요구하는 고압적 자세를 보여 왔다.

일본의 이번 교과서 왜곡이 이런 흐름 위에서 강행됐다는 비판이 거세질 전망이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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