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이준석 공천 여부 분분 … 영남권·강남권 물갈이설

윤 대통령, '물갈이'로 당 면모 바꾸는 '정치개혁' 단행 관측

2008년 친박학살·2016년 친유학살 … "내리꽂기 하면 역풍"

국민의힘에는 비주류를 겨냥한 공천학살의 기억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총선 때마다 반복됐기 때문이다. 공천학살의 결과는 대부분 좋지 않았다. 역풍이 거셌다.

대화하는 윤재옥 원내대표와 이철규 사무총장 |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와 이철규 사무총장이 26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그럼에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공천학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검사·친윤에게 공천을 몰아주기 위해선 비주류를 밀어낼 수밖에 없을 것이란 얘기다.

◆공천공포 드러난 '태영호 녹취록' = 3.8 전당대회에서 졸지에 비윤으로 전락한 안철수 의원은 25일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서 "현역의원이 지역구를 함부로 옮기는 것은 지역주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고 말했다. 내년 총선에서도 현재 지역구인 경기 성남분당갑에서 재출마하겠다는 의지다. 여권 일각에서 성남분당갑에 안 의원 대신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을 공천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자 이를 반박한 것.

여권 주류에서는 안 의원을 낙천시키거나 험지로 보내야한다는 주장이 분분하다. 성남분당갑에 재공천해야한다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부총질 대표'로 낙인 찍은 이준석 전 대표의 공천도 불확실하다. 친윤에서 당 대표 임기도 인정하지 않은 마당에 공천을 용인할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다. 이 전 대표와 가까운 허은아 의원은 지난해말 서울 동대문을 당협위원장 자리를 놓고 친윤 김경진 전 의원과 경합하다가 뺏겼다. 허 의원은 SNS를 통해 "친윤 아니면 다 나가라는 것이냐"며 반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비주류로 꼽히는 김 웅 의원 지역구(서울 송파갑)에는 친윤 의원이 일찌감치 진을 치고 공천을 바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천학살의 공포는 영남권과 강남권 의원들에게도 엄습한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물갈이 공천'을 통해 여당의 면모를 바꾸고 싶어한다는 관측이다. 물갈이 공천을 일종의 '정치개혁' 차원으로 해석한다는 것. 대선 직전에야 입당한 자신과 친분이 두터운 의원이 많지 않기 때문에 물갈이 부담도 적은 편이다. 윤 대통령이 '공천=당선'인 영남권과 강남권에서 집중적으로 물갈이 욕심을 낼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다. 영남권과 강남권에서 친윤핵심으로 꼽히지 않는 의원들의 공포가 커지는 이유다.

태영호 의원과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 모두 부인했지만, 소위 '태영호 녹취록'에서는 강남갑이 지역구인 태 의원의 공천 공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태 의원은 "당신이 공천 문제 때문에 신경 쓴다고 하는데 … 대통령한테 보고할 때 '오늘 이렇게 했습니다'라고 정상적으로 들어가면 공천 문제 그거 신경 쓸 필요도 없어"라는 이 수석의 발언을 보좌진에게 전했다. 친윤핵심이 아닌 태 의원은 자신의 강남갑 공천 때문에 속앓이 중인 것이다.

영남권 초선의원은 25일 "과거 정권도 그랬지만 윤석열정부에서도 TK나 PK는 집중적인 물갈이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용산(대통령실)이 낙하산을 보내려면 당선 가능성이 높은 곳을 택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총선 때마다 반복되는 공천학살 = 국민의힘 전신 정당들은 총선 때마다 물갈이로 불리는 공천학살을 자행해왔다. 공천학살은 주로 비주류를 겨냥해 이뤄졌다.

2008년 이명박정권 출범 직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청와대와 친이는 친박을 겨냥한 공천학살을 단행했다. 박근혜 의원은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고 한탄했다. 친박을 내쫓은 자리에는 친이인사들을 공천했다. 결국 한나라당은 153석으로 과반을 겨우 넘겼지만 '상처 뿐인 영광'이었다. 공천학살된 친박인사들이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로 출전해 26명이나 당선된 것이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청와대와 친박이 비주류를 겨냥한 공천학살을 저질렀다. 친이와 친유(유승민) 인사들이 공천에서 무더기로 배제됐다. 그 자리에는 친박핵심들이 내려갔다. 공천파동 끝에 새누리당은 139석이란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안 의원은 앞서 인터뷰에서 "원칙적으로 대통령실이 공천 개입하는 건 법에 위배된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 정서다. 내리꽂기식으로 가면 오히려 역풍이 불어서 선거에 실패한 사례들이 많다"고 말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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