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탁 신한대 교수, 언론인

서울의 새벽을 혼돈의 도가니로 몰고 간 주범은 놀랍게도 북한 미사일이 아니었다. 관계 당국의 사후 해명을 종합해 보면 북한이 서해 백령도 방향으로 발사체를 발사한 5월 31일 새벽, 서울지역에 긴급 사이렌이 울려야 할 합당한 이유는 없었다. 경계경보는 백령도와 대청도에 국한해 발령됐는데 뜻하지 않게 서울 전역으로 확대 전파된 게 사건의 전말이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윤석열정부를 향해 "쌍팔년도식 제2의 북풍 조작" "전쟁마케팅으로 지지율 높이려는 의도" 운운하며 목청을 높였지만 누가 보아도 합리적 의혹 제기는 아니다. 보수 진영에선 "경위야 어떻든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의 심각한 안보불감증을 확인했다는 사실"이라며 열을 올리지만 이 또한 본질에서 다소 벗어난 이야기다. 언론의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사태의 핵심은 공무원의 글 읽고 쓸 줄 아는 능력, 즉 리터러시(literacy)에 있다.

"현재 시각, 백령면 대청면에 실제 경계경보 발령. 경보 미수신 지역은 자체적으로 실제 경계경보를 발령." 행정안전부가 군의 요청을 받아 전국 16개 시도에 보낸 방송 지령 문구다. 여기서 경보 미수신 지역은 어디를 말하는 걸까. 경계경보가 백령면 대청면에 발령됐다는 앞 문장이 있으니, 이들 지역 안에서 경보를 수신하지 못한 지역을 가리킨다는 게 행안부 설명이다. 경보를 수신하지 못했는데 긴급상황을 어떻게 알고 자체적으로 발령할 수 있는지 우선 의문이 든다. 그래도 서울을 뺀 15개 시도 어디에서도 경보를 발령한 사례가 없는 걸 보면 행안부 해석이 다수설 같기는 하다.

독해력도 문제지만 모호한 표현이 더 문제

하지만 문장을 두세번 곱씹어 읽어보면 다르게 해석될 여지도 충분히 있다. 앞의 문장과 뒤의 문장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령을 받은 지자체 입장에서 "백령도 일원에 실제 경보가 발령됐는데, 그 경보를 못 듣는 지역이 있나 보다"하고 '남의 일'로 여길 수도 있지만, "실제 경보가 발령됐다는데 우리 지역에서는 듣지 못했으니 빨리 자체 발령 해야겠다"고 '우리 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서울시가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위급재난문자를 보낸 것은 '우리 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행안부는 서울시가 문제의 지령을 오독(誤讀)했다는 입장이다. 공무원이 한국어 독해를 잘못했다는 것이다. 그게 한심스럽다고 여겼는지 행안부는 "서울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 사항임을 알려드림"이라고 시민들에게 직접 문자를 보냈다. 언론으로 치면 오보를 낸 언론이 해야 할 '정정보도'를 제3의 기관이 대신한 셈이다. 자존심이 한껏 상했을 서울시는 이에 질세라 "경계경보가 해제됐다"는 문자를 자체적으로 발송했다. 앞서 행안부에서 낸 '정정보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개 사람들은 문자가 날아오면 내용에 주목할 뿐 발송 주체를 주의깊게 보지는 않는다. 행안부와 서울시가 감정섞인 문자경쟁을 벌이는 동안 시민들은 적의 공격이 예상된다는 경계경보를 받았다가, 그게 오발령이라는, 아니 해제되었다는, 이해할 수 없고 짜증스러운 메시지를 받게 된 것이다.

사태의 발단이 서울시의 오독에서 비롯됐다는 행안부 주장에 동의한다 해도 독해력 테스트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처럼 모호한 표현을 사용한 걸까.

서울시가 보낸 위급재난문자도 글쓰기 차원에서 보면 낙제점이다. 여기에는 다짜고짜 '대피할 준비하라' '우선 대피하라'고만 할 뿐 무슨 일이 났으니 어떻게 하라는 식의 구체적 지침이 없다. 비슷한 시각 일본정부에서 보낸 재난 문자가 "북한에서 미사일이 발사된 것으로 보이니 건물안 또는 지하로 대피하라"고 쓰여 있는 것과 비교된다.

일반인 눈높이 안맞는 용어 늘려 있어

행정용어는 알기 쉽게 쓰이고, 의문의 여지없이 읽혀야 한다. 특정 집단만 아는 용어를 사용해 혼동의 여지를 주거나, 일상에서 쓰이는 뜻과는 다른 용도로 사용해 혼선을 초래해서는 곤란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가 점검하고 강화해야 할 것은 공무원의 소통역량, 그중 기본이 되는 리터러시 역량이다. 재난문자에 쓰이는 문구는 아마 이번 기회에 바로잡히겠지만, 자동제세동기(自動除細動器) 피양로(避讓路), 단차주의(段差注意) 같은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요령부득인 용어와 표현들은 우리 주변에 여전히 널려 있다.

이종탁 신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