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거래소 몸값 추락 … FIU(금융정보분석원) 조치에 코인마켓(코인 거래만 지원하는 거래소들) '패닉'
한빗코 '원화마켓 진입 실패' 업계 전체에 파장 … 금융당국 '불수리 요건' 확대
코인업계 "법에 없는 요건 적용해 불수리" … FIU "사실상 인허가 해당, 재량권"
'더 이상 원화마켓 진입 어렵다'는 분위기 확산 … 거래소들 매각도 어려워져
비트코인이 최근 5000만원까지 상승하는 등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승인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살아나고 있지만 국내 코인거래소 시장은 대대적인 구조조정 상황에 직면했다.
코인마켓(코인 간 거래만 지원) 거래소인 한빗코가 원화마켓(원화와 코인간 거래 지원) 거래소 시장 진입에 실패하면서 코인마켓 거래소들이 패닉에 빠졌다. 현재 원화마켓은 5개 거래소(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를 통해서만 거래가 가능하고 나머지 32개 거래소는 코인마켓을 지원하고 있다. 코인마켓 거래소들은 원화마켓 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이 이달 초 한빗코의 간상자산사업자 변경신고를 불수리하면서 '더 이상 원화마켓 진입이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코인마켓 거래소들이 원화마켓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사실상 수익을 내기 어려워서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20일 코인마켓 거래소 관계자는 "예전에는 1000억원에도 팔지 않았던 거래소들이 20억~30억원에도 팔리지 않는 상황이 됐다"며 "원화마켓 진입만 바라보던 거래소들이 금융당국의 한빗코 불수리 처분을 보고 사업을 접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한빗코 불수리 처분 논란 = 티사이언티픽(구 옴니텔)은 지난해 4월 한빗코를 인수한 이후 약 400억원을 투입해 40명 이상의 전문 인력을 채용하고 자금세탁방지(AML)시스템을 비롯한 거래소 전반의 역량을 강화했다. 올해 6월에는 광주은행으로부터 실명확인 입출금계정(실명계좌)을 확보했다.
코인마켓 거래소들이 가장 넘기 힘든 벽으로 꼽히던 은행의 실명계좌 확보를 이뤄내면서 원화마켓 문턱을 넘기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금융정보분석원(FIU)은 한빗코에 대한 제재(과태료 19억9420만원, 임직원 징계) 등을 이유로 불수리 처분을 내렸다. FIU의 불수리 처분 사유를 보면 △특정금융정보법상(특금법) 다수의 자금세탁행위 등 방지의무 위반 △자금세탁행위 등 방지 체계의 구축 및 운영능력 미흡 △범죄행위 예방 및 건전하고 투명한 금융거래 질서 확립 필요성 고려 등 다수의 불수리 사유 존재 등이다.
이 같은 처분에 대해 코인업계에서는 "변경 신고에 대한 불수리 요건은 특금법상 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FIU는 법상 정하고 있는 요건 외의 이유를 들어 불수리 처분을 했다"며 "이러한 처분행위에 대해 마땅한 법적 근거를 찾기 힘들다"는 문제제기가 이어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FIU가 불수리 요건을 과도하게 확대 적용했다는 것이다.
현행 특금법은 불수리 요건에 대해 △정보보호 관리체계 인증이 유효한지 △은행으로부터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발급을 받았는지 △사업자의 임원 등이 금융관련 법률 위반 결격사유가 있는지 △사업자가 신고 또는 변경신고가 말소되고 5년이 지나지 않았는지 등으로 명시하고 있다.
◆금융당국 재량권 어디까지? = 한빗코는 "가상자산사업자의 신고는 특금법상 불수리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FIU 재량의 여지가 없이 반드시 수리해야 되는 기속행위에 속한다"는 의견을 복수의 법무법인으로부터 받았다. 수리 요건을 모두 충족했는데도 불구하고 '부적절 영업활동이 우려된다'는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신고 수리 여부를 결정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FIU 관계자는 "사실상 인허가에 가까운 신고 수리·불수리 사안에 대해 행정청의 재량권이 존재한다"며 "법원에서도 행정청의 재량권을 인정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빗코는 FIU 제재조치 대상이 된 문제점들 모두 대주주 변경 이전에 벌어졌던 사안이고 대주주 변경 이후 전수조사를 거쳐 잘못을 바로잡았음에도 불구하고 FIU가 '원죄'를 이유로 불수리를 한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또 징계를 받은 직원 역시 대주주 변경 이후 한빗코에 합류해 오히려 문제를 수습했는데도 해당 직책에 있었다는 이유로 제재를 받아 억울하다는 점을 호소하고 있다.
FIU 관계자는 "시장에 신뢰를 쌓고 안전성이 검증된 거래소들이 원화마켓에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며 "거래소를 검증할 1차 관문은 은행인데, 이번 한빗코 불수리 건은 1차 방어선인 은행이 사실상 무너진 것"이라고 말했다.
한빗코는 법정 대응을 검토하고 있지만 실제 소송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금융당국이 대주주 변경 이전에 발생한 문제까지 사실상 불수리 요건으로 삼은 만큼 한빗코는 사업을 접을 가능성이 있다. 매각을 추진하더라도 인수자가 나타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코인거래소 시장에 진출하려는 신규 사업자의 경우 기존 거래소를 인수해 과거 리스크를 안고 가기 보다는 새로 설립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점에서 기존 거래소들의 몸값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코인마켓 거래소들이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 발급 계약을 체결하는 것도 한층 어려워질 전망이다. FIU가 검증 강화 필요성을 언급한 만큼 한빗코 이후 한동안 은행권의 추가 실명계좌 발급 계약이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