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구단 60개, 지역에 밀착해 주민과 호흡 … '지방살리기' 국정과제에도 부합

최근 한국 축구팬과 전문가들 가운데 한일 국가대표팀의 수준 차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얼마 전 일본 대표팀이 지난해 월드컵에 이어 독일을 대파하는 등 압도적 실력을 보여준 데 반해, 한국 대표팀은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일관하고 있어서다.

일본 축구가 빠르게 성장하는 데는 우수한 선수가 유럽 등 선진 축구리그에 다수 진출하는 점도 있지만, 올해 30년을 맞는 프로축구리그(J리그)의 활성화도 한몫한다. 특히 J리그는 지역사회와 밀착해 국가적 과제인 '지역소멸 방지'와 '지역살리기' 전선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다양한 지역사회 공헌, 연간 2만회 이상

지난 4월 J3리그 '후쿠시마유나이티드FC' 선수 10여명은 지역의 한 농가에서 소의 배설물을 옮기고 2000㎡ 밭에 200포대의 비료를 1시간 동안 뿌렸다. 이 구단은 2014년부터 이같은 활동을 시작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영향으로 전국적인 판로가 막힌 농가에 대한 지원을 고민하면서 나온 결론이다.

구단은 현재 지역농가와 연계해 6개의 과(課)를 두고 선수가 직접 책임을 맡아 6종류의 농작물을 농민과 함께 재배하고 있다. 선수들은 연간 40일 정도 짬을 내 작물 재배에 참여한다. 지역 농업생산법인 에가와 마사미치 대표는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농민들에게 우리지역의 축구팀 매력에 대해 널리 전하고, 선수들은 후쿠시마산 농산물의 우수성을 전국의 축구팬에게 선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비슷한 활동이 지역내 프로구단과 연계한 이른바 '응원쌀' 판매다. 일본농업신문에 따르면 우라와레즈와 가고시마 안트레스 등 J리그 18개 구단이 지역내 대표 쌀상품에 구단의 상징마크 등을 새겨 판매하는 등 상생을 모색하고 있다.

후쿠시마현 인근 야마가타현을 본거지로 하는 J2리그 '몬테디오 야마가타'는 지난해 여름 지역내 고등학생을 상대로 마케팅 강좌를 열었다. 강좌에 참여한 일부 고교생은 지역에서 1000명의 학생을 모아 축구경기 관전을 기획하고 실천했다. 젊은 세대가 고교 졸업과 함께 지역을 떠나 대도시로 유출되는 것을 줄이기 위해 내 고장의 매력과 자긍심을 심어주자는 취지였다. 이 이벤트는 학교측과 지자체의 목적과도 맞아 "배움을 실천하는 귀중한 기회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J3리그 '카탈레 도야마'는 고령자 복지시설을 만들어 어르신과 선수들의 교류를 적극 늘리고 있다. 고령자들은 내 고장 팀을 응원하고, 선수들과 잦은 만남을 가지면서 대화가 늘고 심지어 식사량이 증가했다는 보고도 있다. 이처럼 축구를 매개로 고령자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J리그 사무국에 따르면 이런 방식으로 전국적으로 10개 구단이 100여개 고령자시설에서 2500여명 이상의 노인과 함께하고 있다.

J1리그 '나고야 그램퍼스'는 아이치현 도요타시에 거주하는 브라질인 커뮤니티의 아이들이 일본의 어린 학생들과 교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어와 일본 문화를 배우면서 갈수록 늘어나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지역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지난해 말 기준 J리그 1~3부에 속한 전국 41개 광역지자체 60개 구단이 지역에서 주민들과 다양한 형태로 결합하고 있다. J리그를 관장하는 '공익사단법인 일본축구리그'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구단이 연간 2만3573회, 팀당 406회의 지역공헌활동을 벌였다. 이 가운데 단순한 봉사활동을 넘어 지역내 지자체나 기업 주민단체 등과 연계해 벌이는 사회연계활동만 2068회에 달했다.

프로구단 '홈타운 활동' 지역사회 밀착

J리그는 구단이 지역사회와 결합해야 한다는 기본정신을 규약에 담고 있다. 구단의 지역 본거지를 '홈타운'이라고 한다. J리그 규약은 "홈타운으로 정한 지역에서 지역사회와 일체가 되는 구단 육성을 하면서 지역내 축구의 보급과 진흥을 위해 노력한다"고 명시했다.

일반적으로 프로스포츠가 추구하는 '본거지 점유권'이나 '흥행권'의 의미가 강한 '프렌차이즈' 개념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한몸이 된다는 취지에서 '홈타운활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J리그 정신에 따라 구단은 '지역에 착근한 스포츠클럽'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구단은 주민과 행정기관, 지역내 기업이 삼위일체가 된 지원체제를 갖고, 해당지역의 커뮤니티로 발전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J리그 홈페이지)

일본은 전통적으로 야구의 나라다. 고교야구와 프로야구가 지금도 가장 큰 국민적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프로야구는 거대 자본과 미디어에 의해 운영되고, 일부 대도시를 중심으로 초광역권에 지지기반을 두고 있다. 예컨대 요미우리 자이언츠(도쿄)나 한신 타이거즈(오사카, 고베) 등 대도시에 기반을 둔 12개 구단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일본 인구가 1억2000만명을 조금 넘기 때문에 산술적으로 프로야구는 구단별로 1000만명 수준의 지지기반을 토대로 한다. 요미우리나 한신과 같은 일부 구단이 인기를 독차지하는 문제도 있다.
하지만 축구는 '지역사회에 뿌리 내리는 클럽'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향해 가고 있다. 일본은 전국적으로 47개 광역자치단체가 있다. 이 가운데 41개 광역단체의 60개 구단이 산술적으로 200만명 정도의 지지기반을 갖는 중소도시에 거점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와 가까운 규슈지방의 경우 프로야구는 후쿠오카를 홈으로 하는 '소프트뱅크 호크스' 1개 구단만 있지만, 프로축구는 후쿠오카와 나가사키, 가고시마 등 규슈지방 각 현에 8개의 구단이 있다. 중소도시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기에 지역주민과의 결합도가 높다. J리그는 향후 구단이 없는 6개 광역단체까지 창단해 '1현 1구단'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100개 이상의 프로구단도 가능하다는 구상이다.

아사히신문은 'J리그 지역과 함께 걸어온 30년'이라는 특집기사를 통해 축구가 지역사회에 어떻게 정착하고 있는지 분석했다. 이 신문은 구단과 지역주민의 관계를 "다채로운 사회공헌활동으로 지역주민에게 사랑받는 관계를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중소거점도시 '컴팩트 시티'의 상징

역사적으로 일본의 스포츠는 기업과 학교를 통해 발전해왔다. 프로야구와 고교야구가 대표적이다. J리그도 초창기에는 기업이 창단해 이끌어 왔고 지금도 상당수 구단이 기업의 협찬 등에 의지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토대는 지역사회에 둬야 한다는 방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 J리그 초창기 일부 기업이 창단한 구단이 도산하는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지역내 정착의 중요성이 확산됐다.

실제로 2001년 J2리그 '고후 반포레'가 경영위기를 맞았을 때 이를 극복한 원천이 지역사회 공헌이다. 당시 선수들은 고령자시설과 소아병동에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지역내 선한 인식을 만들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지역 중소기업 300여곳이 스폰서로 나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이른바 '고후 모델'이다. 우리나라 K리그 안산 그리너스가 2016년 고후 구단에 직원들을 파견해 위기극복 사례를 배워 안산지역 일부에서 실천하기도 했다.

일본 프로구단이 지역으로 파고드는 이유는 저출산·초고령화사회에서 구단의 존립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우리나라 시군구에 해당하는 기초자치단체인 시정촌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2009년 전국적으로 3200여개에 달하던 시정촌은 2022년 기준 1740개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지역의 인구 감소와 행정의 효율화 등을 위해 통합과 합병 등을 추진한 결과다. 이러한 흐름으로 2040년 전국적으로 900여개에 달하는 시정촌이 추가로 없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은 2014년 아베정권이 지역활성화를 목표로 내걸고 '지방창생'(創生)이라는 구호를 제시하면서 지역살리기에 나섰다. 아베정권이 내건 '지방창생'은 크게 △인구감소 극복 △지방 활성화 △도쿄 일극집중 완화 등 3가지다. 이를 위해 △지방에 일자리 만들기 △지방으로 사람 이동 △젊은층의 결혼과 출산, 보육 지원 △시대에 맞는 지역 만들기 등 4개의 기본목표를 정했다.

특히 시대변화에 부합하는 지방의 중소 거점도시 형성이 주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른바 '컴팩트 시티'라는 이름으로 지방의 중소 거점도시를 중심으로 의료와 교통 쇼핑 등 일상생활의 동선이 재구획되고 있다. 2019년 기준 전국적으로 270여개의 지자체가 컴팩트 시티 계획을 발표했고, 추가로 200여개의 지자체도 이러한 구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컴팩트 시티'에 적합한 프로스포츠로서 J리그 구단이 30년에 걸쳐 꾸준히 지역사회에서 정착하고 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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