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당신들은 자녀를 가장 사랑한다 말하지만,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모습으로 자녀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다"라고 일갈한 적 있다. 그의 직설적 표현들은 매우 인상 깊어 서구사회의 언론들이 크게 다뤘다. 자유주의자들과 환경주의자들은 그를 환경의 아이콘으로 내세우며 세계적 명사로 만들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어느 누구도 툰베리에게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지 말해주지 않은 듯 싶다. 아시아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도 스웨덴 사람들만큼 부유해지고 싶어하는데, 태양광 발전을 통해 그게 가능하다고 보는가"라고 냉소적으로 반응했다. 당시 미국 트럼프 대통령도 툰베리를 "밝고 훌륭한 미래를 기원하는 행복한 소녀"라고 비꼬았다. 툰베리는 전세계 이상주의자들의 상징이었고 푸틴과 트럼프는 너무나 현실적이지만 꿈을 잃어버린 어른들을 대변했다.
기후변화 대응은 어느 한 지역 문제가 아니라 전지구적 인류 생존의 문제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대응을 위한 방안을 생각해 본다면 마치 어린아이들에게 케이크를 가운데 두고 절대로 먹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 아이들이 모두 집에서 케이크 정도는 자주 먹는 부자집의 아이들이라면 규율만으로 가능할 수도 있지만 끼니를 거를 정도의 가난한 집 아이들이 함께 있는 상황이라면 이 케이크가 온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인가? 게다가 선생님들이 "이 케이크를 먹게 되면 너의 이가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네 친구들의 이가 나빠진다. 너희를 믿을 테니 부탁한다"라며 자리를 비운다면 질서가 유지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여전히 툰베리들은 케이크가 남겨질 것이라 믿을 것이고 푸틴과 트럼프들은 "거 봐라"하면서 비웃거나 케이크 쟁탈전에 참여할 것이다.
툰베리와 푸틴·트럼프 사이의 엄청난 간극
마르크스의 "전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구호는 궁극적으로 전세계가 자본주의화 되었을 때 계급모순이 극대화될 비극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전세계 절대 다수 노동계급의 각성을 내세운 이 선언은 실현하는데 이론적 질곡이 있었다. 계급혁명은 전제조건이 전세계가 자본주의화가 된 이후의 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봉건주의 등이 혼재한 현실적 상황에서 이론을 따라 간다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인데 인간해방이 기다려야할 만큼 여유가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러시아의 레닌이나 중국의 모택동은 실천으로 이론적 질곡을 풀어내려고 했다. 지금 전세계의 노동계급은 해방이 되었고 계급갈등은 사라졌는가?
하나의 문제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이번에는 전 인류적 문제가 우리에게 주어진 셈이다. 기후변화 문제는 계급과 민족을 넘어서 모든 살아있는 지구상 생명체의 생존과 관련한 것이다. 전 지구적 문제를 다룬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 문제도 각국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실천방향이 다르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이데올로기는 넘어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독일은 원자력과 석탄발전소를 폐쇄하면서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육지 파이프라인으로 공급받았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경제제재로 독일은 천연가스를 러시아 파이프라인에서 선박으로 들여오는 LNG로 바꿨다. 미국은 국제질서상의 정의를 내세워 이익을 챙겼고 러시아는 유럽으로의 공급물량을 중국 등 다른 지역으로 돌려 손실을 보존했다.
선박으로 들여오는 고비용 LNG은 독일 국민과 기업들의 부담이 되고 있다. 푸틴은 지구 살리는 일이 얼마나 복잡한지 이제 깨달았냐며 비웃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보다 현실적 감각 갖춘 툰베리가 필요하다
미국은 탄소제로형 에너지 전환을 자국의 제품으로 하겠다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들고 나왔고 중국의 값싼 태양광 수입을 막고 있다. 지구를 지키기 위한 국제연대는 자국의 이익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툰베리류의 이상주의자들은 더 빨리 재생에너지를 공급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태양광 제품은 유럽이나 미국에 자유롭게 구매되어야 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제품은 사회주의 정권에서 만들었으니 지구를 지키는 신성한 일에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푸틴이 어른스러워 보이는 것은 툰베리가 아직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보다 현실적 감각과 역량을 갖춘 툰베리가 필요하다.
김재민 이젠파트너스 대표이사,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