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인사 파행이 도를 넘는다.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고위공직자들이 과연 이런 사람들로 채워져도 되는가 탄식이 절로 나온다. 어깃장이라도 놓듯이 그 자리에 가장 어울리지 않을 인물을 골라서 내리꽂고선 ‘마이웨이’를 고집한다. 최근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안창호 인권위원장, 김문수 노동부장관 등이 대표적이다. 과거 행적이나 발언 등으로 그 분야 전문가들이 ‘최악’ ‘부적격’이라고 절대 반대하는 인물들이다.

이런 인사들을 골라 임명하는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뚜렷한 하자가 있는 사람일수록 오로지 임명권자에게 잘 보이고 충성하리라고 보는 것이다. 국민의 비판 목소리를 틀어막겠다는 ‘입틀막 인사’ 내 뜻대로 하고야 말겠다는 ‘폭주인사’ ‘오기인사’다.

역사관련 국책기관 장악, 외교안보라인 잦은 교체의 의미

총선 참패에서 드러났듯이 어차피 국정 지지율은 바닥이고, ‘마약수사 외압의혹’ 등 잇달아 터져 나오는 새로운 비리의혹과 거듭되는 거부권 행사로 지지율 반등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보고 맹목적 지지자들을 결속시키며 ‘내 뜻대로 하겠다는데 어쩔 것이냐’고 들이대는 형국이다.

이러한 인사파행은 취임 초 검찰출신 인사들을 곳곳에 심을 때부터 조짐이 나타났지만 갈수록 도를 더해간다. 남북간 대화를 혐오하는 극우인사 김영호를 통일부장관에, 5.18과 4.3에 대한 편향된 인식으로 유명한 김광동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에 임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직설립 취지를 반대하는 인물을 수장으로 앉혀 조직 본래의 의미를 퇴색·왜곡시키고 조직 내 반대의견을 제압케 함으로써 ‘항전의지’를 잃고 자포자기하게 만들려는 뜻이 아닐까 싶다.

일제의 식량수탈을 수출로 미화한 뉴라이트 인사 김낙년을 한국학중앙연구원장에,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에 동조한 허동현을 국사편찬위원장에 임명하고, 서양사를 전공한 뉴라이트 인사 박지향을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을 앞장서 막아야 할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 앉힌 것도 같은 선상에 있다. 동북아역사재단 산하에는 독도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인 독도연구소가 있다.

윤 대통령의 인사 난맥상은 외교안보라인의 잦은 교체와 돌려막기식 회전문인사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취임 2년 3개월 지나는 동안 안보정책을 총괄·조율하는 국가안보실장은 김성한-조태용-장호진을 거쳐 4번째로 신원식 전 국방장관이 취임했다. 재직 평균 9개월이니 업무파악 하고 상대국 파트너 얼굴 익히기도 전에 교체됐다. 국방장관은 이종섭-신원식을 거쳐 김용현이 지명되었고, 외교부장관은 박 진을 거쳐 조태열이, 통일부장관은 권영세를 거쳐 김영호가, 국정원장은 김규현을 거쳐 조태용으로 교체됐다.

외교안보라인에서 유일하게 굳건히 버티며 갈수록 힘이 쏠리는 ‘실세 중 실세’가 김태효 안보실 제1차장이다. 직속상관인 역대 안보실장을 포함해 그와 갈등을 빚은 인사들은 교체대상으로 몰려 물러났다. 윤석열 검사와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이웃주민으로, 선배검사의 아들로 일찍부터 관계를 맺고 외교안보 분야에 문외한인 윤 대통령에게 한미일 군사협력의 중요성과 특히 일본과의 밀착 필요성을 입력시킨 인물로 꼽힌다. 최근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일본에 대한 사과요구가 빠진데 대해 설명하면서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고 발언해 많은 국민의 분노를 샀다. 우리 걱정에 앞서 일본 걱정부터 하는 게 도대체 사리에 맞느냐는 비판이다.

국민 저항 부를 큰 폭풍 밀려오나 … ‘한미일 군사동맹 추진’인가

외교안보라인 잦은 교체와 특히 역사관련 국책기관의 수장들이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로 채워지는 저변에는 어떻게든 미국·일본 쪽에 확실히 붙어야 한다는 강고하고 편향된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이 원하는 일본과의 밀착을 위해선 국민감정상 걸림돌로 작용하는 과거사문제 등을 지워야 하는데 그 일에 앞장 서 반대론을 사전 제압해 달라는 요구일 것이다.

그리 본다면 일본과 관련해 무언가 더 큰 것, 국민의 극렬한 저항을 부를 폭풍과도 같은 큰 일이 머잖아 밀어닥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것이 미국과 일본 우익세력이 간절히 꿈꿔온 ‘한미일 군사동맹 추진’이 될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독도를 세 ‘동맹국’이 공동목표를 이루기 위해 이용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킬지 엄중하게 주시해야 할 흐름이다. 이런 흐름은 윤 대통령이 마구 밀어붙이는 대북 강경노선과 더불어 ‘임기 후 안전’을 도모하고자 모든 것을 거는 ‘외길 선택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원섭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