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 Inc Class A·B)의 시가총액이 28일(미국 현지시간) 1조달러를 넘어섰다. 미국 기업 중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빅테크를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1조달러 클럽’에 가입했고, 전세계 기준으로는 8번째가 된다. 시총 순위에 등락이 있지만 매그니피센트6 주식(애플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 알파벳 )와 사우디의 석유회사 아람코에 뒤이은 것이다. 이날 뉴욕 증시에서는 AI 반도체 대장주 엔비디아가 약 300억달러(40조1000억원)의 사상 최초 분기매출 실적을 발표했지만 더 높은 실적을 기대하는 시장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주가는 오히려 하락했다.

빅테크 외 ‘시총 1조달러 클럽’에 등극한 버크셔 해서웨이

버크셔는 오르고 있지만 워런 버핏은 시총 1위 기업인 애플 주식 500억달러를 비롯해 뱅크오브아메리카 주식 54억달러어치 등 보유 주식을 내다 팔았다.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 13F(1억달러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기관투자가 제출용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버핏은 특히 애플의 경우 2023년 4분기에 보유 주식 9억주 중 12.8%인 1억1600만주를 매도했고, 올해 2분기에 7억8900만주 중 49.3%인 3억8900만주를 팔았다.

이들 주식의 대량 매도로 버크셔의 현금 및 미 단기국채(만기 1년 미만 T-bll) 보유액은 3월 말 1890억달러에서 6월 말 2769억달러로 늘었다. 미 국채 3개월 및 6개월물은 사실상 현금이나 마찬가지여서 버핏은 금고에 현금을 쌓아놓고 있는 셈이다.

8월 22일 잭슨홀 회의에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정책 조정의 시간이 다가왔다. 가야할 방향은 명확하다”는 연설 이후 시장의 시선은 이제 미국 경기가 ‘침체’로 갈지 아니면 ‘둔화’ 수준으로 연착륙할지에 주목하고 있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버핏의 투자행동은 미국 증시 또는 미국경제의 현재 상황을 분석하고 예측해볼 수 있는 하나의 ‘투시경’이라고도 볼 수 있다.

버핏이 투자 기준으로 활용하는 ‘버핏지수’(Buffett Indicator)라는 게 있다. 한 국가의 전체 시총을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것이다. 버핏은 “이 수치는 어떤 순간에 주식 시장의 밸류에이션이 어느 수준인지 보여주는 가장 좋은 단일 지표”라면서 “이 비율이 70~80%로 떨어지면 주식을 사는 게 매우 좋은 것이고 이 비율이 1999년과 2000년처럼 200% 가까이 근접하면 불장난을 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 바 있다. 미국 증시의 시가총액은 57.50조달러 수준으로 미국의 GDP 28.42조달러로 나누면 202%에 달한다.

버핏의 눈으로 보기에 주가수익비율(PER) 약 36배, 주당순자산가치(PBR) 약48배의 애플이나 엔비디아(PER 약 78배, PBR 약 68배), 그리고 고평가된 여타 미국 주식을 지금 시점에서 매수 또는 보유하는 것은 ‘불장난’인 셈이다. 따라서 금리인하가 예상되는 데도 애플을 매도하고, 방대한 미국채 포트폴리오를 보유해 금리인하 시기 채권가격 상승으로 수혜가 예상되는 뱅크오브아메리카도 매도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침체 경고하는 장단기금리 역전 해소 ‘0’을 향해 수렴

미국 투자은행들의 분석을 보면 UBS는 미국이 일자리 성장 둔화를 겪고 7월 실업률 지표로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며 미국의 경기침체 가능성을 20%에서 25%로 상향 조정했다. JP모건은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질 확률을 35%로 올려 잡았다.

물론 미 상무부가 29일 발표한 2분기 GDP 성장이 연율 3%인데 무슨 침체냐 라고 할 수도 있다. 반면 미 국채 장단기금리 역전(10년물과 2년물 금리 차이)은 2022년 7월부터 시작됐는데 28일 0.026%p 차이에 불과해 ‘0’을 향해 근접해가고 있다. 장단기 역전의 해소는 이후 경기침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 볼 수 있는데 1990~1991년, 2001년, 2007~2009년, 2020년 등 6번의 침체에서 나타났다.

미국의 헤지펀드들은 8월 5일 ‘블랙먼데이’ 이후로 맹렬한 속도로 포트폴리오에서 주도주든 빅테크든 보유 주식을 매도하고 있다. 기업의 긍정적인 소식이나 실적발표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이 주식을 대거 매도하는 ‘셀온(sell on)현상’이 나타나면서 우수한 분기 실적발표를 한 엔비디아도, 주당수익(EPS)이 계속 증가해온 빅테크도 이를 피해가진 못했다. 미국경제의 침체여부는 수출주도 경제인 우리나라의 환율과 GDP 성장, 내수시장과 서학개미들의 미국 투자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행의 2분기 국제투자대조표에 따르면 순대외금융자산은 8585억달러로 분기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미국 경제와 금융시장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면서 투자에 더욱 신중해야 할 이유다.

안찬수 오피니언실장

안찬수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