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이 반년 넘게 지속되면서 의료대란 우려가 확산되자 집권 여당을 중심으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의료개혁을 두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해 여당 일부와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대통령실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지난달 29일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의원들은 의료 개혁 관련 정부 입장을 보고받은 자리에서 “정부 정책은 이겼으나 정치는 실패했다”며 성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보수논객은 의정갈등이 거대한 블랙홀 정도가 아니라 거대한 공동묘지가 될 것이라는 주장까지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의대 증원은 마무리됐다”고 선언했지만 의료계와 의대생은 “시간은 우리 편”이라며 버티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은 고조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응급실 뺑뺑이’ 소식
얼마 전 충북 음성군에 사는 40대 산모가 응급실을 못 찾고 헤매다 결국 구급차 안에서 아이를 출산했고,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쓰러진 40대 응급환자는 병원 14곳을 돌다가 119 구급차에서 숨을 거뒀다. ‘응급실 뺑뺑이’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온다.
지역 종합병원에서는 전공의의 70% 이상이 병원을 떠나 의료공백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26일까지 레지던트 임용대상자 1만463명 중 7627명이 사직해 레지던트 사직률은 72.9%였다. 이에 따라 현재 전국 응급실 평균 기능이 40% 정도가 마비됐다고 한다. 자리를 지키던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피로에 지쳐 사직하면서 운영을 중단하는 대형병원 응급실이 늘고 있다. 건국대 충주병원, 세종충남대병원, 강원대병원 등이 일부 시간대 진료를 중단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정브리핑에서 “비상진료 체계가 그래도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의료에 관한 한 전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할 수 있던 대한민국이 이제 아프지 않기만을 기도해야 하는 상황으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 당장 내년 초 배출될 신규 의사가 200~300여명에 그쳐 3000명가량 줄어들 수 있다. 휴학 중인 본과 4학년 의대생 대부분이 국시에 응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전공의 배출이 몇년 동안 안되면 그 여파는 5~10년에 걸쳐 나타난다.
여기에 올해 유급될 가능성이 큰 의대 1학년 3000여명과 2025학년도 의대 신입생 4567명을 합하면 내년 의대 1학년 학생은 기존 정원보다 2.5배 많은 7500명을 넘어선다. 병원에서는 인턴이 크게 모자라고 의대는 정상적인 교육이 어려워진다. 교육부는 3학기제 운영 등을 비롯해 성적처리, 유급 관련 조치 등을 대폭 완화할 것을 각 대학에 권고하면서 의대생들에게는 학업에 복귀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학생들은 요지부동이다.
정부는 의대 증원에 대한 여론의 압도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미숙한 개혁으로 의사단체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온 책임을 회피할 수 없게 됐다. 의료개혁에 대한 여권 내부 갈등이 커지고 국회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기로 하면서 정책 추진력도 하락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과 일부 참모진을 제외한 다수가 대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의료계의 집단이기주의를 탓하며 무조건 밀어붙인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의료계와 실현 가능한 협상에 나서야 한다.
추석 연휴 ‘응급실 대란’ 대책 서둘러야
우선 정부는 의료계와 협의해 응급실이 제대로 가동되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추석 연휴 응급실 대란이 벌어지지 않도록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제시한 의대 증원 2000명 계획과 필수의료 패키지 전면 철회, 의사 수계 추계 기구 설치, 수련병원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부당명령 철회 및 사과,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 등 7가지 요구사항에 대해 논의해 접점을 찾아야 한다.
의료계도 의대증원 원점 재검토의 기존입장에서 한발 물러서야 한다. 이와 관련해 여야가 의대 증원과 관련 2025년 의대 증원에 대해선 더 이상 논의할 수 없다는 부분에 대해서 인식을 같이 했다는 것은 의미있는 합의다.
전공의들도 복귀해야 마땅하다. 의사들은 환자 곁으로 돌아와 의료 붕괴부터 막아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 보호 차원에서 열린 자세로 대화에 임하기 바란다. 의료계는 의대 증원 적정 인원에 대해 단일안을 먼저 내놓아야 한다.
여야 대표는 1일 회담을 통해 의정갈등에 따른 의료 차질 문제를 국회 차원의 대책을 협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정부도 참여한 여·야·정 협의체로 발전시켜 논의해 나가기 바란다.
김기수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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