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첫 정기국회를 전후로 정치권이 모처럼 제자리를 찾는 듯하다. 1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회동은 많은 숙제를 남겼지만 그래도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의미가 있다. 회동 직후부터 ‘계엄설’ ‘문재인 전 대통령 수사’ 등을 놓고 다시 목울대를 세우지만 그래도 민생 공통공약을 논의하기로 한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가을 정국을 앞두고 곳곳에서 폭풍전야의 기류들이 감지된다. 특히 윤 대통령을 둘러싼 흐름은 예사롭지 않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현직 대통령의 국회 개원식 첫 불참이 상징하는 것처럼 용산은 지금 대통령실을 ‘당신들만의 공화국’으로 만들며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그런데 여권 내 투톱인 윤석열 대통령과 한 대표 사이의 파열음은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야당은 다음달 7일 시작될 국정감사를 통해 권력핵심 주변을 파헤친다며 날을 세운다. 과연 윤 대통령은 이 가을 정국을 무난히 넘길 수 있을까.

폭풍전야 같은 정국인데 용산만 ‘당신들의 공화국’인 듯

의정갈등 해법을 둘러싼 윤석열-한동훈의 5차 갈등은 여권 내부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응급실 뺑뺑이’ 등 국민의 불안을 우려한 당 대표의 제안에 대한 대통령의 격노가 여과없이 표출되고 용산과 정부, 당내 친윤까지 나서 여당대표를 몰아세우는 장면은 앞으로 벌어질 당정갈등의 예고편처럼 보인다.

용산의 전방위적 제동에 밀려 시동도 못 걸고 있지만 한 대표가 국민에게 약속한 채 해병 특검, 그리고 김건희 여사에 대한 태도 등 6차, 7차 윤-한갈등을 촉발시킬 뇌관들이 수두룩하다. 현재권력을 밟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되는 잠재적 미래권력 한 대표와 “미래권력은 없다”며 그런 한 대표를 깔아뭉개려는 윤 대통령 관계는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시한폭탄이다.

자신의 기분이 태도가 되고 정책이 되는 윤 대통령 스타일 상 한 대표는 단순한 눈엣가시를 넘어 이준석 전 대표처럼 쫓아내야 할 존재일 것이다. 의정갈등 문제제기 과정에서 용산이나 당내 친윤세력이 얼핏 보여준 것처럼 ‘한동훈 밀어내기’가 이미 시작됐을 수도 있다. 반면 한 대표 주변에서는 “이대로 굴복하면 죽는다”며 용산의 압박에 제대로 대응하라는 주문이 적지 않다고 한다.

아직 불거지지 않았지만 국정감사를 둘러싼 흐름도 심상치 않다. 윤 대통령 지지도가 바닥을 치고, 정권의 장악력이 느슨해지면서 야당 의원들의 자료요구에 담당 공무원들이 직접 의원실을 찾아와 깊숙한 얘기를 털어놓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권 초기 김 여사 오빠가 무단으로 용산을 출입하고 회의도 참석했다’는 야당 의원의 폭로도 그런 제보의 일단으로 보인다. 야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윤 대통령 관련은 물론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제보가 상당하다고 한다.

여기에 윤 대통령이 가치외교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였던 한일, 한미일 관계에서도 의외의 지뢰가 나타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윤석열정권은 잇단 뉴라이트계 인사 임명과 정권 핵심 관계자들의 실언으로 이종찬 광복회장 등 온건보수로부터도 ‘친일정권’으로 낙인찍힌 상태다. 그런데 만약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은 또 다른 굴욕외교 내용이 나올 경우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전문가들 중에는 퇴임을 목전에 둔 기시다 일본 총리가 왜 지금 방한하려 하는지 의문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인사도 있다.

측근비리 하나라도 나오면 정권 존립위기 맞을 수도

사실 가을 정국의 폭풍의 핵은 반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의정갈등이다. 그렇지 않아도 “비상응급 체계는 괜찮다”는 대통령의 흰소리에 부아가 난 국민들에게 진짜 의료대란이 현실화되기라도 한다면 그 분노는 용산을 직격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갈수록 팍팍해지는 살림살이로 하루하루가 버거운 국민들에게 윤 대통령은 “우리 경제가 확실하게 살아나고 있고, 앞으로 더 크게 도약할 것”이라며 염장을 질렀다. 만약 세계경제 침체 여파로 우리 경제가 더 나빠지거나 내수침체 장기화로 국민 고통이 더 가중되면 그때의 표적 또한 대통령이 될 텐데 그것을 감당할 여력이나 있을까.

이미 국민의 분노게이지가 임계점에 다달았다는 것은 여론조사 지표로도 확인된다. 윤 대통령 지지율은 다시 곤두박질 쳐 바닥권이다. 더 엄중한 경고는 보수층의 절반이 윤 대통령 부부에게 등을 돌린 것으로 나타난 지표다. 아마 민심이 더 거칠어지면 국민의힘 내 친윤 친위대의 이탈도 가속화될 것이다. 게다가 국정감사에서 윤 대통령이나 측근 비리 하나라도 터져나오면 정권 자체가 존립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나 용산이 이런 가을 정국 퍼펙트스톰의 전조를 제대로 읽고나 있나 모르겠다.

남봉우 주필

남봉우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