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가 출범할 즈음 정가에서는 윤 대통령 부부의 ‘활발한 소통’이 화제였다. 권좌에 오르고 나면 ‘연락두절’ 되기 일쑤였던 역대 대통령 부부와 달라서였다. 사실 그들이 연락을 끊은 건 사적 인연이 공적 영역에 작용하는 걸 스스로 경계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부부의 매정한 절연으로 “구중궁궐에 갇혔다” “권력에 취했다”는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 부부는 대통령이 되기 전 맺은 인연과 더 활발하게 연락을 주고받았다. 기자 주변에서 윤 대통령 부부와 전화나 메신저를 주고받는 사람을 찾는 게 어렵지 않을 정도였다. 정치영역을 취재하며 4명의 대통령을 지켜본 기자로서도 생경한 장면이었다. 구중궁궐에 스스로를 유폐시키지 않고 새벽 2~3시에도 외부와 소통하는 대통령 부부라니. 박근혜 전 대통령 같은 ‘은둔의 권력’이 아닌 소통하는 권력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윤 대통령 부부의 ‘소통’은 잡음만 빚었다. 윤 대통령은 2022년 7월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체리따봉’ 문자를 주고받다가 ‘젊은 대표’와 알력을 빚는 편협함만 드러냈다.

김 여사는 ‘서울의 소리’ 기자와 7시간 동안 주절거린 녹취록이 공개돼 곤욕을 치렀다. 최재영 목사와 메신저를 주고받으며 친분을 유지하다가 명품백까지 수수하는 바람에 위기를 자초했다. 김 여사는 여당 비대위원장(한동훈)이나 시사평론가(진중권)와도 직접 소통해 “사실상 정치인으로 활동했다”는 뒷말을 낳았다.

최근 불거진 김영선 전 의원 공천개입 의혹에서도 김 여사와 명태균씨가 관련 얘기를 주고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국민은 “아무런 법적 권한이 없는 영부인이 왜 사적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과 공적 영역인 국정과 정치현안을 논의했냐”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

이 정도면 윤 대통령 부부의 ‘소통’은 ‘참사’에 가깝다. 여권 핵심부에서는 일찌감치 윤 대통령 부부의 ‘소통’을 놓고 걱정이 많았다. 여권 핵심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나 “여러 채널에서 ‘소통을 줄이시는 게 좋겠다’고 보고한 것으로 안다. 본인들이 듣지 않은 것뿐이다. (윤 대통령 부부의) 흔적은 누군가의 휴대전화에 수백, 수천 건 남아있을 것이다. 탄핵의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 논란을 일으킬 만한 게 있을 수도 있다. 주워담기에는 늦었다”고 우려했다.

지금이라도 윤 대통령 부부가 ‘진짜 소통’을 하길 바란다. 우선 자신들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숱한 ‘권력 해바라기’의 번호는 과감하게 지우길. 직언과 쓴소리 할 수 있는 이들을 널리 추천받아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길. 입에 발린 칭송보다 매서운 비판을 듣기를. 아직 임기가 절반 넘게 남았다. 늦지 않았다.

엄경용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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