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정책 실패가 원인, 일반예산으로 써야”

“건보 재정 조성한 국민, 사용처 결정과정서 배제”

정부가 상급종합병원(상급병원)을 중환자 중심으로 개편하기 위해 3년간 10조원의 건강보험 재정(건보 재정)을 추가 투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데 대해 시민사회와 야당을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상급병원의 위기가 전공의 집단사직 등 의료정책 실패로 발생한 것인데, 건강보험 재정으로 손실을 메우려는 건 월권행위라는 지적이다.

29일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건보 재정은 정권의 화수분이 아니다”면서 “상급병원 구조조정보다 지역일차·공공의료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급병원 개편에 10조원 투입” = 앞서 27일 정부 의료개혁추진단은 상급병원에 연간 약 3조3000억원, 3년간 총 10조원의 건보 재정을 투입해 현재 50%인 중증진료 비중을 70%까지 상향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일반병상은 5~15% 축소하고 중환자실 등의 입원료 수가를 50% 높여 중증 환자 치료 중심으로 상급병원의 체질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의료기관이 정부가 제시한 기준에 맞춰 계획서를 제출하고 이를 준수하면 수가 등에서 파격적인 지원을 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해당 재원이 건보 재정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참여연대는 이와 관련해 “국민들의 보험료로 운영되는 건강보험을 정권의 금고처럼 사용하는 윤석열정부를 규탄한다”며 “자신의 정책 실패로 야기된 대형병원의 손실부터 건보 재정으로 메워주는 이번 결정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이번 정책이 보편적 보장성 강화 정책이 아니어서 건강보험 운영 원칙에 맞지 않고 재정운영의 형평성과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특히 상급병원의 위기가 급작스러운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인한 정책실패의 산물인 만큼 건강보험 재정이 아니라 정부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일반예산에서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설사 지속적인 수가인상과 보상강화라 할지라도 장기간의 연구용역과 여타 행위와의 상대가치조정을 통한 사회적 합의와 과학적 결론이 우선”이라며 “당장 대형병원 재정위기의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급조된 정책은 준비없는 2000명 증원의 파국과 비슷한 위기만 부추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정 과정서 국민 배제” = 또 대규모 건보 재정 투입 결정 과정에서 국민이 배제된 채 정부와 상급병원 간의 합의로만 이뤄진 점도 지적했다. 건강보험 재정운용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라는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논의·의결해야 하는데 정부가 ‘재난상황’을 앞세워 해당 절차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건보 재정에서 매달 1886억원씩 의료대란 지원금을 정부 ‘보고안건’으로 처리해 지출하고 있는데 이제는 장기적인 구조조정 계획에 이 재정을 마구 쓰려 한다”며 “명백한 정부의 월권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현재 대형병원의 진료 손실은 그간 수도권 쏠림과 과잉진료, 경증 외래진료 등 반대급부에 의한 것이 크다”며 “대형병원이 포기해야 할 경증진료와 과잉진료영역에 대한 손실도 보상하겠다는 건 대형병원 살리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특히 “정부가 말한 매년 3조3000억원의 예산은 건실한 지방의료원 22곳을 매년 건립하고, 권역외상센터, 권역감염병센터 등을 모두 운용하고도 남을 돈”이라고 강조했다.

◆야당 “의료 부익부 빈익빈 초래” = 이런 비판은 야당 등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의료대란대책특별위원회는 지난 25일 윤석열정부가 의료대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건강보험 재정을 과도하게 투입해 재정 적자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주민 대책위원장은 이날 오후 국회 본청에서 열린 특위 건강보험 재정파탄 대책 논의 간담회에서 “건보 재정 파탄을 메꾸려다가 의료 분야의 부익부 빈익빈까지 초래하는 상황”이라며 “건보 재정은 국민 돈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정부가 자신들의 실패를 수습할 때 쓰라고 있는 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윤 정부는 나아가 이렇게 건보 재정을 쓰고 나서 이 구멍을 메꾸는 것도 국민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며 “응급 경증환자 자기부담률을 90% 올리고 4인 이하 기본 병실료도 50% 정도 올린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건보료 부담 커질수도” =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강성권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부위원장은 “의료대란으로 발생한 민간병원 지원에 건보 재정을 사용하는 것이 맞는지 되묻고 싶다”며 “건보 재정은 국민이 조성한 금액으로, 당연히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와 국민 의료비 절감, 지속 가능성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앞서 2028년까지 지역·필수의료 살리기에 건보 재정과 국가 재정을 10조원씩 지원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전공의 집단 사직 여파로 정부가 수련병원 건강보험 급여 선지급, 비상진료체계 유지 등에 사용한 돈도 2조원에 달한다.

정부가 의료개혁을 위해 건보 재정을 쏟아부으면서 건보료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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