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를 미리 경고하는 시스템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정부는 적절한 시점에 재정을 풀고 투자자들은 상당한 수익을 거둘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실 불가능한 이야기다. 미국의 경기침체는 미국경제연구소(NBER)가 결정한다. 침체 판정까지 수개월이 걸린다. 이런 시간차 때문에 경기침체 대체지표들이 개발됐다.
많은 지표가 미국경제에 그림자가 드리웠음을 알린다. 가장 잘 알려진 ‘삼의 법칙(Sahm’s rule)’은 8월초 미국경제가 침체에 진입했음을 시사했다. 최근 3개월 평균 실업률이 지난 12개월 최저치보다 0.5%p 높은 경우를 침체로 본다.
미국채를 기준으로 삼는 지표도 있다. 장기물 금리가 단기물 금리보다 낮아지는 수익률곡선 역전 여부를 따진다. 수익률곡선이 역전되기 시작한 것은 2022년 중반부터다. 역전 상황이 최근처럼 정상화되면 본격적인 침체가 시작된다고 판단한다.
늦어도 내년 상반기에 미국 경제침체에 빠질 확률 높아
NBER에 따르면 미국 경제는 2020년 4월을 경기저점으로 확장국면을 이어오고 있다. 1900년 이후 미국 경제는 23차례 경기순환을 거쳤는데 경기 확장국면이 평균 48개월이었다. 올해 9월까지 계속된다면 53개월로 과거 평균보다 길다. 확장국면이 언제까지 더 이어질까. 답은 미국 국내총생산의 69%를 차지하는 소비에 달려 있다.
미국의 소비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다. 그 이유는 우선 미국 가계의 낮은 저축률에 있다. 올해 상반기 저축률이 3.6%로 코로나19 이전 수준(2000~2019년 평균 5.2%)보다 낮아졌다. 특히 미국 소비자들은 코로나19 동안 축적해 2021년 2조달러가 넘었던 초과저축을 과도하게 사용하면서 올해 초 이를 모두 소진했다.
신용카드 부채도 사상 최대 규모다. 2분기 기준 미국의 신용카드 부채는 사상 최대 규모인 1조1400억달러로 집계됐다. 연체율도 9.1%로 2011년 1분기 이후 가장 높았다. 금리상승에 따른 가계 이자부담 증가도 소비를 제약하는 요인이다. 가처분소득에서 이자 지급액 비중이 2021년 3월 1.2%에서 올해 상반기에는 2.5%로 올랐다. 2008년 금융위기만큼은 아니지만 미국의 소비 여력이 줄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업의 실적에서도 소비 둔화 추세가 확인되고 있다. 초과저축을 소진한 미국인들이 여행을 비롯한 각종 여가활동을 줄이면서 관련 기업들의 실적이 부진했다. 월트디즈니의 테마파크 사업, 호텔체인 힐튼, 숙박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 등이 공개한 2분기 실적이 대표적이다. 특히 에어비앤비의 경우 8월 6일 실적발표에서 올해 매출 성장률 하락이 예고되면서 다음날 주가가 13.4% 폭락하기도 했다.
매출과 이익 성장률이 둔화되면 기업들은 고용을 줄이게 된다. 미국 노동시장이 식어가는 것이 확연하게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 4월 3.4%였던 실업률이 올해 7월에는 4.3%까지 올라갔다.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7월 구인·이직 보고서(JOLTs)에서도 노동시장 냉각조짐이 나타났다. 7월 기준 기업의 구인은 767만3000건으로 전월보다 23만7000건 줄었고, 해고는 176만2000건으로 전월보다 20만2000건 늘었다.
앞으로 소비가 줄어들면 실업률은 더 높아질 수 있다. 미국 연준은 물가와 관련해서 많은 진전을 이뤘지만 고용시장 냉각에 대해서는 향후 중대한 도전에 직면할 수 있다. 미국의 고용이 지나칠 정도로 탄력적이기 때문이다. 9월 연준이 기준금리를 0.25%p 대신 0.5%p 과감하게 내린 것도 식어가는 노동시장에 선제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실업률이 상승하고 난 다음 시차를 두고 경기침체가 온다. 이르면 올해 4분기, 늦어도 내년 상반기에는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확률이 높다.
장기불황 대책 세우고 구조조정 실행할 때
최근 중국의 경기침체 전망이 시장을 흔들고 있다. 9월 10일 국제유가가 2년 9개월 만에 배럴당 70달러 아래로 급락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중국의 성장둔화 전망 등을 반영해 2024~2025년 세계 석유수요 증가분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기 때문이다. 수출 순위 1, 2위 국가들의 경제침체는 수출주도형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이다.
11월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돼 미중 관세전쟁까지 격화된다면 한국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답습할 수 있다. 각 경제 주체들이 장기불황 대책을 세우고 구조조정을 실행해야 한다. 투자자는 현금을 확보하고 다른 기회를 찾아야 한다. 기업은 인건비와 R&D비용을 제외한 모든 지출을 줄이면서 마케팅부문을 강화해야 한다. 간부가 앞장서 내부 단결력을 높이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 직원들도 회사가 요구하는 인재로 거듭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긴장의 끈을 조일 때다.
박진범 재정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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