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산업은행이라고 불리던 국책은행의 최근 이미지 광고에 대한민국의 숫자, 입장, 호칭이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구체적으로 1950년대 한국의 수출규모가 세계 100위에서 2010년대 7위로 비약적으로 올랐고, 세계적 스포츠 행사에 단순한 참가국에서 개최국으로 입장이 바뀌었다는 말이다.

더구나 호칭은 약소국에서 G20 의장국으로 달라졌다고 한다. 물론 이런 사례들을 더 들자면 많이 있다. 가령 1인당 GDP도 1960년대 초에는 100달러지만 지금은 200배가 넘는다. 국제학계에서도 세계자본주의를 중심부, 반주변부, 주변부로 나누고 있는 세계체제론의 일부 학자들이 한국은 주변부에서 반주변부를 넘어 중심부에 진입했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은 중심부 국가들이 한 세기 이상 걸린 산업화를 반세기로 압축시키는 대단한 성과를 달성한 셈이다. 그런데 한국이 반세기 동안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업적을 이루어 낸 원인이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수준 높은 논의가 별로 없다.

'단군 이래 최고의 민족 지도자'라고 칭송을 받는 박정희가 유일한 일차적 계기인가? '선성장·후분배'에 입각한 산업화전략을 추진했던 박정희의 선택은 그 명암과 관계없이 당시 국내외적 환경에 비추어 볼 때 유독 그의 결단 또는 책임만은 아니다.

그가 주도한 산업화전략의 성과 측면만을 강조하여 '단군 이래…' 운운하는 것은 민족의 역량과 자긍심을 훼손하는 짓이다. 쉽게 말해서 임진왜란의 경우 성웅 이순신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지만 한국의 산업화 과정을 이끄는 것은 박정희 말고도 누구든 가능했다는 말이다.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비약한 한국

이웃나라인 일본과 중국이 세계 2위 경제대국 자리를 두고 각축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엿볼 수 있는 위치까지 왔다. 이것을 어찌 한 개인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단 말인가?

일본과 중국이 오늘날 세계적인 국가가 된 것을 놓고 어느 특정 개인의 업적으로 찬양하는 걸 본 일이 없다. 독일에서 "오늘날 독일의 국제적 위치는 비스마르크와 아데나워의 공적이냐?"라고 물어보면 바보로 취급할 것이다.

'박정희 신화'가 팽배한 탓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정권이 복지와 고용 창출에 대한 국민적 열망에 역동적으로 대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60년대 초 한국에서 일어난 쿠데타의 일차적 원인은 당시 국내외 정세였다. 1961년 한국만이 아니라 56년 아르헨티나, 57년 태국, 63년 남베트남, 64년 브라질 등등 당시 주변부·반주변부에서 정변이 빈발했다. 물론 지도자가 누구였던 가에 따라 산업화의 노선·전략·성과가 다소간 차이가 났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자랑스러운 압축 산업화는 지도자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지만, 1960년대 이후 세계최장 노동시간을 감수한 노동자의 희생 속에 진행됐다.

현재 한국의 노령세대는 거의 아무런 복지 혜택 없이 세계최장의 노동시간을 최소한 20년 이상 박정희·전두환 정권의 노동억압 속에서 감수했다.

아마도 한국이 사회경제면에서 당당히 자랑할 만한(?) 세계기록은 가장 오래 최장의 노동시간을 유지해온 것이다.

세계최장 노동시간의 유지가 단순히 한국인의 근면성을 보여준 증좌였는가? 그것이 아니라 정치적 억압 속에서 행해진 결과였다면, 지금이라도 그에 대한 사회경제적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노령세대 희생된 과거사 은폐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1960년대 초 100달러에서 1만달러를 넘어 2만~3만달러 시대로 갈 수 있게 된 것이 누구 때문인가?

오로지 위대한 지도자의 영도력이나 소수 헌신적이고 천재적인 기업가들 때문인가? 그들은 나름대로 충분한 보상을 받지 않았는가?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소모적인 과거사 언쟁에 골몰하지 말라. 정치인들은 그들의 영광과 명예에 물질적인 토대가 과연 무엇인지 숙연히 자문해야 한다.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은 세계최장의 노동시간과 저임금을 아무런 복지 혜택 없이 감수하고 결국 오늘날 빈곤층으로 전락한 사람들의 '은폐된 과거사'에 주목해야 한다.

이국영/성균관대 교수/정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