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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박상주가 만난 '비즈니스 한류의 개척자들']

"인도네시아는 두리안 속살처럼 달콤한 나라"

이호덕 로얄 수마트라-메디슨 자야리야 회장

등록 : 2015-07-02 10:50:43

혹시 일자리를 찾으십니까. 그런 당신은 우물 안 개구리 는 아닌지요. 지구촌 곳곳에서 비즈니스 한류 를 일으키는 한국인들이 많습니다. 그 생생한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지옥의 냄새와 천국의 맛을 함께 지닌 과일이 있다. 열대 과일의 왕 이라고 불리는 두리안이다. 두리안은 도깨비 방망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표면에 온통 삐죽삐죽한 굵은 가시들로 덮여 있기 때문이다. 거친 껍질을 쪼개면 코를 싸매야 할 정도로 역한 냄새가 풍겨 나온다. 재래식 화장실의 구린내나 고기 썩는 악취를 닮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안에는 크림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과육이 가득 들어차 있다. 코를 틀어막고 일단 한 조각 입에 넣는 순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천상의 맛을 접할 수 있게 된다. 두리안은 겉 다르고 속 다른 과일이다.

두리안의 주요 산지 중 하나인 인도네시아는 두리안을 닮은 나라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투박하고 거칠지만, 그 속살로 들어갈수록 진가를 드러낸다. 인도네시아는 특히 세계경제 무대에서 속살로 꽉 들어찬 '빅 두리안' 임을 입증하고 있다. 세계 4위를 자랑하는 2억5000만 인구와 석유와 천연가스, 고무, 목재, 주석, 보크사이트, 망간, 구리, 니켈, 금, 은 등 풍부한 천연자원들은 인도네시아를 이미 G20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호덕 로얄수마트라 회장이 수마트라 섬 최대도시인 메단에 있는 로얄 수마트라 골프장 클럽하우스 앞에서 직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중산층들의 고급주택 욕구를 겨냥한 로얄 수마트라 단지에는 총 260만㎡ 대지 위에 골프장을 중심으로 아파트 1000세대와 중대형 단독주택 1125세대가 들어서 있다.


40여년 전 '빅 두리안' 인도네시아의 속살 속으로 뛰어든 인물이 있었다. 부동산 종합개발 기업인 '로얄 수마트라'와 의료기기 유통 및 특수장비 판매회사인 '메디슨 자야리야'를 경영하고 있는 이호덕(66) 회장이다. 로얄 수마트라는 아파트와 주택단지, 골프장 건설과 택지개발 등 부동산 개발과 분양을 하면서 연간 1500만~2000만 달러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병원 의료기기와 특수장비를 수입 판매하는 메디슨 자야리야는 1000만 달러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인도네시아 중산층들을 중심으로 점증하고 있는 '넉넉살이 욕구'를 파고드는 것이다.

이 회장은 최근 캄보디아로까지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앙코르와트와 바이온 사원 등 세계적 유적의 관광거점인 시엠리아프에 'SNMDC'라는 합작회사를 설립, 160만㎡ 규모의 종합레저타운을 건설 중이다. SNMDC는 이미 1차적으로 완공한 1만㎡ 규모의 컨벤션센터를 운영 중이다. 전시장과 상가, 식당, 사무실 등의 임대운영을 통해 연간 100만 달러 안팎의 초기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 회장은 또한 인도네시아의 풍부한 자원개발에도 참여를 하고 있다. 석탄과 석유개발을 하는 현지 업체에 지분 참여형식으로 500만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자카르타 시내 한복판을 싸고도는 내부 순환도로를 남쪽으로 살짝 벗어난 자카르타 셀라탄 지역의 캡틴 텐디안 대로변. 반듯한 대지 위에 지상5층 지하 1층의 아담한 건물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회장이 경영하는 메디슨 자야라야 본사와 로얄 수마트라 지사가 입주해 있는 건물이다. 2004년 이 회장이 직접 세운 연건평 4000㎡ 규모의 빌딩이다. 이 회장을 따라 1층 로비 오른편에 있는 한 사무실로 들어섰다. 초음파 내시경과 컴퓨터 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등 의료장비들이 전시돼 있는 방이었다. 방 한 가운데 널찍한 테이블에는 직원들 몇몇이 둘러앉아 의료장비들을 정비하고 있었다.

"이곳은 의료장비 수리 작업을 하는 공간입니다. 지금 엔지니어들이 손보고 있는 것들은 내시경 부속품들입니다."

이호덕 회장이 자카르타 모나스 광장에서 인도네시아 독립기념탑을 배경으로 시민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튀김과 볶음 요리, 설탕으로 범벅을 한 단 음식을 많이 먹는다. 밥도, 고기도, 만두도, 바나나도, 기름에 볶거나 튀겨서 먹는다. 매콤달콤한 볶음밥인 나시고렝을 비롯해 면 볶음 요리인 미고렝, 두부를 바싹 튀긴 타후고렝 등의 기름진 요리들을 즐겨 먹는다. 이 지역의 주산물들인 사탕수수나 망고, 바나나, 파인애플 등을 통해 당분도 많이 섭취한다. 중년에 접어들면서 혈관계 질환과 당뇨 등 질병 등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다. 그런데 최근 인도네시아의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엑스레이 정도의 의료장비만 갖춰놓았던 병원들이 CT와 MRI 등 고가의 장비들을 구비하기 시작했다. 이 회장의 의료기기 사업은 인도네시아 중산층을 중심으로 불기 시작한 '넉넉살이 열풍'을 겨냥한 것이었다.

"요즘 인도네시아에서는 고급 의료장비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3만~10만 달러 정도하는 내시경은 물론 대당 150만~200만 달러 정도나 하는 MRI 장비들을 들여놓는 병원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취급하는 의료장비의 60% 정도는 한국에서 들여오고 있습니다."

이 회장은 1949년 11월 10일 전남 화순군 능주면에서 5남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능주 북초등학교와 광주 북중학을 거쳐 광주일고에 진학했다. 명문 광주일고에서도 상위권 성적이었지만 서울대 시험에 두 번 고배를 마셨다. 비슷한 성적권의 친구들은 대부분 서울법대나 상대, 의대에 합격을 했으니 상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서울대 문리대에 낙방을 한 뒤 차마 고향에 내려가지도 못하고 안국동에 있는 친구 자취방에서 뒹굴뒹굴 하고 있었다. 그 때 그에게 세계무대를 볼 수 있도록 깨우침을 준 인물이 있었다. 바로 고흥출신 정치인이었던 월파 서민호 의원이었다.

의료기기 등 특수기계 판매 업체인 '메디슨 자야라야'에서 한 직원이 내시경 부속품을 수리하고 있다.

"1969년 겨울 서민호 의원이 고향 선후배들을 모아놓고 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서 의원이 서울대 낙방 후 의기소침해 하고 있는 저를 보시더니 앞으로 동남아를 주목해보라고 하시더군요. 그때 이상하게도 느낌이 확 오더라고요. 한국외대 말레이·인도네시아어(마인어)학과를 선택하게 된 계기였어요."

1975년 봄 이 회장은 대학 졸업과 함께 경남기업에 입사를 했다. 인도네시아 근무인력을 별도로 선발하는 신입사원 모집에 응시를 해 합격을 한 것이다. 입사한 지 석 달 만인 1975년 6월 이 회장은 처음 인도네시아 땅을 밟게 된다. 1977년 말 정기인사에서 회사를 발칵 뒤집어놓는 일대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입사한 지 3년도 채 안 된 이호덕 말단사원이 대리진급과 함께 타라칸 사무소장 직무대행으로 발령을 받은 것이었다. 충격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대리가 된 지 불과 두 달 만에 다시 과장으로 진급을 하면서 정식 소장으로 임명된 것이었다. 20대 후반의 새파란 소장이 탄생하는 전무후무한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요즘이야 사업 아이디어나 능력만 탁월하면 인턴사원이 하루아침에 임원으로 발탁되는 경우도 있다고는 하지만, 1970년대는 연공서열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시절이었다.

이호덕 회장과 부인 채영애 여사(오른쪽 두 번째)가 자카르타 시내의 한인 선교단체에서 자카르타 빈민들을 위한 급식봉사 준비를 돕고 있다.

그러나 이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소장으로 진급한 지 2년만인 1979년 3월, 그는 다시 차장으로 승진을 하면서 인도네시아본부 사무소장으로 임명된다. 입사한 지 불과 4년 만에 만들어 낸 놀라운 '샐러리맨 신화'였다.

점점 꿈틀거리는 인도네시아 시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풍부한 천연자원을 품은 광대한 영토와 2억5000여만 명의 인구, 동남아의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지정학적인 위치 뿐 아니라 그 속에서 활기차게 사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모습이 가슴에 들어차기 시작한 것이었다. 갑자기 직장인이라는 굴레가 갑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본사의 훈령을 받아 일을 하는 월급쟁이의 틀을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의 구상대로 사업을 일으켜보고 싶은 욕망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1981년 겨울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다. 입사한 지 7년여 만이었다. 기회의 땅인 인도네시아에 맨 몸으로 승부를 해 보기로 한 것이었다.

시장은 삶에 대한 욕구가 날 것으로 펄펄 튀어 오르는 공간이다. 시장 골목에 들어서면 날 생선의 퍼덕임 같은 활력이 가득하다. 시장은 손님의 발길을 붙잡으려는 상인들의 눈길과 마음에 드는 상품을 구입하려는 고객들의 눈길이 뜨겁게 맞닥트리는 공간이다. 자카르타의 새벽 도매시장인 '파사르 파기' 역시 뜨거운 삶의 열기로 충만했다. 비좁은 시장 골목길엔 사람과 짐수레, 오토바이들이 뒤엉켜 혼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상점마다 온갖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호덕 회장과 함께 파사르 파기 시장을 둘러보았다. 파사르 파기 시장은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몰려든 크고 작은 바이어들이 물건을 구입하는 새벽 도매시장이다. 이 회장이 회사를 그만 둔 뒤 매일 아침 출근하다시피 한 곳이다. 이 회장은 매일 아침 4시쯤 일어나 넥타이까지 맨 정장을 하고 시장으로 나갔다. 5시쯤 도착해서 2시간 정도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거렸다. 사업 구상을 하는 데 시장만한 곳이 없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이곳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좋아하고, 유행하는 상품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한 시장조사를 시작한 것이었다.

로얄 수마트라 골프장에서 직원들이 잡초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로얄 수마트라 골프장에서는 농약을 가급적 쓰지 않고, 사람의 손을 이용해 잡초제거 작업을 한다. 환경보호도 하고 지역주민들에게 일자리도 제공하는 일석이조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도네시아 시장은 화교들에 의해 장악돼 있다. 인도네시아 인구의 약 4%에 불과한 화교들이 전체 경제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화교들은 '꽌시'로 똘똘 뭉쳐 있다. 꽌시란 연줄과 인맥, 신뢰 등을 통한 인간관계를 뜻한다.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하려면 화교들의 꽌시 울타리에 들어가야 한다. 이 회장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시장을 누비면서 화교 상인들과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어느새 이 회장은 한국의 양말과 의류, 문방구 등을 시장 상인들에게 공급하는 무역 창구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약속을 지키는 이 회장의 묵묵한 언행이 화교들의 꽌시 문을 여는 열쇠로 작용을 한 것이다.

"초창기 저를 키워준 것은 파사르 파기 시장의 화교 인맥이었습니다. 그들의 꽌시 울타리 속에 들어가면서 세계 최고라는 화교상술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양말과 옷가지를 수입하는 일을 하다가 나중엔 양말기계 수입 등으로 규모를 늘려갔지요. 사업을 시작한 첫해인 1982년부터 3년 연속 50만 달러 이상의 연매출을 올렸습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공공입찰에 참여를 하기 시작했다. 1985년 5월 마침내 인도네시아 직업훈련소에 선반, 밀링 등 3000만 달러 규모의 기계를 납품하는 입찰에 성공을 한다. 그 덕으로 이 회장은 그해 한국 정부로부터 석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사업을 시작한 지 불과 4년 만에 이룬 놀라운 쾌거였다. 자신감을 얻은 이 회장은 각종 특수장비와 중계기기, 섬유원단, 의류 등 수입 품목을 다변화하고, 목재와 고무 등 인도네시아 특산품들을 한국과 싱가포르에 수출하는 일도 시작했다. 인도네시아는 넓고, 할 일은 많았다.

자카르타의 잘란 수디르만은 서울의 세종로 혹은 테헤란로 쯤에 해당하는 중심도로다. 잘란 수디르만을 중심으로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 빌딩들과 붕 카르노 종합경기장, 대형 쇼핑센터 등이 몰려 있다. 잘란 수디르만에 위치한 '수디르만 센트럴 비즈니스 디스트릭트(SCBD)'는 자카르타 최고의 상업시설들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이 회장은 잘란 수디르만에 있는 고급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서자 거실엔 30여명의 학생들이 북적북적 모여 있었다. 자카르타 빈민촌에서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온 충북 음성의 글로벌선진학교 학생들이었다. 식당에서는 안주인 채영애 여사가 각종 한식요리를 푸짐한 뷔페식으로 차려내고 있었다. 한국의 교회나 학교의 봉사단체들이 올 때마다 이 회장 집에서 벌어지는 풍경이었다. 인도네시아로 봉사를 오는 단체들을 초청해 식사대접을 하는 것은 물론 체재비 및 활동비까지 꾸준하게 지원을 하고 있다. 자카르타 한인연합교회 장로인 그는 인도네시아 한인기아대책기구 이사장을 맡는 등 각종 봉사활동에 직접 나서고 있다. 이 회장에게 한국 젊은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마디 청했다.

"정든 고향을 떠나 새로운 삶을 개척한 아브라함을 본받아야 합니다. 젊은이들은 모범생으로 크는 것보다 뭔가에 몰두하고, 도전하고, 미쳐야 합니다. 비록 문제를 만들고 실패를 하더라도 도전을 하는 용기를 지녀야 합니다. 그런 친구들에게 발전 가능성이 있어요. 우리 사회에 널려 있는 게 모범생들입니다. 직장에서도 모범생들은 조기퇴직 대상 1호가 될 뿐입니다. 세상은 모범생보다는 도전하는 사고뭉치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합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은 씨앗이지만, 나중엔 하늘의 새들이 깃드는 큰 나무로 자란다. 그의 집에서 맛있게 식사를 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이 회장이야말로 숱한 새들을 품는 한 그루 무성한 겨자나무로 성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든 고향을 떠나 먼 타향에서 새로운 터전을 일군 아브라함처럼 그 역시 낯선 땅 인도네시아에서 멋진 삶을 일군 것이다. 이호덕 회장에겐 인도네시아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었던 셈이다.

["박상주가 만난 '비즈니스 한류의 개척자들" 연재 보기]

박상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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