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안보수뇌부와 비밀회동 … 하마스는 인질영상 공개로 맞불

23일 가자지구 남부 데이르 알 발라 서쪽 바닷가에 설치된 국내 실향민 텐트촌 모습. 이곳에는 라파 및 가자지구 북부에서 탈출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국제사회의 강력한 만류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에 대한 공격이 임박했다는 외신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 매체 악시오스는 24일(현지시간) 이스라엘과 이집트 안보 수뇌부가 비밀회동을 했다고 보도했다.

악시오스에 따르면 이스라엘 정보기관 신베트의 로넨 바르 국장과 헤르지 할레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이 카이로에서 이집트 고위 당국자들과 만났다. 이스라엘 측 인사들이 가자전쟁 발발 이후 이집트와의 비밀 협의를 위해 카이로를 찾은 것은 지난 2월에 이어 두 번째다. 이집트 측에서는 2월과 마찬가지로 압바스 카멜 국가정보국 국장, 오사마 아스카 군 총참모장이 나선 것으로 보인다.

140만명 가까운 피란민들이 밀집해 있는 라파에 대한 공습이 진행될 경우 대규모 난민들이 이집트로 몰릴 수 있다. 이번 회동에서 이집트의 이러한 우려에 대해 이스라엘이 자국 입장과 대책을 설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 21일 유월절 대국민 연설을 통해 “며칠 안에 하마스에 대한 군사적 압박 수위를 높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24일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군 2개 여단 병력의 가자지구 배치를 준비 중이다. 이스라엘군은 레바논과 접경한 북부 국경에서 작전을 수행해 온 679기갑여단과 2보병여단 등 2개 예비군 여단이 최근 몇 주 동안 가자지구 내 작전을 위한 준비태세를 마쳤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이들 2개 여단이 전투 기술을 연마하고 가자지구 전투와 기동 훈련도 받았다면서 99사단에 배속돼 가자지구에 투입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2개 여단의 가자지구 신규 배치 준비는 라파를 비롯한 가자지구에서 새로운 공세를 준비하는 가운데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현지 언론인 하욤은 하마스와 휴전 협상이 교착되는 가운데 이스라엘 정부가 라파 공격을 결정했으며 조만간 실행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의 고위 국방 관리는 로이터 통신에 “이스라엘군은 라파 점령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정부의 승인이 이뤄지는 순간 작전에 돌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라파 인근에서 대규모 텐트촌이 조성 중이라는 사실이 위성 사진을 통해 드러나면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해 12월 말 가자지구에 투입했던 5개 여단 병력을 철수한 데 이어 이란의 보복 공격이 예상되던 7일에는 1개 여단을 제외한 모든 병력을 가자지구에서 뺐지만 이제 다시 라파 공격을 앞두고 병력을 결집시키고 있는 양상이다. 이스라엘군은 라파로 진격해야 이곳에 있는 하마스 소탕과 인질 구출 등 전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피란민이 밀집해 있는 라파에서 시가전이 벌어질 경우 엄청난 민간이 피해가 예상된다며 만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이스라엘인 인질 모습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하마스는 24일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미국계 이스라엘인 허시 골드버그-폴린의 모습이 담긴 약 3분 길이의 영상을 공개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7일 새벽 슈퍼노바 음악 축제가 열린 이스라엘 남부 레임의 키부츠(집단농장) 인근에서 하마스 무장대원들에게 잡혀 가자지구로 끌려갔다.

골드버그-폴린은 왼쪽 손목 위쪽이 절단된 상태로 영상에 등장해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인질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이스라엘 정부에 요청했다.

그는 피랍 당시 누구도 자신들을 도와주지 않았다면서 하마스의 인질극을 방치하고 200일 동안 구출도 하지 못한 것을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정부는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70명의 인질이 목숨을 잃었다면서 휴전 제안을 거부한 이스라엘을 비판하기도 했다. 영상에는 촬영 날짜가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가 200일 가까이 억류됐다고 설명한 점을 고려하면 최근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질 가족들은 성명을 통해 “허시의 절규는 모든 인질의 절규다. 더는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 인질 석방이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마스는 지난해 10월 7일 무장대원 3000여명을 이스라엘 남부에 침투시켜 1200여명을 학살하고 250여명을 인질로 끌고 갔다. 인질 가운데 100여명은 지난해 11월 일시 휴전 기간에 풀려났지만, 나머지 130여명은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공습에 대해 대대적 반격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지난 반년 동안 팔레스타인인 3만400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숨진 팔레스타인인 가운데 대부분은 무장세력이 아니라 어린이와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민간인들이어서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커진 상태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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